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느리게 걸어볼까?

2010.08.10 | 행사/교육/공지

너무나 많은 당위들이 우리를 채근하는 시대다. 잠깐이라도 멈춰서 한숨이라도 돌리면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기 일쑤고, 어쩐지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 걸까? 더욱 많은 생산과 소비는 누구를 위한 걸까? (생산적(?)노동에 어떤 신성한 가치부여와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의아하다) 열심히 달리고 달리다보면 끝내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기다리는 거 아닐까? 인생은 어떤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닌 ‘과정 그 자체’일 텐데 가만 생각해보면 대부분은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도 싶다.

인생은 처음부터 어떤 육상 코스 위에 놓인 채 시작되고, 그곳에서 룰을 따라 열심히 경주를 할 건지, 아니면 경기를 무시하고 코스위에서 쉴 건지, 아니면 적당히 즐기면서 달릴 건지, 트랙을 이탈할 건지 정도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또 그런 커다란 ‘구조’가 전제하고 있지 않다면 현재 ‘우리’라고 하는 관계망 속에 정립된 ‘나’를 비롯한 개개인의 정체성도 지금과는 달랐을 테고, 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사고 과정이란 일정한 기준에 근거한 ‘틀 짓기’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편협한 인식 속에 시달리며 살 수 밖에 없다는 회의적인 결론에 귀착되면서… 결국 이런 무의미한 경기(인생)도 인간으로서 ‘나름 의미 있겠다.’싶은 무기력한 긍정을 하기도 한다. 각설하고.

꽤 오래전부터 유럽에서는 ‘느리게 걷기’운동이 일종의 문화 운동처럼 유행했었다. 그 운동의 정확한 배경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으나, 좀 더 빠른 시간에 좀 더 많은 생산을 제일의 가치척도로 내세우고 있는 ‘산업 시대’ 패러다임에 대한 반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생산’을 위한 기계적인 가치척도를 벗어나 ‘인간성을 수복하며 살자!’라는 구호가 음모(?)처럼 그 운동의 배경에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멋대로의 결론을 내리면서 나 역시 심심치 않게 친구들에게 ‘야~ 좀 느리게 걸어’라고 떠들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작년, 혹은 재작년쯤 우리나라에서도 ‘느리게 걷자’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싸구려 커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이제는 ‘별, 콩’ 커피 정도는 사마실 만한 여유는 생겼을 것 같은 장기하씨의 앨범에 수록된 ‘느리게 걷자’라는 곡도, 또 작년 즈음에 했던 양희은씨의 ‘느리게 걷기’라는 콘서트 제목도, 또 그런 비슷한 종류의 제목으로 출판된 다양한 도서도 이런 유행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유행도 산업시대 속에서는 하나의 트렌드로 소비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우리는 그저 단 한순간 마치 유원지에 다녀오듯 느리게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느리게 걷기’를 하나의 생활 태도로서 고수하기는 어려운 사회 분위기 속에 살고 있다. 나 역시 경제적 책임을 무한히 유보시킨 채 기타나 퉁기며 홍대 구석진 합주실에 구겨져 있을 때는 나름 ‘느리게 걷는’ 고상한(?)생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다시금 돈을 위한 ‘만인의 투쟁’ 현장에 동참한 지금 ‘느리게 걷기’는 ‘언감생심’의 사치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이번 울진 숲길 걷기 ‘촬영’은 오래간만에 나에게 ‘사치’를 허락해 줄 것으로 기대하던 프로젝트였다. 물론 이제 갓 방송업계에 입문한 햇병아리의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게 금방 밝혀졌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산림자원 보호구역이었던가? 어떤 명목으로든 숲이 비교적 잘 보존된 울진 숲길 은 말 그대로 녹음이 우거지고, 도처에 희귀 야생초와 다양한 야생동물의 흔적이 산재해 있는 산림자원(?)의 보고였다. (모든 생명을 ‘자원’이라 표현하는 이 자본주의적 몰상식함은 마침내 인간 스스로도 ‘인적 자원’이라고 표현되게끔 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왔으니 자업자득이다!) 길을 걷는 동안 거의 내내 맑게 흐르는 계곡물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 곳의 물은 500ml 네 병을 떠 마셔도 탈은커녕 고소할 만큼 맑았다. 물을 준비해 가지 않아 ‘타는 목마름’으로 가장 먼저 계곡물을 떠 마시는 ‘모험’을 감행 할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안일함에 감사해야할 대목일까? 본인은 숲길의 다양한 장면을 호들갑스럽게 자랑해야하는 방송물을 제작해야하는 입장으로서 여유 있는 산행은 고사하고 산행 내내 카메라를 가지고 이리저리 뛰느라 내(內)설악이라도 등반한 마냥 비 오듯 땀을 쏟아냈으나, 지금 나에겐 험난한 이 길이 분명 누군가에겐 장자의 무위자연을 가슴 속에 살포시 심어줄만한 훌륭한 경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결국 환경의 동물이므로, 당장 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느리게 걸으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이 자연의 침묵이 권하는 자연스러운 ‘느림’의 역설을 한번 경험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어보였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녹색연합 직원 분들이 싸오신 김밥을 얻어먹으면서 장자라도 된 양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열매가 맺히고, 새싹이 돋고 낙엽이 지는 이 자연의 순환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은 속도의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감각일 것이다. 이 살벌한 속도 경쟁의 나선 속에서 쉽사리 탈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준비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조금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울진 숲길은 분명 그런 대안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켜줄만한 훌륭한 장소였다. 이번엔, 개인적으로, 익스트림스포츠(extreme sports)같은 경험이었지만, 다음 기회에는 (물론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와 함께) 카메라 렌즈가 아닌 내 두 눈을 통해 이곳을 담고, 느긋하게 걸. 어. 보. 리. 라 마음먹었다.

글 : 신동호 (울진숲길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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