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손으로 새긴 나무의 죽음

2017.12.07 | 고산침엽수

 

기후변화로 인해 나무가 죽어간다는 기사.
그 글을 읽고 이 결과가 어떻게 측정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그냥, 이걸 하는 사람들의 무언가 특별한 방법이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모니터링의 기회가 당장 내일로 다가왔을 때조차 내가 그 곳에 가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혹은 하게 될까 궁금해 했다. 직접 침엽수 고사목 조사를 가기 전 주신 자료에는 실제 어떻게 모니터링을 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는 적혀 있었다. 조사에 참여함으로써 백운산과 함백산의 땅을 밟고, 바람을 느끼고서야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많던 고사목들의 죽음을 하나하나 눈여겨보고 기억하고 한 것이 어떠한 노력인지를.

조사 전날에 미리 정선 고한읍의 숙소에서 장비를 점검하는 등 준비를 했다. 높은 산에 올라가니 단단히 마음먹고 조사에 임한 것이다. 여기서 만반의 준비란 산에서 먹을 음식, 물, 그리고 마음가짐이다. 조사에 어떠한 태도로 참여하겠다는 생각과 앞으로 만나게 될 환경에 대한 기대들이다. 그리고 복장도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등산화, 발목을 덮는 바지, 땀이 차지 않는 상의 등이 그것이다. 발목을 덮는 바지가 필요한 이유는 산에 깊게 쌓인 낙엽들 때문이다. 당시 등산화가 없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발목이 살짝 드러난 바지를 입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발이 밀리어 심장이 철렁했다. 조사를 마친 뒤 운동화 속에 들어간 흙과 낙엽은 화분을 연상시키며 긴 바지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또한 조사 중 가시나무가 바지를 파고들어 허벅지를 쓸렸는데, 다음번엔 튼튼한 옷을 입어야겠다.

총 10명이 3개조로 나뉘었다. 백운산 조 하나, 함백산 조 둘. 그리고 인근 고한읍에서 가까운 하이원리조트에 조경수로 심어진 전나무와 구상나무를 관찰하는 조까지, 모두 3개조로 편성됐다.
먼저 백운산 1450m의 봉우리에 올라가 인공으로 심어진 구상나무 9개체를 보며 세밀한 조사 방법을 배웠다. 여러 개체를 ‘사이트’로 묶어 관찰한다. 1개체당 야장을 1개씩 쓴다. 야장에는 관찰 번호와 조사일, 수고, 흉고, 지역 정보, 지역의 특정과 주변 식생. 그리고 침엽수의 고사 상황에 대한 정보 등을 기입한다. 관찰 번호는 B(백운산)―01(첫 번째 사이트)―01(첫 번째 개체) 식으로 적는다. 수고는 수고 측정기를 통해 재는데, 나무에서 20m 혹은 15m 떨어진 거리에 서서 측정기의 쇠 부분을 잡고 볼에 대어 한쪽 눈으로는 측정기의 눈금을 보고, 한쪽 눈으로는 나무의 꼭대기를 본다.

나무가 지면에 맞닿아 있는 높이와 수평인 곳에서 측정해야 하는데, 자신의 발 보폭을 재서 등고선이 같은 방향으로 20m나 15m만큼 가서 재는 것이다. 수평으로 가기가 쉽지 않을 때는 여러 가지 계산을 통해 구해야 한다. 여기 적은 것 외에도 수고 측정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처음 접해본 심정은 눈금이 계속 흔들리고, 이 눈금이 가지고 있는 수학적 특성, 구체적인 의미를 정확히 알기 힘드니 좀 어렵게 느껴졌다. 흉고는 나무의 가슴 높이에서 직경을 재는 것인데, 파이 줄자를 이용하여 둘레를 재면 바로 cm로 직경이 나온다. 지역 정보는 GPS로, 위도 경도 고도를 측정한다. 이외에도 산의 정상인지 사면인지, 활엽수림인지 혼성림인지에 관한 식생, 주변상황 등을 쓰면 야장의 위쪽을 다 쓴 것이다.

본격적인 고사 상황을 조사 할 때는 ‘단’을 이용했다. 우리가 조사하고자 하는 나무들은 가지가 돌려나는데,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온 각 부분을 단이라 셌다. 단은 그 나무에 대한 년생을 어느 정도 예측하게 해준다.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전문적인 방법이 있겠지만 어림짐작 할 때는 키로 하겠지? 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다니!(하지만 나무의 성장이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는 확신하기 힘들다) 나무의 단을 세서 그 모식도를 야장에 그린다. 그리고 각 단의 특징을 기입한다.
위쪽은 관찰하기 쉽지 않으니 아래쪽 정보를 상세하게 기입하게 된다. 그 단에 잎이 몇 퍼센트 달렸는지, 붉은 잎은 없는지, 완전히 잎이 없는 단은 X, 진행형은 △, 온전한 것은 O로 표기하라고 말씀해주셨다. 또한 야장에 적은 관찰 번호를 리본에 적어 나무의 밑동에 묶어 어떤 개체를 관찰한 것인지 표시한다.

이런 조사를 통해 다음 조사를 나왔을 때, 오늘의 관찰과 비교하며 나무의 고사 양상이 어떠한지를 살피는 것이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의 한 교수님께서도 생물의 스냅샷, 특정한 순간보다는 자연에서 생물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관한 전반적인, 생동감 넘치는 관찰로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하셨다. 그런 면에서 나무 고사의 진행 과정을 보기 위한 시발점이 되는 이 관찰이 큰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백운산에 한 조를 배치하고, 점심을 간단히 먹었다. 함백산으로 가기 전 근처에 조경수로 심어진 구상나무의 어린 개체 집단을 관찰하며 잎의 색상과 유지 성분이 나타내는 의미에 관해 탐구했다. 진한 초록색을 띠면 건강한 것이나 연두색이나 노란 빛을 보이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 말씀해주셨다. 또한 건강한 잎은 뒷면에 잎을 보호하는 유지 성분이 진한 하얀색으로 관찰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함백산에서 본격적인 조사에 임했는데, 내가 조사한 구역은 키가 1m가 안 되는 치수가 많이 분포한 곳이었다. 총 3명이 한 장소를 관찰하며 관찰하는 사람, 야장 쓰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으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어린 나무는 수고를 줄자로 재고, 흉고는 재지 않았다. 어려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단도 10-15개 정도는 되었고, 유지 성분이 있는 잎은 뚜렷이 나타났다. 아직 어린 개체라도 아래쪽 단의 잎은 상당히 떨어진 개체가 많았다. 건강한 개체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개체에서 붉은 잎이 관찰되었다. 또한 잎이 말리거나 잎 뒷면에 유지 성분이 없고 검은 점막이 있는 개체도 있었다. 나무마다 고사 양상이 조금씩 차이가 있어 이것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7m이상 높은 나무는 어린 나무보다 고사가 더욱 진행되어 보였다. 관찰한 바로는 전반적으로 잎이 40%미만으로 남아있었다. 아래쪽 가지와 잎은 거의 떨어지고 위쪽일수록 유지가 남아있는 것 같다. 유지 성분은 나무줄기와 가까운 안쪽 잎은 유지가 별로 없고 바깥쪽에 달린 잎일수록 유지 성분이 많은 경향을 띠었다. 왜 안쪽부터, 아래쪽부터 고사의 흔적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일까?

큰 나무는 치수보다 관찰이 훨씬 힘들었는데, 공간이 없어 수고 측정을 위해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여 키의 배수로 어림짐작하였고, 나무 꼭대기가 어딘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의 키 언저리에 위치한 잎들이 거의 떨어져 유지 성분의 분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위쪽의 잎을 봐야했는데, 쉽지 않았다. 다음 관찰에 우리가 기록한 정보들이 잘 쓰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또한 어린 나무와 큰 나무의 차이를 고려한 고사 양상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관찰한 개체는 모두 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건강한 나무라는 통제 집단이 필요해 보였다.

가장 마음을 흔든 장면은, 나무 밑동이 완전히 끊어져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였다. 처음엔 나무가 흔들리기에 ‘숨을 쉬는가?’했는데, 위태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이었다. 정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걸 보는 순간, 현 상황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한 생명, 아니 여러 생명의 죽음이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기후 변화의 위협을 뜨겁게 느꼈다.

정현진 님은 광주광역시가 고향으로 이화여대 생명과학과에 재학중인 녹색연합 회원이다. 진로를 생태보전으로 삼고 녹색연합의 현장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17년 녹색연합 기후변화 시민 모니터링에 참여했다.

글 정현진 사진 녹색연합

*위 글은 녹색희망 260호(2017년 11-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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