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G] 너를 만나러 가는 길

2017.02.01 | 산양

겨울이다. 뜨거운 커피를 옆에 두고 ‘겨울’을 한번 떠올려 본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코트와 목도리로 무장한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에 입에서 쉴새없이 나오는 하얀 입김. 당장 ‘겨울’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보지만 무언가 좀 아쉽다. 아, ‘눈’이 빠졌다. 세상을 온통 하얗게 만드는 ‘눈’이야말로 겨울의 정점이지 않을까. ‘눈’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눈으로 뒤덮여 온통 하얗던 세상 속에서 ‘너’를 만났던 때를 다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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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4일, 당시 강원도와 경북동해안 지역은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일행과 함께 너를 만나러 경상북도 울진으로 향했다. 우리는 갈때까지만 해도 너를 만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오히려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한 겨울에 너를 만난다는건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눈 쌓인 울진 숲 속을 2시간정도 헤매다 결국 너를 만났다. 눈이 가득 쌓인 사면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너, 바로‘산양’을. 너는 우리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너의 키보다 높이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보기만 할 뿐, 계속 그 자리였다. 우리는 일단 자리를 피했다. 너 혼자 헤쳐나갈 수 있다면,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섣불리 너를 안고 내려올 수는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난 후 그 자리에 다시 왔다. 너는 그대로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지친 기색이었다. 우리는 너에게 다가가 놀라지 않게 눈을 가리고, 발을 묶어주었다. 나는 작고 앙상했던 너를 안고 2시간을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는동안 너는 새근새근한 숨소리 외에 미동도 없었다. 나는 산에서 내려와 구조센터에 연락을 했고, 곧장 출발했다. 너를 돌보고 치료할 수 있는 곳까지 가려면 3시간이나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 동안 이 과정 속에서 너의 친구들이 수없이 생을 다했다. 다행스럽게도 너는 적절한 돌봄과 치료를 받고 건강히 회복했다. 그 해 6월, 너는 나를 만났던 그 자리에서 다시 숲의 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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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너에게 참으로 혹독한 계절이다. 추위는 물론이고, 더 큰 문제는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너는 겨울이 오면 나무 껍질, 이끼 등을 먹으며 겨우 생을 연명한다. 바위 처마 밑에 웅크리고 누워 하루 빨리 겨울이 지나가길 바라고 바란다. 물이라도 마시러 계곡 근처로 내려왔다가 눈 쌓인 사면을 오르지 못하고 낑낑대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다하고 만다. 2010년부터 5년간 울진에서만 약 40마리(발견된 것만)의 너를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다.

‘너’를 수식하는 단어는 꽤 많다.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천연기념물제217호, IUCN 적색목록(Red List) 취약종(VU). 이 많은 수식어는 너가 굉장히 중요한 동물이며, 위기에 처한 동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조용하고 깊은 산, 바위가 많은 곳을 좋아하는 너는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약 700여마리밖에 살고 있지 않다. 그 중 100마리 이상 집단으로 살고 있는 곳이 울진삼척 지역이다. 하지만 그 곳에는 산양을 구조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전혀 없다. 전문구조치료센터는 3시간이 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 동안 많은 산양들이 이동 중에 목숨을 잃었다.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이라는 수식어는 쓸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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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너를 지키려는 노력을 계속했던 덕분일까? 울진에 산양 구조치료센터 건립이 진행 중이다. 센터가 건립이 된다면 이제는 더 이상 치료시설로 이동 중 죽는 너를 보지 않아도 될 수 있고, 구조된 너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숲의 품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너에 대한 관심이 겨울처럼 차가워지면 센터 건립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추운 겨울임에도 너를 안으며 느꼈던 온기를 잊지 않고 이렇게 사람들과 나눠야 하는 까닭이다.

올해는 눈이 얼마나 올까.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커피잔을 집어 든다. 뜨거웠던 커피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추운 겨울, 불같이 뜨거운 감정을 나눈 그 날의 온기도 아직 남아 있다.

글: 한만형. meerkat@greenkorea.org

*이 글은 빅이슈 149호 <플랜G>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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