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대책,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어야!

2011.01.14 | 환경일반

최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TV 뉴스를 보다가 황급히 채널을 돌려야 했다. 구제역 관련 뉴스를 내보내면서 덤프트럭에 실은 살아있는 돼지를 쓰레기 버리듯이 구덩이 속으로 쏟아버리고 포크레인으로 뒤처리(죽임)를 하는 모습과 함께 이미 생매장한 구덩이에서 핏물이 넘쳐흘려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는 내용이었다. 정말 소름이 끼쳤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이렇게 죽임을 당한 소와 돼지가 150만마리에 달할 때까지 이렇다 할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당국도 안타깝고 한심스럽지만 대책이라고 시행하는 것이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생매장하는 것이라나…, 더구나 구제역 확진 판정도 받지 않은 가축까지 마구잡이로 살처분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물론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살처분과 생매장 이전에 취할 수 있는 충분한 대책을 마련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많은 이견이 나오고 있다. 백신접종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초기엔 고려조차 하지 않다가 이젠 마구잡이로 접종하고 있다. 축산농가의 입장에선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소와 돼지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생매장 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그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가축은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올리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전제로 키워지는 것이지만 나는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이 모든 생명체엔 생물권 또는 동물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제역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채로 매장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살처분과 생매장의 대상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대책도 마련되어야 하며, 결국 살처분을 피할 수 없는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안된다. 살아있는 동물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포크레인 삽날로 짓이겨 죽이는 살육의 광경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들에게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게 들릴 것인가?

생매장 현장을 다녀온 공무원들과 수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했다. 생매장 현장에 동원된 공무원들은 몇일이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다. 멀쩡한 생명을 산채로 때려죽여서 묻어버리는 작업에 동원되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동물 복지를 하는 단체들은 유기농으로 재배되고 고통없이 죽은 고기들만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해 우리가 환경운동, 생명운동을 하듯이 그들은 동물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동물 복지론자는 아니라도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를 위해 키워졌고 또 우리 때문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생명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생매장을 금지하고 부득이하게 살처분을 하여야 하는 가축들에겐 반드시 안락사를 시킬 것을 요구한다. 물론 안다. 인력과 약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래도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지혜를 모으면 반드시 해법이 찾아질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이 기회에 날로 늘어나고 있는 육식문화와, 마치 공산품을 찍어내듯이 대규모로 길러지고 죽이는 축산정책에 대한 성찰과 변화가 필요하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이렇게 감당할 수 없이 번지는 것도 대규모 축사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한번 전염병이 돌면 대책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이번 구제역 대란을 보면서 나부터라도 육식을 삼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육식에 대한 욕망을 줄이지 않는다면 오늘과 같은 사태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월 14일자에 게재된 나용입니다.(제목 : 비교육적인 가축 생매장)

  최승국(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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