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 곰 처리기준`은 차선책

2005.03.22 |

사람들이 곰의 쓸개에 약효가 있다고 지나치게 믿기 시작하면서 우리 땅에서 자연상태의 곰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쓸개를 얻기 위해 곰을 사육하는 농장이 생겼다. 곰을 사육하는 농장의 환경 은 대부분 열악하며, 때때로 살아 있는 곰의 쓸개즙을 채취하는 비인간적인 일까지 일어나 가슴 아프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곰을 사육하게 된 것은 산림청이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1980년대 초에 곰 사육을 장려하면서부터다. 재수출을 전제 로 곰 수입을 허용했으나, 이후 곰 수출이 여의치 않아지는 등 문제가 있자 산림청에서는 1985년에 곰 수입과 수출을 금지했고, 그동안 수입돼 사육중인 곰 처리가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산림청은 1999년 농가소득 보전차원에서 그동안 수입해 사육 하고 있는 곰과 그 곰으로부터 증식된 곰을 가공품의 재료로 사 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와 함께 곰을 처리할 수 있는 연령 기준을 마련했으나 그 직후 산림청의 야생동물 관리업무는 환경부로 이관됐다.

당시 산림청은 반달가슴곰의 대체적인 수명인 24년을 곰의 처리 연령기준으로 정했다. 정부를 믿고 곰을 수입해 매년 70만~80만 원의 사육비를 들여 키우던 농가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곰의 수 명이 다할 때까지 키우기만 하라는 정부의 안에 난감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사육농가는 아예 처리 연령기준을 없애거나 현실에 맞게 낮추어 줄 것을 정부에 끈질기게 요구해왔으나 이제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얼마 전 환경부는 종전에 시·도에서 담당하던 사육곰 관리업무 가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2005. 2)과 함께 지방환경청으로 이관되고, 처리기준 등이 변경됨에 따라 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사육곰 관리지침’을 마련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사육곰 관리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면서 사육농가의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 1980년부터 1985년 6월까지 수입하여 사육중인 곰은 종전과 같은 처리기준을 적용하되 그 개체로부터 증식된 곰은 처리기준을 10년으로 완화했다. 그리고 곰을 처리 하고자 할 때는 지방환경청장의 승인을 받되 식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이것은 사육농가 처지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으나 사육곰 관리의 합리화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책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1600여마리의 곰이 사육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정책의 혼선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불가피하게 인공사육을 허용하고 있으나, 곰에 대한 국제적 관리추세와 국민적 정서를 고려할 때 언젠가는 곰 사육을 억제 또는 금지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지금부터 장·단기 대책을 수립, 시행하기 바란다.

한반도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그리고 끊어져가는 한국 야생 반달가슴곰의 대를 이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환경부는 연해주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혈통의 곰을 들여 와 지리산에 방사도 하고 있지 않은가.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이 성공하여 백두대간 전역에 곰이 퍼져 있을 즈음이면, 농장에서 쓸개를 얻기 위해 곰을 사육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그 때쯤이면 곰쓸개에 과도한 집착을 가지는 사람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부는 사육곰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신규 사육장은 금지하고 현재 사육하는 곰은 빠른 시일 안에 전자칩을 부 착하는 등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 최근 부각되고 있는 동물 복지(animal welfare) 개념에 따라 사육곰에게도 최소한의 복지가 허용되도록 사육장 시설과 환경에 관심을 가져 야할 것이다.

[이항 / 서울대 교수,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장]

2005년 3월 21일 문화일보에 이항교수님께서 기고하신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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