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고기’가 아니다.

2014.02.14 | 생명 이동권

l_2014021301001720800136712치맥과 돈가스 마니아였던 내가 육식을 끊은 것은 3년 전이었다. 무려 350만마리의 돼지와 소, 650만마리의 닭과 오리, 합해서 서울 인구만큼의 생명들이 땅에 묻히는데, 불판에선 아무렇지 않게 고기가 구워졌다. 그때 난 처음으로, 내 평생 ‘고기’로만 봤던 그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다큐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가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 완성을 앞둔 지금, 또다시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저번엔 돼지였고, 이번엔 오리다. 현행법으로는 가축을 매몰할 땐 안락사 후 묻어야 한다고 돼 있으나, 내가 목격한 모든 살처분 현장에서 돼지들과 오리들은 살아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 병에 걸리지도 않은 멀쩡한 목숨들이었다.

의사와 정치인, 행정가들은 끓여먹으면 안전하니 더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끓여먹으면 되는 게 아니라, 질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 아닌가. 우리가 고기를 값싸게 많이 먹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밀집사육이 존재해야 하고,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변이와 전염병의 대규모 발생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는 동물의 99.9%는 ‘공장’에서 ‘제조’된다. 알 낳는 닭들은 이른바 ‘배터리 케이지’라 불리는 곳에서, A4용지 3분의 2만한 넓이의 공간에 갇혀 평생 날개 한번 못 펴고, 햇빛도 못 보고 살아간다.
‘끓여먹으면 안전하니 마음 놓고 먹어라’고 권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단 한번이라도 ‘농장’이라 불리는 그곳에 가 보셨는지. 오물과 악취가 가득한 밀폐된 축사에서 질병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시는지. 거기서 생산된 고기를 먹는 것이 과연 국민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시는지. 철통 방역으로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을 물리치겠다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바이러스 발생을 소독약과 살처분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지금의 공장식 축산이 정말 바람직하고 우리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사육 형태라면, 왜 축산현장은 일반인에게 결코 공개되지 않는지. 배추밭도 볼 수 있고, 당근밭도 볼 수 있는데, 고기와 달걀이 생산되는 곳은 왜 볼 수 없는지. ‘자식 같은 가축을 묻는 농민의 심정’이라 말하는 축산기업들에 묻고 싶다. 자식을 진정 그렇게 키우시는지.

콜린 캠벨을 비롯한 세계적인 영양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야채, 과일, 견과류, 통 곡물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한다는 것이 명백히 밝혀졌다. 인간은 다른 동물의 살을 먹지 않아도 충분하며 오히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럼에도 먹어야겠다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란 동물을 가끔씩 조금 먹는 것이 건강에도 이롭다. 이번 영화를 만들며 대안이 될 수 있는 농장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축사, 콘크리트가 아닌 흙바닥, 유전자조작 사료가 아닌 농사부산물 사료, 돼지는 돼지답게 닭은 닭답게 살게 하는 조건. 이런 농장에서는 약, 항생제 없이도, 거뜬히 바이러스와 질병을 이겨낸다.

구제역 살처분 대란 때, 정부는 축산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육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이 아니라, 방역 위주의 정책이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번 AI를 계기로 축산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획기적 방안이, 공장식 축산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일개 영화감독인 내가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공장식 축산에 정부가 들이붓는 막대한 지원금에 내 세금이 쓰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소규모·친환경·동물복지 농장은 설 곳을 잃고, 공장식 축산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져가며, 살처분은 일상이 되고, 바이러스는 무서운 인수공통 전염병이 되어 문 앞을 서성인다. 동물을 ‘고기’로만 보지 않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생명’으로 보는 시선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다큐멘터리 황 윤감독의 경향신문 칼럼을 허락을 받고 게재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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