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여성] ① 기후변화는 여성에게 더 가혹하다?

2011.10.05 | 기후위기대응

기후변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여성의 역할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에도 ‘승자’와 ‘패자’가 구분된다. 국적이나 나이, 성별, 재산 정도에 따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아주 취약한 나라는 방글라데시, 인도, 마다가스카르, 네팔, 모잠비크 순이다. 이 나라들은 기후변화로 자연재해, 인명피해, 경제적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된다.1) 방글라데시는 지난해 10월 태풍과 홍수로 5만 명이 집과 땅을 잃었고, 매년 4만여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해 수도 다카로 몰려와 도시빈민으로 살아간다.

잘 사는 나라보다는 가난한 나라가 기후변화의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어른보다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더 취약하다. 동물도 온도변화에 민감한 양서․파충류가 포유류 보다 더 빨리 멸종한다. 기후변화의 강도가 심각해질수록 이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피해를 받는 약자들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사용을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지수가 높은 국가는 아랍에미리트, 호주,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순이었다. 이 나라들은 에너지와 자원을 과도하게 소비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국가들이다.2) 이들의 횡포에 방글라데시가 물에 잠기고, 수단이 가뭄으로 바짝 타들어가고, 북극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문제는 전 세계적인 빈곤, 차별, 인권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윤리에 관한 문제이고 지구적인 정의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은 한 사회 내에서도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의롭지 않은 상황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계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온갖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세계 빈곤 인구의 70%가 여성이다. 여성은 남성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며, 문맹율도 높고,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봐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으며, 어린 소녀들은 가난과 노동을 이유로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은 바로 이런 여성들에게 기후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 여성들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또 해야 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 방글라데시 다카의 빈민촌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에서 가난을 안고 태어났으며,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이 아이는 앞으로 안전한 주거공간에서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고, 교육을 받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을까?

정말로 여성들이 재난에 더 많은 피해를 입는가?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 4차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태풍, 폭염, 폭우, 홍수 등 극단적인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역사상 규모가 큰 기상재해가 대부분 지난 20년간 발생했으며, 최근 10년간 기상재해는 연간 7.4%씩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Peterson은 이러한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가 남성의 14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3) 세계 141개국에서 1981~2002년 사이에 발생한 태풍, 지진 등 재해에 대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이다. 여성은 긴급 상황에서 아이와 노약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신속히 피난하기 어렵고, 피난에 필요한 적절한 수단(교통, 정보, 은신처)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성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에는 생존율이 더욱 낮아진다.

실제로 1991년 방글라데시에 사이클론이 닥쳤을 때 비교적 건강한 20~44살 사이의 사망자가 남성은 1000명당 15명이었다면 여성은 71명이었다. 여성의 사망 비율이 5배나 높았다. 여성은 수영을 못했고, 입고 있는 옷이 신속한 이동에 적합하지 않은데다가 문화적인 관습상 남성들의 보호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피난을 너무 늦게 떠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남성들은 바깥활동을 통해 위험에 대한 정보를 빨리 습득할 수 있지만 이렇게 습득한 정보도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유럽에서 폭염이 발생했을 때 여성사망률이 남성보다 75%나 높았다. 1995년 런던 폭염 때도 여성 사망률이 높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가난하며, 심리적 박탈상태에 있고, 60세 이상의 경우 집안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자연재해 사망률이 높은 데에는 여성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낮은 경제적 지위와 연관이 있다. Neumayer와 Plumper의 연구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이들은 141개 국가에서 1981~2002년 사이에 발생한 자연재해에 의한 젠더적 특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여성의 권익이 잘 보장된 사회에서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망자가 남성과 여성이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 반면 여성의 권익이 낮은 지역에서는 여성 사망자가 남성보다 높았다.4) 이것은 사회 시스템에서 젠더 불평등을 해소해나가는 것이 재난으로 인한 여성들의 피해를 줄이는 중요한 열쇠임을 말해준다. 이들의 보고서를 보면 구조 과정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시된다고 전한다. 위기 상황에서 아이들과 여성을 먼저 구조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런 장면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실제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서는 완력이 지배하는 것이다.5)

우리나라도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매미 등 역대 최대 피해를 준 기상재해 대부분이 2000년대에 발생했다. 아주대 예방의학교실에서 1990~2008년 통계를 토대로 기상재해로 인한 사망자 특성에 관한 분석을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부터 2006년까지 26년 동안 총 4,596명이 기상재해로 사망했다(연평균 177명). 연령대별로 노령인구(20대에 비해 60대는 2.7배, 80대 이상은 5.7배)일수록 취약했고, 지역별로 강원도가 홍수와 태풍(서울특별시에 비해 27배 높은 사망률)에, 제주도가 폭풍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6) 아쉽게도 성별 구분에 관한 분석 자료를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국내에서도 자연재해에 대한 젠더 관점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고통  

재난을 회복하는 과정과 기후난민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여성은 더욱 혹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지난 8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해 2000명 이상이 사망한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에 다녀왔다. 가장한 피해가 극심했던 ‘The Lower 9th Ward’ 지역에 들어서자 군데군데 형체만 남은 집들과 사람들이 아예 떠나버려 잡초로 뒤덮인 집터가 눈에 들어왔다. 주정부와 NGO, 주민들이 협력해 재건 사업을 벌이고 있긴 했지만 카트리나가 남긴 상처는 깊었다.

2000년 인구 48만 명이던 도시가 카트리나 이후 35만 명(2009년)으로 4분의 1(26.6%) 이상이 줄었으니 얼마나 큰 재해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7) 그렇게 뉴올리언스를 떠난 사람들의 80%가 여성이었다.8) 모든 것이 물속에 잠겨버린 상황에서 생계와 주거, 이동수단을 마련하기 힘든 여성들은 친척들이나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파손된 집에 대해 기존자산을 기준으로 보상을 해주다 보니 가난했던 여성들이 보상비만으로는 새로 집을 지을 수가 없었다.9) 일자리 부족도 큰일이었다.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본고장’으로 관광산업이 활발했고, 여성들은 식당이나 상점에서 파트타임 점원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의 관광산업이 몰락하면서 이민자 여성을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실직 상태로 빠져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나 가뭄은 생존의 조건을 극한으로 몰고 가면서 난민을 발생시키는데, 기후난민에서도 여성 비율이 높다. Global Humanitarian Forum은 전 세계 난민 3억5천만 명 중에서 2천6백만 명이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난민이라고 밝혔다.10) 현재 전 세계 난민의 80%가 여성인데, 이를 토대로 추산하면 기후난민 2천6백만 명 중에서 적어도 2천만 명이 여성이라는 것이다.11) 남성은 홀로 일을 찾아 떠날 수 있지만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여성은 난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난민생활을 하면서 여성은 육아와 생계를 동시에 해결한다. 생리적인 현상을 처리할 기본 공간도 보장받지 못하며, 불안정한 주거로 안전보장이 취약해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사회경제적인 불안이 고조되고,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면 여성들은 폭력적으로 변한 사회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물과 에너지, 식량을 얻는 일

아프리카에서 깨끗한 물을 긷고, 땔감을 마련하는 일은 주로 여성의 몫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물 부족 현상은 여성과 어린 소녀들이 물을 긷기 위해 또 장작을 줍기 위해 더 많은 거리를 걸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물 부족을 겪고 있고 앞으로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세계 평균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안데스 산맥의 빙하가 사라지고, 그로인해 5천만 명이 물 부족을 겪게 된다. 그들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성들이 물을 긷는데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쏟다보면 휴식이나 교육, 다른 경제활동에 쓸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소녀들은 늘어난 가사노동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지난겨울 한국은 이상한파로 인해 매우 추웠다. 서울 기온이 영하 17.8도까지 내려갔는데, 북한의 경우 개마고원 일대 삼지연은 영하 38.3도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식량난과 에너지난이 만성화된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물도 먹을거리도 난방용 땔감도 부족하고, 심지어 밥을 할 연료조차 부족하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여성들의 고통은 더욱 심했을 것이다. 북한의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기후변화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모든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 북한 여성들이 겪는 절대적인 에너지 빈곤과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의 대상이 조차 되고 있지 못하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 가뭄으로 농업 생산량이 타격을 받았다. 개도국에서 여성들은 주로 자급용 농사를 짓거나 플랜테이션에 고용되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기상이변으로 농사를 망치면 여성들의 삶 또한 흔들리게 된다. 사하라사막이남 지역만 하더라도 농업의 80%를 여성이 담당하고 있지만 직접 토지를 소유한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여성의 경우 소작농으로 일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한계점도 있다.

최근 유가상승으로 바이오연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계 식량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식량가격 상승은 상대적으로 빈곤 상태에 있는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2007년 바이오연료가 세계 식량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브라질의 광활한 사탕수수밭을 찾아갔다. 남성들이 기계를 동원해 사탕수수를 베어놓으면 흙먼지 속에서 사탕수수를 일일이 자르고 분류하는 일은 일용직 여성들의 몫이었다.

개도국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여성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물, 에너지, 식량을 얻는 일이 점점 더 고된 일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기존의 가부장제 하에서 억압박고 차별당하는 여성들을 삶에 더욱 힘든 생존과 생활환경을 만들어냄으로서 여성들의 고통을 심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변화로 인해 취약한 공동체와 여성을 위한 정책이 꼭 필요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문제의식도 정보도 구체적인 대안과 전략도 부족한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성의 책임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다. 이유는 남성보다 여성이 가난해 에너지와 물자를 덜 소비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차를 소유하기 어렵고, 비행기를 덜 타며, 가전제품도 덜 쓰고, 소비도 덜 한다.12) 여성이 주로 담당하는 집안일이나 돌봄은 남성들이 하는 운전, 요트 등과 달리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다.

반면에 여성은 남성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업의 경우 주로 남성들이 의사결정자이기 때문에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을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영국에서는 쉘, BP, Scottish Power, Corus Group, BHP Billiton, 이렇게 5개 회사가 FTSE13) 100대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67%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회사들의 CEO는 모두 남성이며, 이사회 구성원 42명중에 6명만이 여성이다. 그나마 여성임원들은 온실가스 감축에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인사나 총무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여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반면 여성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남성에 비해 적다. 그렇다고 온실가스 감축의 책임을 남성들에게 전가하자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남성들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여성 사망률이 증가하고, 빈곤이 심화되며, 여자아이들이 교육을 덜 받게 되면, 성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성 불평등이 심화되면 여성들이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능력 또한 저하된다. 여성이 기후변화로 인해 입는 피해를 방치하게 되면 결국 그 부담은 남성과 공동체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양성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재해에 취약한 여성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고,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실행하는데 있어 여성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것이 남성과 여성이 조화롭게 기후변화에 맞서는 길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 과정을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이유진(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