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저탄소 녹색마을’에 필요한 3가지 가게

2010.05.03 | 기후위기대응

우리 함께 저탄소 녹색마을 – ② 도시편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저탄소 녹색마을’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도 2020년까지 저탄소녹색마을 600여개를 만든다고 밝혔다. ‘저탄소 녹색마을’은 어떤 마을일까? 앞으로 전국에 600개나 만들어진다면 모든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저탄소 녹색마을’에 대한 현황과 전망을 담을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싣고자 한다. 마을의 형태에 따라서 ‘저탄소 녹색마을’의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도시는 도시에 맞게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를, 농촌은 농촌대로 절약과 동시에 바이오매스를 통한 에너지 생산에 힘써야 한다. 이번에는 ‘도시편’을 싣는다. – 엮은이 –

세계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는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75%를 소비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배출한다. 이것은 곧, 기후변화 시대에 도시 사람들이 농촌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하고,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도시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기에 에너지 공급에 이상이 생겼을 때 매우 취약하다. 전력공급이 끊긴 도시를 생각해보자. 사회 인프라 시설과 통신시설은 작동하지 않고, 고층빌딩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되며, 물 공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최근 건설되는 도시 중에서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화석에너지 대신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비중을 늘리고 있다.

탄소제로도시 건설 붐
대표적인 재생가능에너지 도시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건설 중인 마스다르 시티이다. 인구 5만여 명이 살게 될 마스다르 시티는 100% 재생가능에너지 도시를 목표로 2016년 완공될 예정이다. 에너지원은 태양광(52%), 태양열(26%), 진공 집열기(14%), 폐기물 에너지(7%), 풍력(1%)을 이용한다. 캐나다 벤쿠버 인근 빅토리아 내항에 위치한 옛 공업단지에서는 탄소제로 복합단지로 도크사이드 그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건물 부문에서 단열장치, 옥상녹화, 폐열회수, 에너지 고효율제품을 사용해 에너지 사용량의 50~52%를 절감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잉여에너지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상하이 인근 충밍섬에 동탄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탄소제로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시, 마곡지구, 무안 기업도시 등 탄소제로 도시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을 극적으로 높이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마스다르 시티 건설에는 정부 돈 40억 달러를 포함해 총 220억 달러(약 24조원)가 투자된다. 더불어 신도시에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문제는 현존하는 수많은 도시의 에너지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그래서 도시에서 에너지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향상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도시형 ‘저탄소 녹색마을’, 에너지 절약이 핵심
출장을 갔다 서울로 돌아오면 메케한 공기가 다르고,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와 현란하게 빛나는 간판을 마주해야 한다. 특히 아파트값을 올리기 위한 아파트 단지 옥상위의 조명과 겨울 내내 나무와 건물을 칭칭 감은 전구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독일의 한 에너지 전문가는 밤거리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도심의 에너지낭비가 얼마나 심한지 자기 눈에는 한국 사람들이 밤하늘에 돈을 마구 뿌려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 도시의 에너지 낭비는 도를 넘어섰다. 그래서 도시형 ‘저탄소 녹색마을’의 첫 번째 과제는 에너지 절약이다. 그런데 우리 도시에 ‘마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하루하루 바쁜 날들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인사한번 나누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지자체와 NGO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에너지 절약 100만 가구 운동‘을 통해 각 가정에서 전년 동월대비 전력사용량을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광주시 북구 모아아파트는 지렁이를 배양해 음식물 쓰레기 10% 줄이기 운동 전개하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전거 주차장도 마련했다. 지역 환경단체인 광주전남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전력소비 진단을 받기도 하고, 신축을 계획하고 있는 아파트 경로당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에서는 2008년부터 20여 가구가 ’저탄소 마을‘ 만들기를 실천하면서, 에너지 절약과 진단을 병행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절약, 자원재활용, 녹색교통, 녹색소비를 실천하는 ‘그린마을’을 2012년까지 300곳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도시형 ‘저탄소 녹색마을’에 필요한 3가지 가게
이렇게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도시에서는 ‘녹색마을’을 만들기 위한 공동체가 형성된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저탄소 녹색마을’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정책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실행체계가 필요하다. 한 가지 아이디어로, 도심에서 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3가지 종류의 ‘가게’가 있었으면 한다.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교육하며 정보를 제공하는 가게, 사람들이 집을 고치거나 보일러를 바꾸고자 할 때 효율 개선사업을 하는 가게, 마지막으로 생활 속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가전제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개발하고 설치하는 가게이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만 한다면 꼭 가게가 아니어도 된다.  
첫 번째 가게는 에너지카페이다.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는 에너지 카페는 동네주민들에게 차를 판매하면서 에너지 절약과 효율개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딱딱한 에너지 문제를 쉽고도 친근하게 설명하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영국에는 에너지세이빙 트러스트가 있어서 절약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가 ‘그린콜센터(031-120)’를 통해 에너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원주시도 그린에너지 상담센터 홈페이지(http://wec.halla.ac.kr)를 개설했다. 에너지 관리공단도 인터넷으로 가정의 ‘에너지 비만도’를 측정해 다이어트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맞춤형 홈에너지절약 컨설팅 서비스’ (www.gogef.kr)를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사회에서도 일본의 에너지 카페와 같은 기능을 하는 곳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두 번째 가게는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전문 가게이다. 영국 런던 근교에 위치한 워킹시는 태양광과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 자립도가 매우 높다. 그 동네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시내 곳곳에 위치한 에너지 단열개선 전문 가게들이었다. 창틀을 바꾸면 에너지 효율이 얼마나 개선되는지, 비용은 얼마인지, 에너지 절감비용으로 인해 창틀공사 비용을 만회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상담도 하고 시공도 해준다. 일종의 ESCO(Energy Service Company) 사업인데, 우리말로 ‘에너지절약전문기업’을 뜻한다.
세 번째 가게가 재생가능에너지 가게이다. 2010년 세계솔라시티 총회가 열리는 더저우에 가면 연립주택 지붕위에 빼곡히 자리잡은 태양열온수기를 볼 수 있다. 주택과 건축물에 태양열 온수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면서 중국에서는 태양열온수기를 가전제품처럼 사용하고 있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을 파는 것처럼 도심 곳곳에 태양열온수기 전문 판매장과 수리점이 자리 잡았다. 많이 쓰다 보니 가격도 저렴해지고, 기술수준도 빠르게 발전했다. 앞으로 기술수준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소형 재생가능에너지 생산품이 만들어져, 도시 생활에서 가전제품처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크로 에스코 사업에 ‘날개를 달자’
세 가지 가게 중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택 에너지 진단과 효율개선 전문 가게이다.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이나 학교 단위에서 전기절약이나 물 절약에 대해 교육하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 좀 더 세밀하게 에너지 진단을 하고, 필요하면 보일러나 시설을 개선하고 싶어도 그 일을 의뢰할 곳이 없다. 지자체가 ‘그린 스타트’ 운동을 통해 양성한 ‘그린리더’나 ‘에코홈닥터’들은 대기전력 진단이나 에너지 고효율전구 사용, 멀티탭 이용, 문풍지 바르기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또 기존의 ESCO 사업은 대학, 공장, 종합병원과 같이 대형사업장에서 주로 진행되고 있다. 정작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드는데 필요한 소규모 주택이나 학교, 소형빌딩에 대한 에너지 진단과 효율개선 부문을 맡을 사람과 기관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가 도시에서 소규모 ESCO사업(마이크로 ESCO)이 자리 잡아 확산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따로따로 진행되는 에너지진단제도와 ESCO 사업을 제대로 연계하고, 에너지 절약전문 진단사를 육성해내야 한다.
일본의 이이다시에서는 소규모 ESCO사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의 활동이 활발하다. 2004년 지역의 NGO가 사회적 기업으로 설립한 햇님진보에너지회사는 전등 교체와 보일러 교체를 통해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면, 평소에 지출하던 에너지 비용에서 차감한 수익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이다시 예술 박물관은 이 업체를 통해 에어컨 효율개선, 에너지절약 공조기 도입, 전자식 형광등 안정기와 고효율 전구를 도입해 전력 에너지를 30%나 줄일 수 있었다.

착한도시에 미래가 있다
도시에서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도시계획과 건축이다. 도시계획을 통해 사람들의 출퇴근 거리를 짧게 디자인 할 수 있고, 건축을 통해 에너지를 아예 덜 사용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더불어 유리건물도 지양해야 한다. 유리건물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그 온도 차이를 고스란히 에너지 소비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도시들은 에너지 절약, 효율개선,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라는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들기 위한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착한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라는 책에서 “착한도시는 자기 도시에서의 활동이 다른 도시에, 나아가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그 도시의 몫만이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나가는 행동을 꾸준히 해 나가는 도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 우리는 이제 온실가스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착한 집’을 지어야 하고, ‘착한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가 사는 도시를 ‘착한 도시’로 만들어가야 한다.  

월간 「도시문제」 5월호 ‘함께하는 녹색생활’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우리 함께 저탄소 녹색마을 – ① 농촌편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시대를 맞아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녹색마을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에 걸쳐 에너지 자립도를 40% 가까이 끌어올린 ‘저탄소 녹색마을’을 600여 곳에 만들 계획이다. 그렇다면 모든 지자체가 ‘저탄소 녹색마을’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저탄소 녹색마을’에 대한 현황과 전망에 대한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준비했다. 마을의 형태에 따라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농촌은 농촌에 맞게 절약과 동시에 바이오매스를 통한 에너지 생산에, 도시는 도시대로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에 힘써야 한다. 이번에는 ‘농촌’의 저탄소 녹색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싣는다.

농촌의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다. 기후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자고나면 올라있는 기름 가격이 농민들에게 당장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겨울 난방에다 비닐하우스 가온, 각종 농기계에 들어가는 경유까지 화석연료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해답은 ‘저탄소 녹색마을’이다. 마을에서 폐자원과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정부는 2010년부터 도시와 도농통합지역, 농촌, 산촌에 부처별로 특성을 살린 ‘저탄소 녹색마을’을 시범적으로 만들고, 2020년까지 600개로 확대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저탄소녹색마을’ 만들기 경쟁
현재 4개 지역에서 시범사업 대상지가 선정되었다. 행안부는 공주시 월암마을을 시범지역으로 정했다. 환경부는 광주시 승촌마을을, 산림청은 봉화군 서벽리를, 농식품부는 완주군 덕암마을을 택했다. 선정된 마을에는 1~2년 사이에 50억에서 많게는 146억까지 사업비가 지원된다. 마을 유형에 따라 명칭이 다르지만, 산림청이 목재펠릿을 활용할 뿐 나머지 행안부, 환경부, 농식품부는 모두 유기성폐기물을 이용한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설치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렇게 많은 예산을 투입해 마을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드는 바람직한 방향일까?

주민들이 만드는 지역에너지(Local Energy)
독일 니더작센주 괴팅겐에 있는 윤데마을이 우리나라 ‘저탄소 녹색마을’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윤데마을에서는 농사가 끝나고 들판에 버려진 각종 부산물과 가축분뇨를 모아 혐기성소화를 통해 메탄가스를 만들고, 그 메탄을 태워 열병합발전을 한다.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는데, 전기는 전력회사에 판매하고 열은 난방에 사용한다. 전기생산량은 마을에서 사용하는 양의 2배나 된다. 정부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높은 가격으로 잉여 전기를 구매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출자한 만큼 돈을 벌고 있다. 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다르데스하임 마을은 풍력에너지 회사를 설립했다. 주민들이 20%의 출자금을 부담하고, 지방정부가 20%를 지원했다. 나머지는 지역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현재 풍력발전기는 마을 주민 1000명이 사용하는 전기의 45배를 생산하고 있고, 전기를 판매해 얻은 수익을 주민들에게 배분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무레크는 인구 1700명이 사는 시골 마을로 에너지 자립도가 무려 170%이다. 지역 농부들이 유채와 폐식용유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생산 공장, 잡목과 돼지 똥을 이용한 열병합발전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서 에너지를 구입하고, 일자리도 얻었다. 무레크는 앞으로 석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200달러씩 올라가도 끄떡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성공적인 에너지자립마을들은 공통점이 있다.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든 주인공이 주민이라는 점이다. 주민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시민발전소를 통해 에너지생산에 참여하고,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다. 에너지 생산을 위해 먼저 주민들이 한데 모여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지난한 준비과정과 토론을 통해 소비량을 조사하고, 마을에서 생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에너지를 결정했다. 마을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는데 들어가는 기술과 예산은 지역대학, 전문가, 언론, 지자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그렇게 마을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준비를 하면서 주민들이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생산한 에너지를 팔아 소득을 얻고, 마을에 일자리가 생기고, 재생가능에너지 산업도 덩달아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탄소 녹색마을’은 지역에 여러모로 활기를 불어넣는 참으로 좋은 정책이다. 농촌에서 화석연료 고갈과 온실가스 감축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저탄소 녹색마을’에 ‘주민’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마을에는 ‘주민’이 없다. 그저 사업 추진하는 동의서에 도장 찍고, 바이오가스 플랜트 설치하는데 마을 부지를 내주는 정도로는 안 된다. 주민들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일에 참여해야만 한다. 그렇게 주민 참여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있어 사업 기간 2년은 너무나 짧다. 당장 부지 정하고, 업체 계약해서, 시설공사 들어가기도 부족한 시간이다. ‘윤데마을’도 에너지자립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그 시간의 대부분은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설에 걸린 시간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를 결정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돈을 마련하는데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 농식품부는 49가구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146억을 투자한다. 한 가구에 3억 가까이 지원하는 셈이다. 그만한 지원이라면 덕암마을에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돈을 쏟아 마을을 재생가능에너지 종합전시장으로 만든다. 태양광, 소수력, 바이오가스, 풍력, 지열 등 재생가능에너지원이 죄다 들어가 있다. 마을 주민들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은 157MWh인데, 사업이 끝나면 연간 1,612M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과잉투자이다. 정부는 앞으로 조성할 600개 ‘저탄소 녹색마을’에도 그만큼 예산을 투자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사업이 진행되면 국가지원금으로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설회사만 배불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사업이 끝나고 에너지 생산시설이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는 것이다. 특히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유기성폐기물을 운반하고, 투입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남은 액비를 처리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을의 물질순환과 운영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이 없으면, 가동이 중지되거나 계속해서 운영비를 투자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게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리함께 ‘녹색마을’
우리는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드는데, 각 부처가 따로따로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저탄소 녹색마을’의 장점을 잘 살리고,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을 두고 각 부처가 마을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역할과 지원을 할지, 법과 제도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서로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행안부, 환경부, 농식품부, 산림청이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다각도로 지원하는 것이다.
또 이 정책의 목적이 에너지 자립마을의 저변 확산에 있다면, 처음부터 의지가 있는 마을들이 자립의 토대를 닦을 수 있도록 골고루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면, 올해 정부가 저탄소녹색마을에 지원하는 예산 300억 원을 10억씩만 나눠도 30군데에서 추진할 수 있다. 작은 마을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데, 수십억의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계적 접근도 필요하다. 먼저 마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량을 조사하고, 에너지 자원과 생산계획을 수립한다. 다음으로 주민들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에 옮김과 동시에, 에너지 생산 계획을 한다. 이렇게 주민참여와 운영방식이 결정 난 다음에라야 마을에 적합한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마을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어떤 마을은 풍력을 어떤 마을은 소수력을 설치할 수 없는 곳이 있다. 재생가능에너지 자원이 아무리 좋아도 운영할 사람, 즉 지역주체가 없는 곳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교육을 제공해, 주민 스스로 마을에 가장 적합한 에너지원을 선택하고 생산과 운영방안을 마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각 마을에 맞는 최적의 자원과 기술을 주민들이 찾고, 거기에 따른 책임도 지워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주민들과 끝까지 함께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들어갈 외부의 도움이다. 마을 주민들이 지역 대학, 전문가나 단체들의 도움을 통해 에너지 자립마을을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에너지자립마을 지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희망은 이미 싹트고 있다. 괴산 솔뫼마을 에서는 ‘에너지 농부학교’를 열고 있다.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이 밤마다 모여 에너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부안 등룡마을, 변산공동체, 임실 중금마을, 산청 갈전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나서서 에너지 자립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필요로 한다. 바이오가스 플랜트나 팰렛 보일러를 설치하고 싶어도 예산이나 규모, 기술의 안정성에 대한 정보를 구할 길이 없어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소규모 마을에 적합한 재생가능에너지 기술과 업체에 대해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한다면 이 마을들에 큰 도움이 된다.

정부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 대수술 필요
정부가 추진하는 ‘저탄소 녹색마을’ 사업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은 2014년까지 11개 시범마을을, 행안부는 2012년까지 300여 곳을, 농식품부는 2020년까지 40곳으로 확대해 나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농촌마을의 미래가 걸린 사업이 제대로 된 절차와 준비 없이 예산만 들여 속도전으로만 진행될 경우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진될 600개 마을의 모델이 될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시범사업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나머지 마을들은 시도를 해볼 기회조차 잃게 된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마을’의 주인공이 주민들이 될 수 있도록 단계적 계획을 수립하고, 사업기간도 늘여야 한다. 정책수립에 있어 마을에 어떤 재생가능에너지를 설치할 것인가 보다 마을의 에너지 ’디자인‘, 즉 누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마을‘ 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월간 「도시문제」 4월호 ‘함께하는 녹색생활’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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