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인문학 4강] 작고 소박한 집 짓기의 즐거움

2012.05.30 | 행사/교육/공지

집, 공간, 그리고 삶

 

이번 시간은 공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기 일쑤였던 집. 이 집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번 강의의 부제는 작고 소박한 집짓기의 즐거움이었다. 강의는 집을 짓는다는 것 이전에,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되었다. 남한 인구의 1/5이 살고 있다는 서울. 서울은 벌써 몇 백 년 동안 수도의 역할을 해내왔다. 서울의 사진은 1900년대 초반의 모습부터 담겨져 있었다. 지금까지도, 사대문 안에 있는 건물들은 재개발을 할 때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건물의 주춧돌 밑에 또 주춧돌이 있다. 주춧돌 하나하나마다, 역사가 숨 쉬고 있고, 문화가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발밑에서.

 

가온건축 대표이자 '작은 집 큰 생각'의 저자 노은주 선생님

그렇기에 쉽게 개발하는 지금이 안타까워진다. 간직해야 할 것을 간직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프기도 하다. 우리는 몇 가지의 영화 스틸장면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본 것은 약 80년대 전의 영화의 스틸 컷이다. 1930년대 한국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참 다르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지금 전통으로서 보호하고자하는 북촌도 그 당시는 새로 건축되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새 것은 옛 것이 된다는 작은 진리가 담겨져 있었다. 시대가 다른 영화의 모습을 통해 서울의 변천이 영화의 배경으로 오롯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박수근의 그림에서도, 김동수의 가옥에서도 한국의 건축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건축을 하는 노은주 선생님께는 그런 이야기들이 참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옛 사람들의 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연히 한옥이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다 똑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어떤 집은 민주적인 가풍을 반영한 모습이 드러나는가 하면, 어떤 집은 선비의 모습이, 어떤 집에서는 기개가 느껴진다. 노 선생님은 사진과 함께 하나하나 그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특히나 강조하셨던 것은 한국 건축을 바라볼 때, 무엇을 보아야하는가에 대한 접근법이었다. 윤증의 명재고택에서는 그의 선비적 모습을 볼 수 있다. 건물과 건물사이 마당과 마당의 사이에 주목해야 보이는 정신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조식과 같은 대학자는

세 칸짜리 산천재라는 곳에서 살았다. 중국의 거대함과, 일본의 아기자기함도 아닌 한국의 건축은 바로 이렇게 자연을 품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그대로 활용하고 빌려온다는 개념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노 선생님의 견해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 황룡사 목탑이 그 좋은 예였다. 황룡사 목탑은 현재 그 터만 남아있고, 건축물은 소실되었다. 그러나 그 터만 남겨져 있을지라도 그 곳에 가면 눈에 보인 것 이상을 느낄 수 있다. 목탑은 틀림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게 하는 도구였을 것이다. 바로 그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내는 것이 건축이다. 건축은 이야기다. 건축가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작가처럼 건축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사람이다.

 

사람은 어딘가 살고 있는 집과 닮았다

 

노은주 선생님의 작품들도 몇 작 볼 수 있었는데, 효자동 일대의 예쁜 집이 우연히 수리 의뢰가 들어왔단다. 담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만나는 것을 표현하셨다고 하는데 과연 참 따뜻한 집이 되어있었다. 노 선생님은 예전의 조상들이 그러하듯 풍경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건축을 선호하셨다. 그의 저작 ‘작은 집 큰 생각’, 이름부터가 그러하다. 테라스가 있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집, 조그만 창틀 프레임 안에 자연이 그대로 보이는 집. 그 집들을 보고 있자니 어서 나도 나의 집을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가 중요시 하는 것은 원래 있었던 것을 잘 살리고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모습이란다. 물론 의뢰주가 원하는 공간이 어떤 형태인가가 중요하다. 선생님의 작품 중 금산주택은 아직도 그 모습이 선연하다. 정말 작은 집이다. 건물 내부가 열 두평이고 마루가 8평이라니 가족들이 함께 살기에는 빠듯하다 싶을 정도의 집이다. 그러나 사진을 보고 있자면 마법이라도 부려진 양, 시원하게 뻗어진 모습에 크기가 생각나지 않는다. 편안해 보이는 땅과 깊은 산 속에 최소한의 공간이 있다.

 

도산서원을 오마주로 한 이 건물을 알기 위해서는 도산서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도산서원의 넓은 공간 중 이황선생의 공간은 아주 작지만 정성이 가득하다. 그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오랜 기간을 두고 공간이 서서히 완성되어갔다. 이황선생의 철학의 요체인 경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공경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 바로 이황 선생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공간이다. 정신이 그대로 화하여 공간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아닐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공간은 작다. 한 사람에게 필요란 최저의 공간은 어느 정도일까. 가장 작은 집, 쪽방, 고시원, 원룸. 월든을 지은 헨리소로우가 4.6평이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우리에겐 불필요한 공간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한국건축의 이미지는 경치를 내 것처럼 품고 어우러져 간다. 공간은 정지해있지 않고 움직이며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된다. 여러 개의 층위 속에서 공간과 공간의 사이에 주목하다보면 그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에 탄성이 나온다. 너무 많이 가짐을 자랑할 것 없이, 너무 조금 가짐을 부끄러워 할 것 없이, 나에게 꼭 맞는 집을 만들 수 있다면 ‘만족’의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글 : 김지혜(춤추는시민팀 자원활동가)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에서 시작해 나와 세계의 관계를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녹색인문학은, 인간의 윤리와 문명사회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는 현재를 성찰하기 위해 지구생태계의 원리와 인류가 일궈온 사회문화를 녹색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강좌입니다.

 

녹색으로 세상을 읽는 것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는 일입니다. 사람을 만들어온 지구생태계의 원리와 사람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와 철학으로 차린 녹색인문학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요? 그 감동의 현장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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