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강좌] 6강, 땅에 뿌리내리는 삶, 귀농

2008.07.21 | 행사/교육/공지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나와 같이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찾아 알게 된 ‘씨앗나눔’. 늦게 안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늦게나마 제6강 귀농에 참가했다.

첫날 아침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씨앗나눔에 처음 참가하는 데다, 나 혼자 참가하는 것이라 1박2일을 낯선 사람들과 같이 지낼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녀온 뒤 생각해 보니, 그 걱정을 떨쳐버리고 발걸음을 옮긴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될 만큼 귀농 프로그램 참가는 좋은 경험이었다.

서울 강변역에서 4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전라북도 장수 산서면이라는 산 위에 있는 마을에 가니 녹색연합과 관련된 일을 하시다 귀농한 네 쌍의 부부가 계셨다. 2시에 도착하여 하루 동안 묵을 귀농인의 집에 가서 집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받았다. 여느 시골집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집이었으나 특이한 점은 생태화장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변기에 앉아도 머리가 보이는 반토막짜리 화장실 문과 뚫려 있는 변기, 그리고 거름으로 쓰일 인분. 처음에는 창피하고 불편 했지만 정말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화장실이라는 생각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방에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뒤 생강 밭에 갔다. 우리가 할 일은 생강 밭의 잡초를 뽑고 여름내 습기가 달아나지 않도록 볏짚을 덮어주는 일이었다. 유기농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약을 뿌리지 않아 사람 손을 많이 필요로 했다. 제초제를 뿌리면 사람 손을 덜 필요로 하고 번거로움이 덜하지만 땅에도, 먹는 사람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환경과 사람을 생각한다는 생각으로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대신 인분을 뿌려 땅에 영양분을 주는데, 우리가 간 날은 인분을 뿌린지 얼마 되지 않아 질퍽거렸다. 800평이 되는 생강 밭을 10명이 한 고랑 반씩 맡아 잡초를 뽑았는데 잡초를 하나하나 뽑으면서 흙을 보면 여러 벌레와 곤충이 있었고 무당벌레가 낳은 알들도 반짝거리며 풀과 흙 사이에 붙어 있었다. 어떤 잡초는 뽑히기 싫은지 흙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있었고 어떤 잡초는 너무 조그마해서 그냥 지나칠 뻔 한 것도 있었다. 혹여나 다른 벌레들을 밟거나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작업을 해 나갔다.

일을 한지 두 시간 여쯤이 지났을까? 새참을 먹으라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 가보니 직접 기른 부추로 만든 전과 시원한 막걸 리, 오미자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쭈그려 앉아 불편한 줄도 모르고 먹으며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신비스러웠고, 맑은 하늘에 구름은 평화로워 보였다. 멋진 경치와 함께 새참을 다 먹은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잡초뽑기를 끝내고 나서 짚을 날라 밭에 햇빛이 들지 않도록 두 겹으로 덮어주는데 이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잡초뽑기를 다 하지 못하고 7시에 밭을 나와야 했다. 10명이서 매달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이 부부는 며칠이 걸리지만 그래도 다 해낸다고 하니 대단할 따름이었다. 한나절 동안만 밭일을 하고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농사일이라는 것은 정직하고, 평소 다른 일을 할 때와 달리 마음이 따뜻해 지는 느낌이었다.  

밭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면서 귀농인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왜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는지, 힘든 점은 없으신지, 후회는 안 하시는지, 농사법은 어떻게 아시는지, 귀농을 하려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아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하시는지 등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고 이에 대해 흔쾌히 대답해 주셨다. 귀농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많은 고민을 하고 망설이기보다는 와서 부딪히면서 귀농의 삶을 겪고 터를 일구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다 보면 결국엔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고 욕심이 없어 보였다. 그저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것이었다. 둘째 날 산으로 산책을 하러 가는 길에 길가에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꽃 한 송이의 이름과 특징을 하나하나 아는 귀농인의 모습을 보며 자연의 작은 것 하나도 기억하는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귀농인의 삶을 TV와 책으로 본 적이 있다. TV와 책에서 보이는 것은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농사일이 주된 일이 아니기도 하고, 여유롭고 풍족한 삶처럼 보이기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전라북도 장수에서 본 귀농인들의 삶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현실이라고 해서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환상처럼 가지고 있던 멋진 삶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다. 도시 사람과 사는 법이 다를 뿐,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필요한 것을 사고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밥을 먹고 밭일을 가고, 점심을 먹고 일을 하고 저녁에 들어와 쉬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나름대로 고민도 있고. 장수에 내려가서 본 삶은 놀랍도록 신기한 삶이 아니라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보고 온 것이다. 다만 그들은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과 자발적으로 이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선택권 없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회의적으로 말하면 바쁘고 삭막한 삶을 산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귀농인들은 자연의 소중함과 친환경적인 삶을 알고 느끼며 귀농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삶과 가장 큰 차이점이며 그것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소중하고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귀농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이곳에 왔다. 귀농의 삶을 본 뒤에도 나중에 귀농을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거나, 귀농을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아니다. 솔직히 귀농이 쉬운 일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귀농여부를 떠나 이 삶에서 부러운 것은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도시에 사는 나는 자연과 함께 하기 힘들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과 함께이고, 일을 하는 내내 자연과 함께이고, 가족들과 있을 때에도, 친구들과 있을 때에도 자연과 함께인 그들, 그리고 자연과 함께인 삶에 만족하는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바라본 주위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이틀 동안 주위가 온통 자연인 곳에 있다 도시에 오니 도시의 풍경이 낯설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자연과 함께 한 이틀이 그리워진다.

■ 글 : 6강 참가자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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