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못지켜내면 그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못 살아”

2003.06.19 | 환경일반

2003년 6월 17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서 765kV 송전철탑 결사반대 2차 범주민 궐기대회가 있었다. 가곡면에는 이미 154kV 울진 T/L과 345kV 울진-신태백 T/L 송전선로가 경유하고 있어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온 지 오래다.

765kV 송전철탑 결사반대 2차 범주민 궐기대회



오전 9시, 행사 시작 전부터 이미 많은 수의 주민들이 집결 장소에 모여있었다. 마을의 모든 가게들도 ‘금일휴업’간판을 내걸고 집회에 동참하였다.
마을전체 인원 700명 가운데 6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번 765kV 송전철탑 결사반대 2차 범주민 궐기대회에 함께 했다. 평생을 땅만 파고 살아오신 주민들이 ‘투쟁’과 ‘쟁취’로 점철된 집회현장에 모두 모인 것이다. 이는 그간의 사태의 깊이와 주민들의 열망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라.

2003년 6월 17일 오전 10시 30분 765kV 송전철탑 결사반대 2차 범주민 궐기대회가 시작되었다. 가곡면민들과 송전탑건설반대 뜻을 같이 하는 원덕읍 부녀회의 풍물로 행사의 막을 열었다.



여느 때 같으면 풍물장단에 덩실덩실 춤사위로 놀아보련만 궐기대회에 참여하신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근심이 가득하다.

어려운 거동에도 불구하고 궐기대회에 참여하신 민무기(81)할아버지도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행사시작부터 마무리 가두행진까지 함께 하시며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셨다.
“피해가 오래되었지. 그런데 복구는 하나도 없어.”  

실제로 가곡면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측이 345kV 송전탑 진입도로와 철탑부지 조성을 위해 천연림을 마구잡이로 베어내고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토사 등을 그대로 두어 2002년 태풍 ‘루사’때 송전탑 작업로 등에서 산사태가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가옥과 농경지가 유실․매몰되고 산간 계곡으로 대량의 토사가 유출되는 등 수해피해 정도가 더욱 컸다.
또한 한전은 진입도로 개설 당시 동활리 춘바위골 취수원을 훼손하여 마을주민들이 6년 이상 제대로 된 식수를 마시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송전탑 건설로 인해 가곡면 주민들 의 생활권은 유린된 채 방치되어있었다.
그러나 한전 측은 345kV 송전선로 건설 피해에 대한 복구와 보상 없이 765kV 송전선로 건설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는 한전이 ‘345kV 송전선로 피해조치가 이루어진 이후에 765kV 선로 건설에 관한 전반적인 사안을 주민협의를 통해서 결정하겠다고’한 한전측 스스로의 약속을 깨버린 처사이다.



환경부또한 송전선로 예정부지의 지질과 식생에 대한 전반적 조사없이 한전 측의 자체 조사에만 의지해 환경영향평가에 협의하는 등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승인하도록 묵인하고 있다.  

이 지역의 765kV 송전탑 건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곳은 비무장지대와 더불어 남한최대의 산양서식지로, 산 곳곳에 배설물과 발자국 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마을 주민들에 의해 자주 목격되기도 하였다.
산양은 외부의 간섭에 민감해 일부 지역의 험준한 고산지역에만 생존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217호의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앞으로 이 지역에 154kV, 345kV 외에 대단위 초고압 송전선로망인 765kV 송전탑이 건설된다면 공사로 발생되는 소음과 진동, 작업로와 송전탑 부지로 인한 서식지 단절과 파괴로 인해 산양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번 궐기대회에서는 송전철탑특별위원회의원과 가곡면 번영회집행부, 사회단체장 등 20여명이 삭발로 그 결의를 다졌다.



또한 철탑모형상여를 이고 765kV 송전탑예정부지인 오저2리까지 3.6km의 가두행진을 한 뒤 그 자리에서 상여를 불태우는 등 주민들 스스로 비통함을 추스르고 송전탑 건설반대의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산이 좋아 물이 좋아 이곳에 왔어.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고장, 우리 아이들 대대손손 살아갈 이곳에 더 이상의 피해를 볼 수가 없어. 내가 못지켜내면 그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못 살아”
삭발식을 마치고 주위의 놀란 반응에 환한 미소로 답하시던 가곡면 탕곡리 박노분(60)할머님의 말씀이 아직도 내 머리와 가슴에 큰 종으로 남아있다.

글 : 남경숙 zeumeun2@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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