[COP15] 희망은 ‘UN’ 회의장이 아니라 ‘지역’ 현장에서

2010.02.02 | 기후위기대응

지구를 구하는 착한도시 ‘벡쇼’와 ‘뉴욕’

덴마크 코펜하겐은 안데르센과 인어공주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환경도시로 명성이 높다. 이 코펜하겐에서 지난해 12월 제 15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전 세계 정부, 국제기구, 기업, NGO,  관련자들 4만5천여 명이 교토의정서에 버금갈 새로운 의정서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속에 모여들었다. 결과는 희망의 ‘호펜하겐(Hopenhagen)’에서 시작해, 깨어진 협상의 도시 ‘브로큰하겐(Brokenhagen)’으로 끝나고 말았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첨예한 대립 속에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코펜하겐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인류의 기대가 ‘실패’로 돌아간 도시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코펜하겐 모범 답안지  
그렇다면 코펜하겐 회의의 모범답안은 어떤 내용이어야 했을까? 먼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2050년까지의 전 지구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투발루는 군소도시국가연합(AOSIS)과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군(V11)의 지지를 받아 지구 온도 상승 목표를 1.5도, 온실가스 농도를 이산화탄소환산량으로 350ppm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기왕 지구를 기후변화로부터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렇게 보다 높은 목표치를 정하고, 지구 온도 상승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이 먼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미국, 유럽연합, 일본, 캐나다 같은 선진국이 먼저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40% 줄이고, 중국과 인도와 같은 개도국들도 장기 계획을 세워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해야 한다. 더불어 극심한 가뭄에 신음하는 아프리카와 녹아내리는 땅 북극, 해수면 상승으로 환경난민이 될 운명에 처한 남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을 ‘기후변화적응기금’을 마련해 도와야 했다.

실패한 기후회의와 북반구에 몰아친 한파  
현실은 모범답안과 너무나 달랐다. 2주간의 논의 끝에 겨우 완성된 ‘코펜하겐 합의문(Copenhagen Accord)’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 이내’에서 안정화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이 합의문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동의 목표는 ‘2℃ 이내’로 윤곽을 잡았으나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를 시작조차 못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17%를 줄인다고 밝혔고, EU는 1990년 대비 20~30%를, 일본은 25%, 러시아는 15~25% 감축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내놓은 감축안이 개도국의 참여를 이끌어 낼 만큼 높지 않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코펜하겐 회의가 끝나자마자 유럽에 한파와 폭설이 찾아왔다. 유럽전역의 항공기가 결항되고,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고속열차가 터널 속에서 멈춰서 버렸다. 필자도 항공기 결항으로 코펜하겐 공항에서 이틀을 대기 했다. 그 이후로도 북반구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쳤는데, 심지어 ‘태양의 주’라고 불리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는 오렌지농장이 꽁꽁 얼어붙고 양식장의 열대어가 얼어 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새해 첫 출근날인 1월 4일 서울에 100년만의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매일 영하 10도~15도를 왔다 갔다 하는 맹추위가 기세를 떨쳤다.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이 같은 북반구의 혹한은 아이러니하게도 북극이 따뜻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미국 국립기후자료센터에 따르면 북반구에 형성되는 제트기류는 북극의 한기가 저위도 지방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가둬두는 일종의 둑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작년 말부터 북극의 높은 온도에 제트기류가 뚫리면서 북반구 국가들이 혹한을 맞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번 폭설과 한파로 서울을 비롯한 각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눈 치우랴, 대책 마련하랴, 피해실태 조사하랴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만약에 정말 이번 폭설과 혹한이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라면 코펜하겐 기후회의의 실패를 되돌아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인류가 화려하고 거대한 UN회의장에 모여서 해법을 찾는 속도는 느린데 비해 기후변화가 일으킨 피해는 바로 당장의 일이고, 피해의 현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국제사회에서 해답을 마련해서 지침을 내려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되고, 먼저 지역에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대안을 찾아내는 희망은 ‘UN’ 회의장이 아니라 ‘지역’ 현장, 바로 지자체와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달려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감축’이고 다른 하나는 ‘적응’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고, 새로운 기상현상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전환해 ‘적응’해야 한다. 우리 지자체도 기후변화 대응을 제대로 하려면, ‘감축’과 ‘적응’에 대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회의에서 돋보인 기후변화대응의 모범도시는 어디가 있을까?

온실가스 ‘감축’ 모범도시, 벡쇼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한 스웨덴 벡쇼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벡쇼는 스웨덴 남부에 위치한 인구 82,000명의 도시로, 수도 스톡홀름에서 3시간 30분 정도 떨어져있다. 벡쇼 시민들은 1993년~2008년 사이에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5%나 줄였다. 1990년대에 이미 시정 목표로 ‘화석연료 없는 도시 만들기’를 삼고, 패시브하우스, 통나무구조 가옥 건설, 자전거 도로, 대중교통, 에너지 효율향상, 폐기물 재활용, 바이오연료 정책을 꾸준히 펼쳐왔다.
1994년 도시 가로등을 고효율 전구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건축가들에게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건축 관련 에너지 기준을 강화했다. 시민들이 에너지 사용량에 민감해지도록 계량기 시스템을 바꾸고 교육을 하고, 정보를 제공했다. 아예 시에서 에너지 효율개선 전문 회사를 설립해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에너지 효율개선 사업을 펼쳤고, 무료로 에너지 효율개선 상담을 해주고 있다.  
더불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놀라운 것은 인구 82,000의 도시가 수력, 풍력, 태양광, 바이오가스, 지열을 통해 전체 에너지소비량의 56%를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지역난방 시스템이 벡쇼시의 난방의 91%를 충당하고, 바이오디젤이 운송연료의 4%를 담당한다. 시민의식도 뛰어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차량을 보유하지 않는 세대가 46%나 된다(2006년).
그 결과 1993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5%나 줄일 수 있었고, 2025년까지 75%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워 실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도 벡쇼의 경제가 침체되기는커녕 지속해서 성장해왔다.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장과 지자체 공무원, 시민들이 그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목표를 세워 꾸준히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각 건물과 기업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재생가능에너지 생산량을 늘여나가면 된다. 그렇게 기업과 시민들이 행동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지자체가 예산과, 정책, 인력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벡쇼 못지 않는 온실가스 감축 성공 사례가 나와야 한다.

기후변화 ‘적응’ 모범도시, 뉴욕
예상치 못한 ‘한파’와 ‘폭설’이 닥치면 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공무원들도 격무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난과 재해가 닥치면 시민들이 바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곳이 지방관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가 힘들어할 때 외유를 나가게 되면 여론의 집중 질타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만약에 앞으로 이런 상황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한다면, 미리 미리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뉴욕주 블럼버그 시장은 2008년 8월,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적응하기 위해 특별대응팀을 꾸렸다. 특별팀은 공무원, 전문가, 기업인, 시민들이 참여해,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재해로부터 시민의 건강과 생명, 도시의 기본인프라를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콜롬비아 대학이 연구에 참여하고, 록펠러재단이 뉴욕시의 기후변화 적응 계획 수립에 7천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2001년 취임 후 섭씨 37.8도 이상의 폭염이 지속되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대규모 정전 사태를 예방하느라 진땀을 뺀 적이 있다. 그래서 기후변화 적응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게다가 뉴욕은 강력한 허리케인의 영향권 안에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 또한 우려된다. 따라서 기후변화가 도로, 교량, 터널, 대중교통 네트워크, 상하수도 관계시설, 전력, 가스, 변전소, 통신에 미칠 영향을 연구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폭설로 이미 경험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기상재난에 취약하고, 이런 재난에 사회기반시설이 파괴될 경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이제는 국가 안보만 아니라 도시의 안보도 중요하고, 그 일을 책임지는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 지자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 ‘지자체부터’
현재 확실한 것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안정화 수준인 350ppm을 넘어서 이미 초과상태라는 점이고, 지구가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우리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1993년 세계지자체환경협의회(ICLEI) 지도자들은 뉴욕 UN본부에 모여 지방자치단체와 도시가 기후보호도시(Cities for Climate Protection) 운동을 추진할 것을 선언하였다. 기후보호도시 운동은 지방정부가 나서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정책을 펼치며, 대기 질을 개선하고, 삶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활동이다. 코펜하겐 회의에 대한 실망감은 접어두고, 이제 지방자치단체에서 희망을 찾아보자.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실행에 옮기는데 있어서는 국제사회라는 큰 틀보다 작은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준비할 것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시대 ‘지역의 살길 찾기’ 이고, 그 속에서 공무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교토부는 청사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20%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시민들에게 기후보호도시를 만들자고 이야기하기 전에 지자체가 갖고 있는 건물을 대상으로 공무원들이 먼저 실천에 옮긴다는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세계의 기후보호도시를 보고 배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공무원들만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지방정부의 기후보호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이제 기후변화를 이야기 하지 않고 도시와 지방정부의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지자체가 기후변화대응에 발 벗고 나서자. 지방의 명품 ‘특산물’ 처럼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명품 ‘기후보호도시’를 만들자.  

월간 「도시문제」 2월호 ‘함께하는 녹색생활’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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