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수 없겠습니다

2020.09.07 | 고산침엽수

지리산, 한라산 등지의 구상나무 군락지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하얗게 마르며 종의 절멸에 다가가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며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로 죽어가는 생물이 나타나고 있다. 구상나무가 집단고사하고 있다. 2020년 7월 현재 지리산의 구상나무 군락은 멸종이 심화되고 있다. 구상나무는 한해가 다르게 더욱 더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구상나무가 한반도 육지에서 기후변화로 사라진 첫 번째 생물종이 될 것이다. 녹색연합은 2020년 3월부터 6월말까지 지리산 동부의 천왕봉과 서부의 반야봉, 제주 한라산 백록담 일대의 구상나무 서식지를 살폈다. 2019년부터는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제석봉 동쪽으로 하봉 써리봉 등의 동부지리산의 주요 구상나무 군락에서 집단고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기후변화라는 심각한 현장을 살피고자 올라간 한라산국립공원 탐방로에는 청춘의 발길이 넘쳤다. 작년부터 한라산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젊어져 간소한 달리기 복장의 20~30대 남녀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한라산 아고산대의 숲을 이루는 구상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탐방로 양쪽의 구상나무숲은 고사목의 전시장이었다. 특히 한라산 백록담 정상으로 오르는 해발 1700~1800m 일대는 처참할 정도다. 이미 죽어서 앙상한 뼈만 남은 채 서 있거나,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서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하다. 이제 한라산에서 성한 모습의 구상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한국의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등 아고산대에서 서식하는 고산침엽수는 3종이다. 전나무류(속)의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류(속)의 가문비나무다. 3종 모두 주로 해발 1200m 위에서 자란다. 그런데 구상나무의 집단고사가 가장 먼저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지리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리산 구상나무의 집단 서식지인 동부의 천왕봉 · 중봉 · 하봉과 서부의 반야봉 일대 모두 집단고사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산 정상부부터 해발 1500m까지는 성한 구상나무가 거의 없다.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구상나무 뿐이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탐방로마다 죽어가는 구상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중산리 코스는 해발 1200m 근처부터 구상나무가 출현한다. 그런데 1500m 근처부터 구상나무의 본격적인 떼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해발 1800m 전후 탐방로 주변의 구상나무 군락은 대규모 죽음의 전시장처럼 되어가고 있다.

구상나무 집단고사의 주요 원인은 겨울철 적설량 부족에 따른 봄철 건조다. 백두대간의 아고산대 침엽수인 구상나무는 1월과 2월에 내린 눈으로 4월 말에 5월 초순까지 수분 공급을 받는다. 그런데 지난 2000년 초반부터 적설량이 현격히 줄었다. 2015년 전후부터는 과거의 3분의 1 수준이 됐다. 눈이 적게 내리면 구상나무는 봄철 수분 공급 불량에 의한 스트레스와 동결 건조에 시달린다. 과거와 같은 양의 눈이 내린다고 해도 기후변화 탓에 증발산 속도가 현격히 빨라졌다. 게다가 백두대간의 봄철 건조는 적설량 부족을 더욱 위협한다. 겨울과 봄을 거치며 수분 스트레스와 건조에 시달린 구상나무는 여름철 폭염과 태풍까지 덮치면 초죽음 상태로 내몰린다.

구상나무를 비롯한 고산침엽수는 숲이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우러져 있을 때보다 침엽수만 단일종으로 밀집되어 있을 때 떼죽음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라산 동사면 성판악코스 일대, 지리산 동부 천왕봉·중봉·하봉과 서부 반야봉 일대 등이 남한에서 구상나무의 최대 집단서식지다. 그런데 이 세 곳의 구상나무 집단고사가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전지역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다.

2020년은 구상나무에게 각별한 해다. 조선의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그 존재를 세계에 알린 지 100년째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영국인 식물학자 어네스트 헬리 윌슨이 1917년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고 1920년 하버드대학교 식물연구소에 ‘한국의 제주도 한라산에서 서식하는 한국특산종’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렸다. 이 땅에서 수만 년 이상 살아온 구상나무가 국제사회에 정식 학명(Abies koreana)을 가진 식물로 처음 이름을 드러낸 것이다. 구상나무는 학명을 부여받고 세상에 존재감을 알린 지 100년 만에 멸종이 언급될 정도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구상나무는 전 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의 지리산과 한라산에만 서식한다. 한국특산종이다. 윌슨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구상나무는 이후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용으로 각광을 받았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안성맞춤이다. 구상나무는 현재 국제멸종위기 목록인 ‘레드 리스트(red list)’에 위기종으로 등록되어 있다. 1998년 ‘위기 근접종(NT)’에서 2013년 ‘멸종위기종(EN)’으로 상향조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환경부의 ‘멸종위기 및 보호종 리스트’에는 빠져 있다. ‘인위적인 훼손에 의한 멸종위기종만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유다. 환경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멸종위기종 선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 관리에서 기후변화라는 전지구적 현실이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을 한 몸으로 보고 있다. 멸종위기종을 살필 때 기후변화를 최우선 사항으로 검토한다. 기후변화의 최전선인 자연생태계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전면적인 관찰과 분석이 기후변화 적응의 핵심 중 하나다. 여기에 재해·재난이 더해져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의 틀이 짜인다.  기후위기는 점점 우리의 삶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에서 기후위기는 훨씬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종의 멸종은 결국 인간의 삶을 포위하며 좁혀 오게 된다. 구상나무의 멸종위기는 한반도 육지에서 나타나는 기후위기의 경고등이다.

글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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