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점박이물범의 안부를 묻는다

2010.12.03 | 생명 이동권

녹색연합이 하고 있는 야생동물보호운동은 주로 산양, 맹꽁이, 점박이물범 같은 멸종위기야생동물을 조사하고 서식지와 개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점박이 물범은 우리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해양포유동물이다. 350여 마리가 서해바다를 오가며 백령도에서 주로 서식하며, 날이 추워지면 중국의 랴오뚱만으로 이동해서 그곳의 얼음바다 위에 새끼를 낳고 살다가 날이 풀리면 백령도로 다시 내려온다. 랴오뚱만 일대가 빠르게 산업화되면서 해안이 오염되고 중국 쪽에선 털가죽을 얻기 위해 새끼 물범을 포획하는 일도 많고 지구온난화로 얼음바다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점박이물범이 백령도 바다로 이동해 오면 포획같은 직접적인 위협요인은 없지만 점박이물범이 어민들의 주수입원인 까나리를 먹어치우고, 다시마나 미역을 채취하는 바위를 차지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해왔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방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보호운동의 주체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 녹색연합은 백령도 점박이물범을 조사하는 한편, 주민들이 점박이 물범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생태관광 시범사업을 하고 백령도의 특산품들을 도시민들과 직거래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백령도 학생들에게도 점박이물범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일년 활동을 평가하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는 요즘, 야생동물 담당자에게 물었다.  
“점박이물범 서식의 핵심적인 위협요인은 뭔가요?”
야생동물 담당자는 바로 “올해는 무엇보다 천안함 사건이었다”라고 답했다.
올봄 천안함이 46명의 젊은이들을 태우고 두 동강으로 침몰한 뒤 구조와 수색, 선체 인양 등으로 백령도의 바다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새끼들을 데리고 내려와 한창 먹이활동을 해야 하는 그 시기에 점박이물범은 물범바위 위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도, 바다 속을 헤엄치며 먹이를 찾아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에 비해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특히 쌍끌이 어선들이 바다 밑을 샅샅이 수색하고 다닌 연봉바위 일대엔 머물던 점박이물범 70여 마리가 모두 사라졌다. 백령도 주민들의 생활 역시 마비되어 원래 계획되었던 지역주민들과 녹색연합이 함께 하기로 되어있던 여러 활동들은 대부분 미뤄져야만 했다.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으며 물범조사와 주민활동을 다시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연평도가 북으로 공격을 받는 참사가 일어났다.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연평도 주민들은 대부분 섬을 떠나고, 북과 가장 가까운 곳인 백령도 주민들도 짐을 싸고 있다. 이어 핵항공모함이 들어오는 한미 연합훈련이 대규모로 서해에서 진행되며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한 긴장감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정말 이러다 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지난 60년간 DMZ와 서해 5도 지역은 남과 북 모두 군사적 이유로 개발과 인간의 간섭이 자제되면서 한반도에선 가장 좋은 야생동물의 서식처가 되어왔다. 백령도 점박이물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600 마리밖에 남지 않는 저어새도 한강하구를 비롯해 북한 황해도 지역에, 재두리미도 김포와 북한 황해남도에, 북한의 장산곶매는 접경지역을 따라 남한에서도 발견된다.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이 야생동물들의 생존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애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사람들의 삶터가 불탄 마당에 야생동물 타령을 하는 거, 정말 송구스런 일이다. 그러나 전쟁과 전쟁위기, 군사적 행위 속에서 피해를 받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대형 포유동물은 일제시대 때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6.25때 거의 멸종에 이르게 된다. 온 산천을 뒤덮은 포탄에 야생동물이라고 안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토머스 홉스가 정의한 전쟁은 ‘전쟁을 하고 있을 때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상태’ 모두를 말한다. 홉스의 정의를 빌어오면 지금은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다. 이런 시기에는 모든 고려가 전쟁 앞에서 무시된다. 특히나 환경문제는 전혀 고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쟁 중 각 나라의 문화재들은 파괴하지 말자는 국제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쟁 때에도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국제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백령도 점박이 물범의 안위를 위해, 물범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산천의 환경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 ‘전쟁’은 절대로 포함되어선 안 된다.

점박이물범이 황해도 앞바다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가는 시기이다. 서해 5도를 뒤덮은 이 긴장을 뚫고 무사히 랴오뚱만의 얼음바다로 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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