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가 만난사람 9월>임실에는 꿈꾸는 농부가 산다

2011.10.13 | 행사/교육/공지

“지금 상황에서 얼마든지 나눌 수 있어요. 나누고도 더 남을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자기 것을 움켜쥐면 다 배고프지만 자기 것을 다 내놓으면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경험을 하는 거죠. 이것이 공동체 경험이라고 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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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저버리고 다른 것에 힘을 쏟고 있다. 그것을 되살리고 닦아서 빛나게 해야 하는데 바깥에서 터무니없는 것으로 채우려고 한다. 애초 가능하지 않은 일에 모든 것을 걸고 헉헉거린다. 무엇을 위한 길이었을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끌어내어 발산하게 만들고 그것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 거기에 희망을 걸고 싶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마땅한 일이니까. 
마을이 되다 
 
생각이 참 많았다. 시대의 아픔에 마음을 쏟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도 깊었다. 올림픽으로 온통 시끄럽던 1988년 여름, 친구들과 농활을 떠나온 임실마을. 그 뒤로 내리 4년 동안 여름이면  농활을 왔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다시 와야 할 곳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가슴 한 켠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 
김정흠(45세) 님은 그 무렵 도시의 각박함, 이론과 관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실천에 회의를 느꼈다. 시골마을에서 농촌에서 땀 흘리고 흙에 발을 묻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을’을 보았다. 그에게 마을은 시대정신을 풀어내는 열쇠말, 오래오래 마음의 온기를 담아 풀어갈 살터였다. 
그이는 전주시 변두리 농촌 마을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시면서 비닐우산 만드는 가내수공업을 했다. 우산을 보면 그때 생각이 아련하다. 마을 곳곳을 쏘다니면서 아이들하고 마음껏 놀았다. 산과 들에서 만난 것들은 하나하나 각인하듯 감성을 만들어 주었다. 청소년 때는 산에 집짓고 사는 상상을 하곤 했다. 성장한 뒤에도 제 손으로 집 짓는 것은 늘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광주항쟁이 있었다. 그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 무언가 굉장히 큰 일이 벌어졌고 뭔가 안 좋은 느낌을 받았다. 학교까지 40분 걸어가는데 꼭 전북대학교를 지나야 했다. “나중에 그곳에 입학한 뒤에 광주운동 실체를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운명의 결정타라고 할까요. 머릿속에서 반란이 일어난 거죠. 한순간에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알아버린 거죠. 무엇을 보고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 어렴풋이 깨우친 거죠.”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벼락같이 뒤바뀌는 것들이 있다. 그 바탕 위에 서서 시대 흐름을 읽어내고 깨닫게 된다. 앞서 살아온 분들이 조금씩 물꼬를 트고 흐름을 만들어 왔듯이, 지금 그이의 삶의 여정도 거기에 놓여있다고 믿는다. 
1994년에 전주에서 임실로 왔다. 노동으로 마련한 230만 원을 손에 쥐고 배낭에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챙겨서 왔다. 스물여덟 청년 김정흠은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와야 할 곳이었으니까. 한우 키우는 집에서 먹고 자고 일하면서 벼농사도 함께 지었다. “벼농사야말로 인간 본성에 맞는 노동이라고 생각해요. 내 속도에도 맞고 자연의 흐름에도 어울려요. 한 해를 벼농사에 맞춰 살다보면 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죠.” 우렁이 농법으로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흙을 배우기 시작했다. 
임실마을 온 지 13년째 되던 해에 손수 집을 지었다. 흙집 짓는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한 뒤 아홉 달 걸려 지었다. 1997년에 완공해서 이사할 때까지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집 지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전부를 다 쏟아내서 마을과 하나가 되는 경험이었다. 뭔가 정점을 찍는 느낌이었다. 
마을을 다시 발견하다
땅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늘 생각했지만 무언가 풀리지 않는 지점이 항상 있었다.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던 <전북의제21> 대안에너지 워크숍에서 자전거발전기와 풍력발전기 제작하는 교육에 참여하면서 마을의 미래를 만들어갈 중요한 실마리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관련 책도 읽고 ‘기후변화 강사 양성과정’ 강의를 들으면서 마을 문제를 넓게 지구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임실 중금마을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구시민으로 사는 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임실 중금마을에서 ‘에너지 자립마을’ 모델을 만드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말 그대로 지속 가능한, 주민이 행복한 마을을 꿈꾸는 거예요. 에너지 자립은 마을 소득에 관한 구상이 아니라 삶의 문제인데, 옆 치즈마을처럼 소득을 높이는 수단으로 보려는 점이 있어서 시작할 때 어려움이 있었죠.” 멀리 내다보고 치즈마을 전체에 기후변화와 에너지 자립, 자연 생태와 공생하는 가치가 접목하는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2008년에 마을회의를 통해 ‘쓰레기제로마을’을 제안했다. 재활용품을 12가지 항목으로 분류해서 분리수거를 결정했다. “도시 아파트 사람들이 쓰레기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 버리거나 태우는 것은 되레 불편한 일이잖아요. 가장 편한 방법은 분류함에 넣는 거죠. 시골에서 분리수거함에 넣는 것은 아파트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분리수거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 2년 사이에 놀랍게 바뀐 점이다. 냇가에 작은 병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 그이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기까지 과정도 필요하고 기다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가치가 익숙한 방식이 되면 그것이 상식의 지점으로 넘어가게 되니까. 너무 빨리 빨리 속도 지향과 성과 중심으로 가면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포기하고 서로 비난하는 갈등구조를 만들게 된다. “작은 실천이라도 어떤 부분이 정착되고 모두가 함께 자신의 성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다름 단계로 이어가게 되는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해요. 함께 꿈을 꾸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 아니니까요.”
그 뒤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2009년 9월에는 전북의제에서 양성한 ‘에코 홈 닥터’(가정 에너지 설계사)들과 함께 중금마을 가정을 방문해서 에너지 효율을 시설, 단열과 방풍을 통한 ‘에너지 절약’ 활동을 공유했다. 에너지 효율 시범주택을 수리하고 단열 공사를 통해 에너지를 적게 쓰고 단열은 50퍼센트 높였다. 김정흠 님 집에는 손수 ‘에너지 카페’를 설치했다. 풍력 발전기로 마당에서 쓰는 전력을 해결하고, 자전거 발전기로 앰프와 믹서를 움직이는 체험공간을 만들었다. 마당에는 태양광조리기도 설치해 에너지 교육에 쓰고 있다. 자유롭게 사람들이 들러 차도 마시고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생각을 넓히는 자리가 되었다. 2010년에는 중금마을의 에너지 자립 활동이 에너지 관리공단 ‘그린 빌리지’ 사업에 선정되어 마을회관과 10가구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다. 태양광으로 전체 30가구에서 사용하는 전기 50퍼센트 가량을 해결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마을’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지 6년, 중금마을은 디딤돌 하나를 놓았다. 다음해는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에서 쓰는 경운기 같은 농기계 연료를 전부 바이오디젤로 바꾸는 첫 단추를 꿰게 될 것이다. 첫 실험용 폐식용유도 40통을 준비해놓았다. “에너지 자립마을 활동을 하면서 지구의 기운이 인간이 욕망대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어요. 편리를 위한 욕심이 지나친 거죠. 기후변화는 너무 벗어나 있는 흐름을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연의 메시지인 거죠.” 그이는 자연과 화해를 하고, 귀담아 듣고 그것을 빨리 읽어내고 삶의 구조를 바꾸면 모두가 함께 살 길이 열리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임실마을에 뿌리를 내린 지 23년째, 다시 마을을 발견하고 있다. 놀랄 정도로 빠른 기간 동안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편협하고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아주 뿌리 깊은 현실을 본다. “저는 마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싶어요. 마을의 복원, 마을이 오랫동안 품고 전승했던 가치를 함께 살려내고 싶은 거예요. 에너지 자립마을을 그 일부일 뿐이죠.” 
희망을 준비하다
김정흠 님은 농촌 마을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곳곳에서 농촌 공동체를 주목하고 대안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모든 곳을 도시 공간으로 바꾸려 안달이다. 농촌도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농촌 사람들도 스스로 그 가치를 모르고 있다. ‘천덕꾸러기 농사꾼’으로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는 미래 현실이 두렵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예 드러내놓고 농촌에 미래를 두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농촌 마을 스스로 이러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희망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두어해 전부터 ‘임실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역에서 꿈꾸는 사람들, 새로운 시대를 읽어내고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임실지역의 담론을 만들고 미래가치를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생각을 함께 했다. 함께 한 이들은 모두 사십여 명 정도. 종교인들도 있고 시민사회 운동하는 분들, 농부들도 있다. 크게 환경, 문화, 교육, 복지, 농업분과로 나눠 함께 생각을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당장 보여주기 위한 어떤 사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꿈의 바탕을 만들고 함께 모색하려는 거예요. 시대의 변화를 준비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임실이라는 지역에서 세계 흐름을 읽어내고, 함께 배우고 읽고 생각하면서 대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공유하려는 거지요.” 
‘사람 돈’은 안 벌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새로운 차원의 자산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 사이에 이미 충분하고 넘치는 것이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현재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마음이 옹색해가지고 내줄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상황에서 얼마든지 나눌 수 있어요. 나누고도 더 남을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자기 것을 움켜쥐면 다 배고프지만 자기 것을 다 내놓으면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경험을 하는 거죠. 이것이 공동체 경험이라고 보거든요.” 그것은 실로 생각의 문제이고 지향하는 삶에 대한 신념의 문제라고 믿는다.
실제 마을사업을 할 때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너무 돈벌이에 초점을 두면 사람들 눈빛이 달라지고 순수한 동기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실제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아 마을 사업으로 먹을거리 가공공장을 만들었는데 아직 본격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 계획은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가공해서 주민 소득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마을의 자립경제’에 바탕을 두었다. 두부가공도 하고,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도 하는 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고 그만큼만 움직이려고요. 너무 서두르면 탈이 나더라고요.” 제 속도대로, 스스로 일어서는 공동체 힘이 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그이는 마을에서 하는 활동이나 사업조차도 하나의 놀이이고 어떻게 더 재밌게 함께 잘 놀 것인가, 이것이 지금의 목표이자 꿈이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고 잘 노는 것이 모두의 목표인 마을을 꿈꾼다. 
그래서 그는 ‘꿈꾸는 농부 김정흠’으로 불리고 싶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을 빛나게 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함께 누리고 싶다. “저는 김정흠이란 사람을 좋아해요.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즐기면서 가려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 손현주, 정연옥, 한정윤 님이 녹취를 도와주셨습니다. 

*글쓴이 : 작은것이 아름답다. 김기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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