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활동가 교육] 산양의 시선을 따라가다

2019.12.20 | 산양

한 발 더 가까이

지난 11일, ‘현장에 가면 조금 더 산양의 마음을, 야생동물의 입장을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울진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잠시 휴게소에 들려 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출발 전의 하늘은 뿌연 하늘이었으나, 휴게소에서의 하늘은 맑은 하늘이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날씨가 다르다고 배웠는데, 이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울진에 도착하여 야생동물과 사육곰, 조사 장비 사용법과 독도법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멸종위기 종인 산양을 보호하는 활동은 단순히 한 종을 보호하는 활동이 아니라고 한다. 산양을 보호하는 활동은 산양의 서식지와 생태계를 보전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사람은 생태계를 망가뜨려 왔다. 멧돼지가 사람들이 사는 집에 내려오는 이유는 집이 없어서, 그리고 먹이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육식동물 중 최상위 포식자가 삵이나 담비와 같은 작은 동물이라는 것이 충격이었다. 많이 망가진 생태계이지만,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회복 가능한 생태계,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생태계를 마음에 간직하고, 몸을 움직여 지키기를 다짐했다.

이후 사육곰에 대해 배웠는데,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곰을 사육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가한 국가는 세계에서 중국과 한국뿐이라고 한다. 19g의 웅담을 위해 10년을 철창 속에서 사는 곰의 생을 생각해보았다. 내가 곰이라면 어떤 기분일까? 녹색연합에서 구출한 반이와 달이, 곰이, 들이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구출하지 못한 곰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 곰을 구출하여 보호할 시설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마음 아팠다. 반면에 마음 아픈 상황에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하게 해나가고, 고뇌하며 열정을 다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나도 저런 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저녁 식사를 하고, 조사 장비를 사용하는 법과 독도법을 배웠다. 산에서 내려올 때 길을 잘못 들어서면 출발점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밑으로 내려가서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낸다는 것을 배웠다.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빠른 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동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감탄했다. 마치 인생 같았다. 내일도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는 기대감과 ‘잘 배워야 할텐데’ 걱정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지수 신입활동가)

무전기가 있길래 동기들과 함께 귀에 대고 무전을 하는 척 장난을 쳤다.
알고 보니 무전기가 아니라 GPS였다. 하하.

 

다음 생엔 산양으로…

걱정 반 설렘 반. 기다리고 기다리던 현장을 가는 둘째 날이 밝았다. 비몽사몽 행동식과 물통, 사진기 등 준비물을 챙기고 옷을 단디 챙겨 입고서 아침을 먹으러 근처 마을의 ‘보부상주막촌’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아홉시부터 네 시까지 일곱 시간 동안의 산행에 대비해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아침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태영 활동가에게 보부상들이 옛날에 이곳 해안가인 울진에서 내륙으로 생선을 팔러 다녔다는 이야기도 듣고 왜 내륙 지방인 안동이 왜 간고등어로 유명한가 등 지역의 유래에 대한 알쓸신잡 지식도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어머니가 챙겨주신 점심 주먹밥과 따뜻한 물을 챙겨서 오늘의 탐사지이자 삼린유전자원보호구역이기도 한 응봉산으로 향했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라 미리 산림청에 조사를 위해 허가를 받아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관리 초소를 지나고 임도를 지나 계곡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여기서부터 계곡을 쭉 따라 올라가는 것! 다 같이 단체 사진을 찍고 손을 모아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 아자아자 산양!”을 외치고 출발했다.

아자아자 산양!

길 초반에서 고라니 똥을 발견했는데, 고라니는 주로 이렇게 물이 있는 곳 근처 낮은 지대에 살고 똥도 산양보다 작다고 한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산양 똥도 발견해서 전날 배운 대로 GPS 좌표를 기록하고 가로세로 크기와 개수를 계산하고 주변 환경이 어떤 곳인지 일지에 기록했다. 처음이라 아무 생각 없이 걷는 나와 달리 숙련된 탐사 전문가 태영이 산양 똥이나 야생동물의 흔적을 볼 때마다 놓치지 않고 알려주었다. 물이 흐르는 계곡 옆으로 난 완만한 길을 걷다가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기도 하고, 물이 없는 계곡의 바위지대를 지나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 계곡을 따라 걷다가 경사가 있는 능선부에 들어섰다. 전날 지도를 보며 능선을 타고 간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등산로도 아니고 능선을 따라 오르는 건 뭘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그냥 길도 없이 이런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는 거였구나… 직접 보니 이해가 되었다.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올라가기

처음엔 그래도 두발로 걸어갈 수 있는 정도였는데 점점 가팔라지는 경사에 나중엔 네 발로 기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일한 생명줄인 나무는 듬성듬성 있어 잡을 데도 마땅치 않고, 바닥도 돌이 아니라 흙과 낙엽이라 네 발로 가도 위태로운 기분이었다. 어떤 곳에 가서도 체험해보지 못한 극기 훈련을 하는 느낌? 대체 산양을 조사하러 온 건지 산행을 온 건지 훈련하러 온 건지 탐사의 목적을 망각하고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는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앞에 가던 채현은 어느 순간부터 발이 죽죽 미끄러지더니 저만치 뒤처져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자꾸 미끄러지니 발을 딛는 게 더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거의 눕다시피 땅에 붙어 자신도 이 상황이 웃긴지 실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채현은 이때부터 혼이 반쯤 빠져나갔는지 이후에도 갑자기 산양 똥을 먹질 않나, 내가 하는 농담에 아주 빵빵 터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느리게 오는 채현 덕분에 나는 자주 쉴 수 있어 좋았지만 별명이 ‘수락산 날다람쥐’인 지수의 산타기 실력을 못 봐서 좀 아쉬웠다.

두 시간 정도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타면서 중간에 설치해둔 무인 카메라의 배터리와 SD카드를 교체하기도 하고, 삵의 똥과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멧돼지 집도 관찰했다. 물론 많은 산양 똥도 함께. 가장 난코스였지만 힘들어서 그런가, 오르면서 많이 웃어서 그런가 2박 3일 현장탐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바위에 걸터앉아 한없이 바라봤던 눈 시리게 푸른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과 바다, 고요함 가운데 들리는 바람 소리는 인조적인 것 하나 없이 ‘자연’스러웠다. 인간도 이 자연과 어울려 살던 때가 있었는데, 일부였던 때가 있었는데. 차를 타고 다섯 시간을 오지 않아도 서울 성곽만 벗어나면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이 보이고 야생동물의 길과 사람의 길이 다르지 않았던 때, 인간이 야생동물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그도 자연의 일부로써 조화롭게 살았던 때를 그려보았다. 콘크리트 안에 나를 가두면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동물’이라는 감각, 자연의 일부라는 감각 아닐까? 철없게도 이런 풍경을 매일 보고 사는 산양이 부러워졌다. 다음 생엔 꼭 산양으로 태어나리! (이다예 신입활동가)

눈시리게 푸르렀던 산과 바다, 하늘

 

산양의 시선을 따라가면

따뜻한 아침 밥으로 배를 채우고 안일왕산으로 향했다. 전날 응봉산 비탈진 경사면에서 한껏 떨었던 탓에 긴장됐지만 현장에서의 짜릿함을 다시 느낄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돌다리를 건너 안일왕산 초입에 도착! 켜켜이 쌓인 낙엽에 발이 푹푹 빠졌던 응봉산과 달리 안일왕산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어 흙을 밟으며 보다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지 낙엽과 솔잎이 많아 미끄러지지 않으려 다리에 힘을 주어 올랐다.

얼마 가지 않아서 산양 똥 발견! GPS에서 확인했을 때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도 여러 똥무더기가 있는 걸 보니 산양이 자주 다니는 길인듯 했다. 산양 똥은 외진 곳이 아닌 등산로로 바뀐 산의 사면이나 능선을 따라 난 길 한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태영 활동가가 나뭇가지로 낙엽을 살살 치워보면 똥이 있었는데 어떤 건 표면이 말라있고 어떤 건 촉촉해 싼지 얼마나 오래된 똥인지 가늠해보기도 했다. 전날보다 쉬운 코스라는 말에 안심도 잠시, 가파른 능선을 오르내리는 과정이 반복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나도 모르게 침을 흘리고 이상한 추임새를 내었는데 동기들과 서로의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며 정신없이 산을 올랐다. 산은 마치 우리들에게 ‘야생동물의 숨결을 느끼러 왔으면 인간으로서 등산을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지 않겠냐’고 말하는 듯하였다.

털이 섞여있던 삵 똥

“어? 어제 본 삵 똥!” 응봉산에서의 하루 덕분에 삵 똥도 육안으로 구분해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육식동물 중 가장 큰 상위 포식자, 삵이 산다는 건 산의 높은 생물다양성을 의미했다. 능선 중간중간 쌓인 나뭇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멧돼지가 만든 ‘나뭇가지 이불’이었다. 짧은 코로 나뭇가지 덤불을 들어 올리고 그 사이로 쏙! 들어가는 멧돼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흥미로움도 잠시 ‘멧돼지를 여기서 만나버리면 어쩌지?’ 싶었다. 그만큼 우리는 야생동물의 세계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잔뜩 헤집어진 땅에선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신이 나 땅을 헤집는 멧돼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침묵 속에서 산행에 집중하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우리를, 야생동물이 어디에선가 킁킁 냄새를 맡고 귀를 쫑긋 세우며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맛있는 향에 취해 멧돼지가 파놓은 땅

또다시 산을 오르다 나뭇가지로 낙엽을 살살 가르니 오소리 굴이 나왔다. ‘이제 정상에 다다랐구나’ 안심한 순간 앞서가는 동료들이 능선을 벗어나 깎아지른 암석 위로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산양의 모습을 담은 무인 카메라의 배터리와 메모리 카드를 교체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니 곁눈질에 허공이 보여 아찔했다. 그러다 발을 헛디딘 미래를 상상해버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땅을 짚어 네발 달린 동물처럼 엉금엉금 움직였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손을 내어주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태영 활동가와 은정 활동가, 동기들 덕분에 마침내 무인 카메라 설치 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무인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건 산양이 자주 나타나는 장소란 의미다. 산양의 시선을 따라가면 능선을 따라 초록선을 그은 듯 푸르른 침엽수가 나 있어 멋진 절경이 펼쳐졌다. 산양은 여기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말 그대로 아찔했으나 산양의 몸짓과 숨결을 상상해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깎아지른 암벽에서 내려오는 길

도시에선 야생동물보다 ‘강력’한 존재이나 야생동물의 터전에서 한없이 움츠러드는 내 모습을 보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이윤을 목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의 시간을 빼앗아왔나? 야생동물의 온전한 삶터에 도로, 스키장, 광산을 만들고선 도시로 밀려온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 우리에게는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채현 신입활동가)

산양의 시선을 따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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