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여성] ② 기후변화 대안세력으로서의 여성

2011.10.05 | 기후위기대응

기후변화와 젠더 논의의 전개  

‘기후변화와 여성’에 관한 글을 준비하면서, 나 자신 또한 이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적이 없으며, 국내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도 기후변화와 여성을 다룬 보고서를 찾아볼 수 없었고, 본격적인 논의는 2010년 10월 글로벌여성포럼에서 ‘기후변화와 여성’에 관한 섹션이 열린 것이 유일했다. 그러고 보면 2007년 IPCC 4차 보고서를 통해 한국사회에서도 기후변화 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긴 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을 두고 있을 뿐 기후변화와 노동자, 기후변화와 농민, 기후변화와 빈민, 기후변화와 여성이라는 이해당사자 입장에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걸음마 단계이다.

그래서 UN 여성그룹 기후변화 사이트와 영국의 여성 NGO인 WEN(Women’s Environmental Network)에서 펴낸 ‘젠더와 기후변화 의제(Gender and the Climate Change Agenda)’ 보고서부터 살펴봐야 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여성에 대한 담론의 빈약함은 국제사회도 마찬가지이다. IPCC의 분석보고서에서도 젠더 관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는데, 2003년 보고서에서는 젠더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2007년 보고서에는 여성에 대해 한차례 언급만 했을 뿐이다. 기후변화 부문에서는 UN이 정한 새천년목표의 젠더 평등에 관한 고려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

기후변화에 있어 여성의 역할을 가정, 공동체, 국가, 국제사회로 나눠서 살펴보면 주로 가정과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가정에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탄소발생량을 줄이며, 지역먹을거리 프로젝트나 학부모 교육을 통해 학교의 환경 개선을 돕는 등의 공동체 활동을 이끌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참여가 미미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국회의원의 19%가 여성이고, 미국 상하원을 합해 17%가 여성이다. 여성 대표자가 적은 것은 정책 결정에 성주류화 관점이 덜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기구에서는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처음으로 개발과 환경의 조화를 위해 여성을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채택되었다. 이후 1994년 UNFCCC가 출범한 이후 1995년에 첫 번째 당사국총회가 열렸지만 젠더 관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200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9차 당사국총회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여성(GenderCC)’14) 그룹이 출범했고, 2007년 13차 당사국총회(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성 평등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합의아래 ‘세계젠더와기후변화연대(GGCA; Global Gender and Climate Alliance)’가 결성되었다.15)

GGCA는 기후영향에 대한 성인지적 접근을 위해 3단계 행동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기후변화 저감과 적응에 대한 성별 특성과 관련한 데이터와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평가·분석한다. 둘째, 성별 에너지 소비패턴과 에너지 방출 유형,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성별 영향 분석틀을 마련하고 기후변화 상관변수와 비상관변수를 규명한다. 셋째, 기후변화 저감 및 적응과 관련한 결과를 분석할 때 성인지적 관점을 도입하고 성인지 기준과 지표를 개발한다. 이러한 3단계 행동 전략은 젠더 관점을 기후변화 의제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009년 15차 당사국총회(덴마크 코펜하겐)가 아무런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자 GenderCC는 성명서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이 비용이 아니라 인류가 지속가능하고, 투명하며, 민주적인 저탄소 경제를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여성들이 그런 변화에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1)UNFCCC에서 여성 대표성을 확대할 것, 2) 여성들이 완화와 감축 펀드의 수혜대상이 되도록 할 것, 3) 기후변화정책에서 여성과 남성의 참여를 동시에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다.

앞으로도 WEN, Gender CC, GGCA 등은 기후변화 대응 전략에 있어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되도록 노력하며, 여성참여를 활성화하기위해 적극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국제무대에서의 노력이 국가, 공동체, 개인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더 활발한 논의와 조직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협상장에서 여성의 이해를 관철시기기 위해서는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성그룹들이 풀뿌리 여성들과 보다 활발히 소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여성의 역할

여성은 기후변화의 피해자이기 이전에 대안을 제시하는 희망이 될 수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왕가리 마타이가 이끈 케냐의 그린벨트 운동과 소액대출로 유명한 그라민 은행의 성공배경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의지와 능력을 발휘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단지 그런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와 자원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7월 7일, 군산 <여성주간> 행사에 초청을 받아 500여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강의를 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이 핵발전은 기후변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을 때였다. 청중석에서 에너지 절약 강의만 하면 되지 왜 핵발전소를 비판 하냐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생산해서 소비하는지 시스템을 알아야 절약도 더 잘할 수 있으며, 여성들의 역할이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선택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까지 확대 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거센 항의한 사람은 ‘원자력을이해하는여성모임’회원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먼저 기후변화에 대한 여성의 역할이 왜 가정에너지 절약으로만 도식화되어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이 있는데, 에너지 절약만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여성들이 핵발전 정책이나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 결정과정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면서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데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력을이해하는여성모임’이나 ‘We Green’ 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정부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축이다.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여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절약, 효율개선,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기후변화 영향을 덜 받도록 적응 정책을 펼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잘못된 방식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은 각국의 특수성을 살려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브라질 등에서는 가이아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들이 연기가 많이 나는 스토브 대신 바이오에탄올이나 태양광조리기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 매년 150만 명의 여성이 연기로 인한 폐질환으로 사망하는데, 이렇게 조리용 에너지를 바꿈으로써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줄이고 건강도 좋아진다. 영국에서는 푸드마일리지를 줄이기 위한 지역먹을거리 운동, 공정무역, 에너지전환과 도시농업 활성화 등에 여성의 참여가 활발하다.

한국에서는 여성환경연대의 사업이 돋보인다. 여성환경연대는 ‘파자마 퍼포먼스’를 통해 대형할인매장의 24시간 영업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24시간 영업은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비할 뿐만 아니라 계산대에서 밤을 새며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여성 노동자들의 잦은 야간 근무는 신체 호르몬 분비를 교란시켜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16)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운동이다.

경상남도 통영시 연대도는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섬으로 변신하고 있다. 2007년부터 주민들과 의제 21, 통영시가 협력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마을회관 건물을 겨울철 난방이 필요 없는 패시브하우스로 지었다. 처음부터 연대도 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통영시와 협력해 연대도를 에코섬으로 만들어가는 데에는 윤미숙 사무국장(푸른통영 21)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지난 5년여 동안 연대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고, 합의해 나가는 여성 리더쉽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은 산업부문의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도 녹색성장과 녹색일자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녹색일자리 논의가 주로 남성 중심적인 녹색산업, 기술, 에너지영역으로 국한되고 있어 여성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17) 따라서 여성들이 고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서비스 분야와, 가정 분야,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녹색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뉴욕시는 2005년부터 녹색건축 분야에서 개발자, 건설업자, 노조와 함께 여성을 위한 10% 견습채용과 15% 여성고용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맺어 추진하고 있다. 뉴욕시 사례는 정부와 산업계, 노동조합이 녹색일자리분야에서 어떻게 여성고용을 확대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 하는바가 크다.18)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노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전국농민회총연맹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과 대안 찾기에 더 적극적이다. 그 이유는 주로 소농으로 구성된 여성농민회총연합이 게릴라성 폭우, 폭염, 홍수 피해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농민회총연합은 2010년 4월 7일 “정부는 기후이상으로 인한 농가의 실질적인 피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후이상에 따른 농작물 피해 실태조사, 사전 예방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여성농민 스스로도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데, 바로 소농을 통한 다품종작물 생산과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일이다. 소농은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을 통해서 유기농업이나 질소고정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질소 비료 사용을 대체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역기후에 적합한 토종종자를 잘 지키고 보전하면 이상이변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적응 분야는 연구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여성 소농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겪게 될 영향 분석과 대안마련, 자연재난에 대한 여성의 취약성 등을 조사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더불어 여성 빈곤가구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폭염과 혹한에 건강을 해치기 쉬우며, 과도한 에너지 비용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빈곤, 주거 복지, 에너지 복지를 통합해 정책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

여성들의 역할 중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잘못된 대안을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기후변화 대안으로 핵에너지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영국 얼스터대학 크리스 버스비 교수는 인디펜던트지와의 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원전으로 인해 앞으로 100만 명 이상이 숨질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지난 7월 3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후쿠시마시를 방문했다. 놀라운 것은 연간 방사능 피폭한도를 넘어선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평온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 <아이들을 방사능에서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 대표 나카테 세이치씨는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이들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자신들의 지위와 기반을 지키기 위해 정보를 은폐하는 ‘엘리트 패닉’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후쿠시마현 공무원은 지역 인구가, 시의원은 유권자가, 기업은 고객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피난을 꺼린다는 것이다. 세이치씨는 “지역사회에서의 의사결정자인 중년 남성들이 내리는 보수적인 결정이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핵에너지의 확산을 막는 일에 지역의 이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GenderCC는 ‘사전예방의원칙’에 따라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미래세대에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기술에 반대한고 있다. 이들은 핵발전소, 식량작물을 바이오에탄올로 사용하는 것, 바이오디젤 재배를 위해 열대림을 파괴하는 것, 탄소 포집 저장 기술, 청정개발체제, 개도국 산림파괴와 전용방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방안(REDD)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환경과 여성이 만나야 할때

글을 쓰면서 지난 6여 년간 기후변화 대응 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여성들을 떠올렸다. 2007년 발리 당사국 총회에서 만난 우루술라 씨의 환하게 웃던 모습. 카트레츠에서 온 그녀는 해수면 상승으로 점점 가라앉는 섬나라에 살고 있다. 흙먼지 가득한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여성들의 고된 얼굴과 세계농민조직인 비아 깜빠시나와 연대하며 소농이 기후변화 대안이라고 연설하던 윤금순 (전)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화석에너지 제로섬을 만드는 푸른통영21 윤미숙 국장, 핵발전은 기후변화 대안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던 후쿠시마의 마쯔모토 노리코씨. 이미 현장에는 기후변화로 영향을 받으면서 그에 맞서 싸우는 그녀들이 있었다.

이제 현장의 목소리를 사회적 변화로 이끌어낼 전략적 준비를 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도 구체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여성들이 어떤 피해를 받는지에 대한 조사부터 진행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현재 정부가 수립해 놓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되어있는지, 반영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제안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2008년 정부가 수립한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를 살펴보면 ‘여성’이나 ‘젠더’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19)

글로벌 여성 포럼에서 ‘젠더와 기후변화의 연관성’에 관한 연설을 한 IUCN 상임고문 로레나 아길라르 로벨로는 “젠더 이슈를 다루는 사람들은 환경에 관심이 없었고, 환경을 다루는 사람들은 남녀평등에 관심이 없었다.”라고 전한다.20) 공감이 가는 말이다. 앞으로 환경하는 사람들이 기후변화 의제를, 여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젠더 의제를 서로 전달하고 교류하면서 기후변화와 여성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들이 만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면, 기후변화 정책에 있어서의 성주류화는 요원한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여성의 능력이 기후변화대응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유진(녹색연합 녹색에너지 디자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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