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미국, 칸쿤 기후변화 회의

2010.12.09 | 기후위기대응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제16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가 고착상태이다. 교토의정서 체제의 지속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문서를 통해 미국이 몰디브를 비롯한 남태평양섬나라 국가들에게 자금지원을 대가로 자신들이 주도하는 ‘코펜하겐 협정문(Copenhagen Accord)’의 지지서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가디언지는 미국이 기후변화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CIA까지 동원해 정보를 수집하고, 지지선언을 확보하기 위해 ‘돈’과 ‘협박’을 일삼았다고 꼬집었다.

코펜하겐 회의를 사실상 실패로 이끈 ‘코펜하겐 협정문’은 미국 주도하에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지구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이상 오르지 않게 한다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해 UN에 제출하고, 개도국도 자발적으로 감축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서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이 협정문이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도록 전방위로 로비를 벌였다.

돈으로 기후변화 취약국가 회유
해수면 상승이라는 직접적인 위기에 처해있는 군소도서국가 연합은 선진국의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코펜하겐 협정문’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그래서 미국은 먼저 몰디브를 접촉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문서에 의하면 2010년 2월 10일, 조나단 퍼싱 미국 기후변화협상 대표와 몰디브의 압둘 가포어 모하메드 대사가 만나 회담을 갖고 ‘실질적인 지원’에 대해 논의했다. 회담직후 몰디브는 5,000만 달러규모의 해수면 상승을 막기 위한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미국은 세부내용과 비용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논의를 토대로 모하메드 나시드 몰디브 대통령은 코펜하겐 협정문에 동의를 표했다. 나시드 대통령은 지난해 몰디브가 기후변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중국무회의를 열어 유명해진 인물이다. 전 세계적인 기후정의 운동 ‘350’의 열렬한 지지자로 코펜하겐 회의에서는 도착하자마자 정상회담장 대신 NGO들이 개최한 클리마 포럼을 찾기도 하다. 그런 그를 미국이 가장 먼저 회유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가난하고, 또 기후변화 위기에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여있는 섬나라 국가들에게는 당장의 재정적인 지원이 약한 고리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기후변화 협상을 이끌고 있는 에디오피아의 멜리스 제나위 총리를 만나서는 협정문에 서명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지원에 관한 논의를 끝내든지를 선택하라며 협박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베네주엘라와 볼리비아, 니카라구아, 쿠바, 에콰도르에 대해서는 끌어들이거나 고립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파블로 솔론 볼리비아 유엔 대사는 언론인 에이미 굿맨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키리크스와 관련해 내가 한 가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사실은 미국이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코펜하겐 협정문 중심으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지구의 온도는 최소 4도 이상 오를 것이고, 이것은 인간과 지구에 대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BASIC 국가들과 녹색성장의 파이를 거래하다
코펜하겐 협정문의 탄생 배경으로 미국이 BASIC국가(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들과 사전합의가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은 2009년 6월 브라질의 이자벨라 떼이셰이라 환경부 차관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기술연구 프로젝트 협력을 논의했다. 미국이 아마존 펀드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는 환경 분야 기술협력을 제안했다. 2009년 5월 27일 미외교위원회의 존 캐리 상원은 중국 리커창 상무부총리를 만났다. 외교문서는 “리커창은 케리가 제안한 녹색기술연구 분야의 보다 깊은 협력을 받아들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부총리는 “중국은 미국이 기술 수출에 대한 제한을 완화해 줄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 분야는 중국 산업계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연결되어있는 분야이다.

중국이 미국 편에만 서준다면 둘이서 기후변화 협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실제로 둘의 밀월 관계는 코펜하겐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은 한참 경제가 성장하는 BASIC국가를 대상으로는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면서 발생할 경제적 이득, 즉 ‘녹색성장의 파이’를 나눌 것을 제시하고, 개도국에게는 금전적 보상을 통해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외교문서는 이러한 전 과정이 EU와의 긴밀한 논의를 통해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기후협상 로비 성공할 것인가


▲ 16회 기후변화 협약당사국 총회 7일 열린 NGO랠리에서 기후정의를 외치는 그룹들의 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주도와 유럽의 묵인을 통해 현재 116개 국가가 ‘코펜하겐 협정문’에 동의하고 있다. 더불어 26개 국가가 서명할 의도가 있음을 밝혀, 미국은 적어도 140개국 이상의 지지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193개 협약가입국의 75%,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나라들이 참여하는 셈이다. 게다가 칸쿤회의 초반, 일본이 교토의정서를 연장하는데 동의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코펜하겐 협정문’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이번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 정부의 입김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요직에 이란인 과학자가 선임되는 것이 좌절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기후협상이 미국이 의도한대로 착착 진행되는 셈이다.

전 세계 NGO들은 이런 상황을 최악의 뇌물 스캔들에 비유하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구의 벗은 “위키리크스를 통해 부자 나라들이 온실가스를 감축 의무를 회피하고, 개도국들에 돈을 미끼로 한 부정한 방법으로 협정문 지지를 강요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비판했다. 350의 리더 빌 맥커번은 “세계 시민들의 거대한 움직임만이 미국의 부도덕한 행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연대를 촉구했다.

이제 남은 숙제는 칸쿤회의에서 위키리크스를 통해 미국의 부정한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 협정문’이 지지를 받을 것인가에 있다. 지금도 협상은 계속되고 있고, 본회의장에 대한 NGO들의 참석은 제한적으로 ‘밀실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코펜하겐 협정문’으로는 악화일로에 있는 기후변화를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회의가 3일 남았다. 칸쿤 회의는 ‘미국’의 치밀한 정치력 앞에 ‘지구’를 몽땅 털어 내주는 참담한 회의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인지 마지막 선택의 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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