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인문학 4강] 생명을 통해 나와 너의 관계를 찾다!

2011.06.13 | 행사/교육/공지

예방접종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정부는 무조건적인 생명 죽이기를 통해 구제역을 해결하려 하였다. 그리고 350만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 되었다. 지금 여기, 우리에게 생명이란 무엇인가?

우희종 교수님의 강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생명을 교과서적으로 정의한다면 형태를 지니고 대사 작용과 자기복제를 하며 진화해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져볼 수도 있다.

모든 생명은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자기만의 특성’, 즉 개체고유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오롯이 혼자일 때에 그 특성들을 발현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구현하게 된다. 생명체는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작은 우주를 만들고, 이와 같이 형성된 소우주(생명) 하나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신의 역사를 가진다. 결국 지금 내가 이곳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150억년이라는 우주의 역사가 선행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신’과 ‘내’가 글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 이 순간 역시도, 영화 속 주인공이 ET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던 때와 마찬가지로 경이로운 순간일터다.

“건강한 내 몸뿐만 아니라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모든 것들은 주위와의 열린 관계 속에서 빚어져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것은, 과학과 자본주의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는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에이즈와 광우병처럼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질병들이 창궐하고, 이종이식 연구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는 이 땅에서 생명이 갖는 총체성을 존중하고픈 나와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주위와의 관계에 있어서 닫혀 있느냐 아니면 열려 있느냐의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생명체의 개체고유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의 삶 또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은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다는 삶의 엄숙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개체 고유성은 결코 폐쇄적일 수 없으며, 주위에 대한 개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나’와 ‘너’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변화해가는 관계를 무시한 채, 타자를 대상화하고 억압하려는 폭력적인 관계 맺기가 종종 발견된다.

“이 세상 모든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위에 빚지고 있으며 동시에 빚을 주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단절되고 왜곡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명체가 필연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상호의존성을 인식해야한다. 그리고 평등과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한 관계망을 만들어 가야한다. 결국 “생명이란 주위와의 관계 속에서 전체면서 부분이고 부분이면서 전체인” 것을 깨닫고, 모든 생명체와의 올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당시 내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들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 후 그들 곁을 떠나게 되면서 나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에 서겠노라고 다짐했지만, 힘들고 외로운 시간만이 이어졌다.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혼자 서겠다.’는 당찬 다짐 덕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이 만난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위안과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얻게 된 깨달음 덕분이었다. 어느덧 나는 나를 둘러싼 우주가 무수한 관계망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그간의 내 생각과 고민들이 정갈한 말들로 정리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체의 상호 관계성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라는. 그러나 이 간단한 깨달음을 위해 나는 너무도 아파해야 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에도 알았더라면”은 사실 참 재미없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알지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실수와 좌절로 무너지기도 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이 순간들이 경이로운 것일 테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역시도 나만의 고유성을, 내가 지니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일 테지. 그러니 지금 어디에선가 이 글을 읽어주고 있을 당신에게, 나는 참으로 고맙다. 내 글을 읽어줌에, 당신의 커다란 우주 속에 이 글이 부딪힘을 허락해 줌에, 그리고 어쩌면 나와 관계를 맺어줌에 대해.

대학 등록금 집회가 2주 째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둘러 싼 우주를 바꾸기 위해 그곳에 나온 이들은 비단 대학생들만은 아니다. 강의에서 모든 생명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을 재차 강조하셨던 우희종 교수님을 집회 현장에서 발견하는 것은, 따라서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거리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올바른 관계 맺기를 위해 고민하고 또 몸소 실천하고 계신 교수님께도 좋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주심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좋은 시 하나를 곁들인다.

‘작아’에도 소개된 바 있는 김선우 시인의 시인데, 무척 좋아하던 시였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글 : 기화 (녹색연합 회원)

(우희종 교수님의 녹색인문학 4강 강의 “자연 살상의 시대, 생명이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상당 부분 발췌하였으며, 글쓴이의 생각이 더러 곁들여져 있습니다. 짙은 글씨는 강의 내용에서 직접 인용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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