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이라도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 가져볼까

2010.12.20 | 행사/교육/공지

온통 세상을 노랗게 물들여 놓았던 은행잎들이 한순간의 짙은 바람에 산산이 흩어져 날리던 날. 회원으로 있는 친환경 식품 매장에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큰 딸아이가 던졌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집은 참 엥겔지수가 높은 집이야, 엄마는 먹는 데만 돈을 쓰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했더니,
“엄마는 오로지 모든 신경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잖아, 다른 새로운 물건에는 관심이 없잖아.”
“왜 이상해? 왜 새로운 물건들을 사야하는데? 다들 그렇게 산단다.”
딸아이는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 듯 불만족스런 표정을 짓는다.

우리 집의 컴퓨터는, 딸 아이 친구들의 컴퓨터가 몇 번이나 바뀌어 가도 아직 그대로이다.  옷이며, 그릇이며, 매일 섭취해야만 하는 먹을거리들만 빼고 거의 모든 물건들이 결혼 후 지금까지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집 안에 들어와서 살림살이를 하나씩 둘러보았다. 녀석들이 새삼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긴 시간동안 늘 함께하고 있는 녀석들을 다시 한 번 보듬어 보니, 또 다른 새로운 맛이 나고 좋다. 결혼 때 장만했던 살림살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하나씩 사들였던 물건들이 새삼 새롭다. 조그만 소품들은 남편이 직접 손으로 만들어 써왔고, 아직도 그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새로 구입한 물품이 있긴 하다. 큰애가 중학교 입학하면서 아이의 머리 손질을 위해 전기머리인두를 샀었고, 몇 달 전 완전히 작동을 멈춰버린 세탁기를 어쩔 수 없이 하나 구입했다. 해마다 김장은 우리 가족 일 년 행사 중의 중요한 부분이라, 큰맘 먹고 몇 년 전  김치 냉장고를 하나 구입했었다. 요리하기를 좋아하지만 특별히 구입해서 쓰고 있는 조리 기구는 없다.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잘 관리하여 사용하는 편이라서 특별히 사고 싶은 욕심이 별로 생기진 않는다. 모든 이들이 지금 내 핸드폰을 보고는 의아해하고 문제 삼고는 하는데 아직 6년밖에 되지 않았고 통화며, 문자며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결국 우리는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얻어내고 해결해야 된다는 긴장감 속에, 자신도 모르게 파묻혀 있다는 것이다.

늘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 조금은 더 자기 자신의 몸과 노동의 가치에 충실해 가는 것, 그것이 조금은 이 왕성한 무분별한 구매욕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아는 사람들끼리 아이들의 옷을 교환해 입히고, 벼룩시장이며 바자회를 적극 활용하는데, 우리 집은 아이들 아빠가 더욱 적극적이어서 가끔 시간이 나면 ‘아름다운 가게’를 들르곤 한다.   언젠가 아는 분의 집에 들렀다가 주방식탁의 컵 속에 꽂혀있던 커피믹스를 보고, “어디 여행 갔다 오셨나 봐요?” 라고 했다가 적잖이 머쓱한 적이 있었다. 이제 모든 일회용품들이 버젓이 우리의 가정까지 자리해 들어온 걸 보면서 크게 한숨을 내쉰 적이 잇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늘 자본의 논리 속에 저당 잡힌 채 변화 당하고 마는 우리의 생활. 단 하루만이라도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우리의 몸, 있는 그대로 숨 쉬어 보면 어떨까?

오늘은 그동안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에서 한 두 개씩 빼내 차곡차곡 개어 쌓아놓은 옷가지를 몽땅 챙겨서 어디론가 가봐야겠다.

글 : 이정아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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