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과 친구하며 공존의 길을 생각하다

2010.12.20 | 생명 이동권

지난 주말, 금강산 관광이 다시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으는 <금강산 올레걷기> 행사에 다녀왔다. 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길이 열린 지 12주년이 되는 해이건만, 2008년 여름 이후 그 길은 굳게 닫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개점휴업상태인 동해선도로남북출입국사무소를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1시간여 민통선 길을 참가자와 함께 걸었다. 동해안 철책 선을 나란히 보며 걷는 길가엔 갈대며 억새가 어울려 바람결에 수없이 몸을 흔들어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자연의 길에 드는 걷기문화가 시민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금, 언젠가 분단의 장벽이 무너져 절책선이 걷힌 자연의 길을 ‘금강산 올레길’이라 이름하고 걷는 날을 그리워해 본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에 지역개발을 앞세워 인위의 도로와 시설물로 개발한 길 대신에, 비무장지대를 야생동물에게 돌려주고,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자연인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을 기대하며 저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창작동화 <산왕부루>에서 지리산에서 태어난 부루가 분단의 철책선인 벼락가시골을 넘어 백두산왕의 딸 솔나를 만나 함께 지리산으로 돌아와 산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떠오른다. 이미 남쪽에서는 멸종이 된 호랑이가 과거에 백두대간을 타고 지리산 호랑이, 백두산 호랑이가 서로 오고가며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생태계가 풍요로운 한반도 산줄기 백두대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의 서식지이자 핵심이동통로이다.

야생동물…. 그동안 녹색희망에 실어 온 <녹색운동 20년 발자취> 졸고를 야생동물보호운동을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녹색연합이 야생동물에 관심을 갖고 보호운동을 한 것은 백두대간 보호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96년부터 조사를 시작하여 98년에 발간한 <백두대간환경대탐사>보고서는 생태계보고로서 남한 전 구간의 백두대간 생태가치를 밝힘과 동시에 훼손현장을 담고 있다.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파악과 야생동물을 위협하는 서식지 훼손현장과 밀렵실태 보고는 녹색연합 야생동물보호운동의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 96년에 결성한 지리산 자연환경생태보존회는 지리산 야생동물 서식실태를 조사하면서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으며, 밀렵꾼들에 의해 절멸위기에 놓여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백두대간 환경대탐사를 해 오던 우리는 97년 11월 지리산생태보존회와 함께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 보전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열면서 반달가슴곰 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98년에는 한․일 심포지엄을 열어 야생동물 핵심서식지로서 백두대간 보전방안, 밀렵근절 방안, 지역주민의 참여방안 등 대안을 마련하였다.

가슴에 흰색 반달모양을 한 반달가슴곰은 1982년부터 천연기념물 329호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동물원에 갇힌 구경거리거나, 웅담 등을 얻을 수 있는 보신용 동물로 인식되었다. 밀렵꾼들의 좋은 사냥감이나 농가의 사육곰으로 사육되어 왔을 뿐, 보호를 위한 실태조사나 정부 정책이 전무한 상태에 있었다. 한국의 야생동물 보호수준이 이렇다 보니 실력 있는 동물생태학자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97년 당시 일본에서 포유동물학을 공부하고 막 한국에 들어와 환경부 생태계조사단으로 일하던 한상훈박사를 만나면서 일본반달곰연구소 등 전문가를 초청한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반달가슴곰 및 야생동물보호운동의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정부는 반달가슴곰보호정책을 ‘종 복원’을 중심으로 잡고 복원 개체를 도입하여 방사하는 식으로 개체수를 늘리는 일을 추진해 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게 생각했다.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및 그 주변지역에서 도로 등 무분별한 개발 사업으로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와 단절이 계속되는 현장에서 서식지 복원 없이 특정 야생동물을 방사하는 일은 졸속행정이지 진정한 종복원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백두대간보호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동,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 지정과 울진숲길을 위한 활동, 지리산 국립공원 등에서 도로개발을 중단하고 옛길복원으로 자연 탐방하는 지리산 둘레길 사업, 지역주민과 공존하는 백령도 점박이물범 보호운동, 산양의 친구 박그림선생의 설악산 보호활동 등  자연현장에서 야생동물과 친구하며, 공존의 길을 찾아왔다.

무엇보다 고맙고 소중한 일은 녹색연합 회원모임인 ‘녹색친구들’과 회원들이 앞장서서 해마다 벌이고 있는 야생동물을 위한 밀렵방지 캠페인이다. 겨울에 들어서면 밀렵꾼의 밀렵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이들이 설치해 놓은 올무, 덫 등에 야생동물이 다치고 죽어갈 때, 야생동물의 친구들은 그 밀렵도구를 수거해 야생동물을 지키는 일을 사명으로 해 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녹색시민의 정신이자 행동이다. 우리는 야생의 반달가슴곰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면서 야생이 아닌 비좁은 철장 안에 갇힌 사육곰의 아픈 현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지구상에 중국과 한국에서만 곰을 사육해서 웅담을 채취하는 사육곰정책이 지속되고 있다. 2003년부터 웅담이 불법으로 거래되는 중국곰농장을 조사하고, 한국의 사육농가에서 사육되고 있는 1400여 마리 사육곰의 실태를 조사, 보고하였다. 최근에는 곰사육 농가보호, 웅담 대체 한약 제안, 사육정책 폐지 이후 사육곰의 관리방안 등 대안을 찾으면서 사육곰 천사들과 함께 사육곰 정책 폐지 입법캠페인을 진행,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밀렵으로 절멸위기에 놓인 야생의 반달가슴곰, 개체복원을 위해 방사되는 반달가슴곰, 사육되는 반달가슴곰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직도 갈 길이 먼 우리나라 야생동물보호의 현실이다. 서울도심 삼청공원에서 멧돼지가 출현했다고 멧돼지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대증요법에서 야생동물의 먹이사슬구조가 살아나는 생태계 복원을 긴 안목으로 세우고 이행해 가는 것이 진정한 야생동물의 친구가 되는 길일 것이다.  

녹색연합 창립 20주년을 맞아 4월부터 12월까지 녹색운동의 주요한 바럴음을 돌아봅니다.

글 :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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