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곰이 백운산으로 향한 까닭은

2020.03.12 | 생명 이동권

전남 광양 백운산에서 활동하던 반달가슴곰 KM-55는 지난 14일 올무에 걸려 바위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법적으로 설치된 사냥용구에 희생된 것이다. 2014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KM-55는 2016년 7월 지리산을 처음 벗어났으며, 섬진강을 건너 20km정도 떨어진 광양 백운산에서 지냈다.

이 곰은 지난달 11일 밤 광양시 다압면의 한 양봉농가에서 벌통 1개와 시설물을 부순 뒤 벌꿀과 유충을 먹고 달아나기도 했다. 피해 양봉장 주변에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고 보험회사를 통해 피해 보상을 하기로 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우려가 나왔다. (…) KM-55의 사망사고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세계 최초로 반달가슴곰을 인공수정으로 출산하는데 성공했다고 홍보한지 3일만에 벌어졌다. 종복원사업의 명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연달아 일어난 셈이다.

‐ 2018.06.15 경향신문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길게 뻗은 산줄기도 실상 켜켜이 쌓인 조각의 연속이었고, 지리산 자락은 그야말로 감옥이었습니다. 내가 나기 전 내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던 때는 분명 달랐겠지만 내가 죽던 2018년은 그랬습니다.

미국에 산다는 어떤 흑곰은 80km를 움직여 산다는데, 요란한 팡파르로 복원 성공을 자축한 우리나라 반달가슴곰들은 지리산에 갇혀 삽니다. 이마저도 사람들이 오가는 탐방로, 도로 등 152개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맘 놓고 나다니며 살 곳은 사실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살면서 딱 한 번은 천성대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너른 들도, 고요한 강도, 또 다른 산과 골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두려웠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을 상상하며 어둠을 헤치고, 사람들의 공간을 넘어 강을 가르고, 또 다른 산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다했습니다. 고작 지리산에서 20km 떨어진 곳이지만 그 새로운 곳에 들어갈 때의 마음은 참 벅찼습니다. 그리곤 그게 다였습니다.

제 몸을 옥죄던 올무를 끝끝내 이기지는 못했거든요.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갈 수 있는 곳, 아니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이 어디까지인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생명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을, 나 역시 당신들과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린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매해 봄이면 활동가들은 순례를 나선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수많은 현장의 길을 걷는다.

사람들이 ‘KM-55’라고 이름 붙인 반달가슴곰 이야기입니다. 2014년에 태어난 녀석은 지리산을 벗어나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곤 20km 정도 떨어진 광양 백운산에 들었다가 올무에 걸려 죽었습니다. 2018년 6월의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반달가슴곰 복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2002년입니다.

당시 환경과학원의 업무이던 반달가슴곰(시험용) 관리 업무가 국립공원공단으로 넘어오면서 지금의 ‘국립공원생물종보전원’으로 이어집니다. 1983년 5월, 대여섯 살 된 암곰이 설악산에서 밀렵꾼의 총탄에 숨진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반달가슴곰은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2000년과 2002년에 지리산의 무인센서카메라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포착됩니다. 그렇게 지리산을 근거지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2004년엔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이 우리나라 반달가슴곰과 유전자가 같은 러시아 연해주의 반달가슴곰을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29호,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1급인 반달가슴곰은 과거 호랑이, 표범과 함께 우리나라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핵심종(개체 수에 관계없이 일정 영역의 생태계에서 생태 군집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종을 말한다.) 역할을했습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20년~30년을 살았던 반달가슴곰은 일제강점기 ‘해수 구제’ 정책으로 개체 수가 급감하게 됩니다. 당시 일제는 위험한 동물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상징 같은 호랑이, 표범, 반달가슴곰 등 대형 포유류 7만 여마리를 계획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반달가슴곰은 그 뒤 한국전쟁으로 그 수가 계속 감소했고, 웅담을 얻으려는 밀렵 때문에 멸종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반달가슴곰 수난사입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일은 사실 반가운 일이고, 독려해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녹색연합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에 줄곧 우려를 표해왔습니다.

논리는 간단합니다. 행동반경을 고려한 안정적인 서식처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개체 수를 늘리는 복원사업은 완전하지도 또 온당하지도 않습니다. 자칫 환경과 생태계를 위한 복원사업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분칠로만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반달가슴곰 수난사의 연장일 뿐입니다.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도보 순례를 떠납니다. 활동가들은 무쌍한 자연과 또 인간이 낸 생채기들을 현장에서 만납니다. 2020년 스물세 번째 녹색순례는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지나 광양 백운산에 들었던 그 반달가슴곰의 여정을 밟습니다. 2020년 5월, 전국의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사무실을 벗어나 녀석의 그때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글 정규석 /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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