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가 되다

2008.08.05 | 행사/교육/공지

청년, 농부가 되다
이 글은 2008년 7월 4일(금)~7월 8일(화) 4박 5일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에서 진행된 청년생태농부학교 뿌리내림 참가후기입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자락은 한국 생명평화운동의 산실이며, 생태순환공동체, 유기농업의 살아있는 역사가 숨쉬는 곳입니다.

다시 찾은 실상사. 정겨운 마음의 고향

한번 갔던 곳을 잊지 못해 또 다시 찾는 데에 여행의 묘미가 있다고 한다. 작년 10월에 개인적으로 갔었던 산내면의 실상사와 인드라망 공동체를 녹색연합 청년생태농부학교를 통해 다시 간다. 산 안에 안겨 있는 마을이라 山內라 한다. 한생명, 귀농학교, 작은학교 등 생명평화의 공동체들이 이 마을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는 여타 절들과 달리 산속에 있지 않고, 실상사 농장의 들판과 어울려 있다. 해탈교를 지나 천왕문 앞에 연꽃 밭에 그렁그렁 만발한 연꽃들이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것 같다. 생명평화의 도량 실상사에서 4박5일 동안 숙박을 한다고 하니 이게 웬 행운인가 싶다.

청년생태농부학교

석유가격이 폭등하여 물가가 하루가 멀다하고 오르고 있다. 그나마 저렴한 공산품에선 제3세계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 냄새가 나고, 저렴한 식품엔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와 유전자조작 식품이 들어있지는 않을까하여 노심초사하게 된다. 도시의 삶의 기반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출렁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멀미가 난다. 보도 블럭 밑에는 바다가 있는 것 같다. 이 멀미나는 일상을 지속시키는 근본 원인을 생각한다. 도시인의 생활양식과 시고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것은 도시의 일렁임을 지속시킬 것이다. 도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통해서 자급자족과 순환 가능한 삶, 땅에 뿌리박은 삶을 택한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만족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일렁이는 바다는 잠잠해지고 멀미는 멎을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의 끝에 얻은 결론은 ‘귀농’이다.

그러나 농촌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도시 촌놈이 ‘농촌의 삶이 대안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소롭다. 농촌은 농촌 나름대로 그 지층에 도시에서 일어나는 문제 못지않은 문제들이 화석이 되어 켜켜히 쌓여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경험하고 싶고, 만나보고 싶다. 그곳의 삶을, 그곳의 사람들을.

지리산 종주길이 아닌 지리산길을 걷다

첫째날, 여정을 풀고 간단한 소개를 마친 뒤 우리가 간 곳은 ‘지리산 길’이다. 지리산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전남.전북.경남) 5개시군(구례.남원.하동.산청.함양) 16개읍면 80여개 마을을 이어주는 300여km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2007년부터 5년간 각종 자원 조사와 정비를 통해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하여 길을 완성할 것이라 한다. 지리산길은 지리산의 맥을 끊어 놓는 노고단 도로에 대한 반발이 무산되면서 대안으로 만들어졌다.

지리산길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그 동안 지리산 종주를 꿈꿔왔던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지리산 종주를 위해선 지리산 천왕봉을 찍는 순간의 성취감으로 지리산에 오는 무수한 인간들의 발길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편히 쉴 보금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인간들의 성취감과 정복정신으로 야생동물들은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가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던 지리산은 더 이상 현재의 지리산이 아니라는 것은 슬픈 사실이다.

지리산길에는 정상이 없다. 대신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 농부들의 노동요가 있고, 마을 어린이들이 재잘대는 목소리와 놀이의 흔적들이 있다. 마을 지나 숲길이 나오면 그 옛날 화전민들의 흔적인 묵답과 무논의 이야기가 있고, 야생동물들의 흔적들을 볼 수 있으며, 맨발로 걷고 싶은 보드라운 흙길과 싱그러운 숲내음이 있다. 지리산길이 열리는 날 여러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축제를 벌였다 한다. 사람과 자연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이 길의 소중함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고 소박하게 바래본다.

감자밭에서 고추밭에서

둘째 날은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는 날이다. 10년차의 노련한 귀농인, 최성민 선생님과 함께 했다. 작업은 감자캐기였다. 올해 실상사 귀농 공동부지의 감자 작황은 썩 좋지 않다. 농협에서 새로 개발한 씨감자를 보급받아 심었는데, 감자의 알이 워낙 잘아 팔기 곤란하다 한다. 일손이 딸려 감자밭을 묵혀둘까도 싶었지만, 마침 건강한 청년들이 일손을 돕겠다 하니 마을에서 자급할 용으로라도 수확을 해야겠다고 하신다.

비닐 멀칭을 벗겨내고 호미로 이랑을 헤집는다. 검은 흙 속에서 황색의 자잘한 감자 알들이 고개를 내민다. 정말 귀엽고, 반갑다. 거개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은 처음 해보는 감자캐기가 재밌어 하하 호호 웃으며 작업을 하는데 옆에서 왕영술, 최성민 선생님은 ‘휴- 이걸 어디다 쓰나…’하는 푸념과 함께 연신 한숨을 내쉰다. 웃음이 ‘쏙‘ 들어간다.

새참으로 찐감자와 막걸리, 미숫가루, 수박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우리가 막 캐낸 감자를 쪄 왔다 한다. 감자는 맛은 둘째 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내가 난 자식처럼 사랑스럽다. 새참시간에 모두가 감자 작황이 안 좋다는 아쉬움을 잠시 잊은 것 같다. 난 분위기에 취해 감자와 수박 막걸리를 정신없이 먹어대 결국 배탈이 났다;;

셋째 날, 넷째 날에도 농사일은 계속 이어진다. 우린 마늘을 캐고, 고추밭에 김을 매고, 고추나무를 바로 세워주는 작업을 했다. 밥상에서만 봐 온, 혹은 시장이나 마트에서나 보던 음식이나 식재료에 불과하던 것들이 우리의 정성스런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생명임을 알게 됐다. 실상사에서 매끼 밥을 먹을 때마다 논밭에서 우리가 했던 작업들을 떠올랐다. 음식에 각별한 의미가 부여됐다.

농사일을 제대로 알려면 농촌에서 1년은 지내봐야 한단다. 1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것이 농사일이니 당연한 말이다. 애써 잡초를 뽑아주고, 쓰러지지 말라고 고정해 준 고추들이 태풍에 쓸려 꺾여 나가고 잡초를 제때 못 뽑아 주어 마늘 알이 영글지 않는 수난을 겪고도 ‘농사일이 다 그런거지-.’ 씁쓸한 웃음 한번 짓고, 낙담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농사꾼이리라. 그런데 고작 3일 몸이 고단해질 일도 없이 농사일을 ‘즐기다’ 온 내가 농사일에 대해 아는체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히 느끼고 온 것 같다. 농사일이란 자연과 조우하는 일이라는 것을. 도시에선 날씨가 흐리면 ‘우산을 가져가야겠다.’정도로 생각하고 말지만, 농촌에선 날씨가 흐리면 우산보다도 감자를 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감자는 습기에 약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농촌에선 자연을 잘 이해하고 자연의 순리를 잘 따르는 겸손함과 부지런함이 건강한 농작물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선물한다.
귀농인과 토박이 농민

농촌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의 어려움은 ‘관행농‘을 거부하고 ‘유기농’을 고집하는 데 있지만은 않다. 사실 그것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음을 할 것이냐다. 최성민 선생님은 귀농인들 중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태반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는 소홀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성민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전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사파티스타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성공의 일등공신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원주민의 삶을 존경하는 태도이다. 아래 사이먼 토미의『반자본주의』에 나온 문구를 몇 줄 인용해 본다.

“사파티스타들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정교함은 훨씬 떨어져도 이를테면 ‘존엄’과 ‘존경’이란 소박한 가치에 헌신한다. 이는 곧 어떤 목소리가 됐든 그것이 원하거나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양 굴지 않겠다는 뜻이다. …… 삶의 중차대한 문제를 놓고서 무언가 제언하는 것도 어떤 궁극의 답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사파티즘은 자율주의에 관한 견해와 사상보다는 차라리 자율적인 공간의 창춘이라는 쪽에 무게를 더 싣는다.” ―사이먼 토미,『사이먼 토미, 반자본주의』, p.242

귀농인 중에는 가방 끈 길고, 도시에서 노동운동이니 환경운동이니 하는 소위 ‘운동권’들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농촌의 삶을 통해 구현하려는 원대한 뜻을 품고 농촌에 내려온다. 이런 귀농인들은 농촌의 원주민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종종있단다. 그 이유는 귀농인들이 그 지역의 조건과 사람들의 가치관을 종중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내세우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드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간디가 강조했듯, 모든 공동체 운동의 기본 조건은 그 지역의 전통과 조건에 기초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가야 한다. ‘함께’가지 못하고, 타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권위적으로 구는 것은 농촌 경제를 파탄내는 신자유주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농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적일 수 있다.

5일 동안 같은 작업복

지리산에 4박 5일 동안 머무르면서 인상 깊었던 사실 중 하나는 5일 내내 한번도 바뀌지 않았던 왕영술 한생명 사무국장님의 작업복이었다. 아무리 작업복이라지만 첫째 날에 물놀이를 해서 흠뻑 젖기도 했고, 뙤약볕에 작업하면서 땀에 절어 다시 입기 찝찝할 법도 한데, 같은 옷을 계속 입으시더라. 왕영술 국장님은 귀농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부지런함’과 ‘타인에 대한 존경’과 함께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삶’이라 하셨다. 이를 몸으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촌에서는 때 묻고 땀에 절은 그의 작업복이 훨씬 자연스럽고 주변과 잘 어울린다.

적게 쓰고 적게 먹는 삶에 만족할 수만 있다면 농촌에 사는 것이 어려울 것이 뭐 있을까 싶은 자신감도 생긴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예술, 학문을 도시를 떠나면 포기해야 하나 하는 점이다. 그러나 산내면에서는 귀농인들이 늘고 공동체가 활성화 되면서 마을 도서관도 생기고, 취미반과 공부모임도 생겨 도시의 혜택이라고만 여겨졌던 이런 문화생활들을 남부럽지 않게 누리고 있다고 한다. 사실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건 많이 먹고 많이 쓰는 것보다 더 편안 일이다. 습관은 들이게 마련이고 습관만 잘 든다면 신경 쓸 것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실천이다.

쏟아지는 별빛을 가슴에 담다

“혼자 여행하다 밤이 깊었는데, 마땅히 잘 곳 없어 헤매다 절을 만났어. 그 절 스님께 하룻밤 재워 주십사 부탁을 했더니, 스님이 꽃 모종을 하나 주면서 이 꽃을 저 마당에 거꾸로 심고 오면 재워주고, 바로 심으면 재워주지 않겠대. 너는 꽃을 어떻게 심을 테야?”
(실상사 주지 재연스님과의 차담 중에서)

지리산에서 넷째날, 사람들의 닫혔던 마음이 드디어 열린 듯 했다. 오후에는 약밥을 신나게 만들면서 그동안 묵혀뒀던 웃음들을 터뜨렸다. 저녁때는 왕영술 국장님이 시키지 않아도 고추밭에 나가 일을 하겠다고 하더니만, 고추밭에서 스스럼없이 노래를 한자락 씩들 뽑아낸다. 밤에 술 한 잔씩들을 걸치고서는 해탈교에 다함께 대(大)자로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열어젖힌 가슴에 한가득 받아낸다.

지금도 사람들은 그날을 추억하며, ‘그날 밤 우린 해탈교에서 해탈을 했어’라고 부처님이 지나가다 웃을 농담을 한다. 해탈까지는 아니더라도, 해탈의 씨앗이 우리 가슴에 던져졌으리라. 그곳에서 함께한 청년들은 실상사 주지 재연스님의 가르침대로 자기 자신이 편하자고 꽃 모종을 거꾸로 심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글 : 자작나무 성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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