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1]독일에도 송전탑 분쟁이…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넘어 지속가능한 송전으로

2014.02.03 | 행사/교육/공지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로 한 탈핵 국가 독일. 그런데 독일에도 밀양처럼 송전탑 분쟁이 일어나고 있을까? 있다면 독일의 송전탑 갈등은 밀양과 어떻게 다를까?
독일에서 환경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전 정책팀장)이 전하는 독일 환경 소식. 첫번째 이야기는 독일 송전탑 분쟁입니다.

송전선로 따라 촘촘히 송전탑 대책위원회가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이곳 독일에서도 일종의 사회문제이고, 독일 전역에 송전탑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은 밀양의 선한 어르신들이 분신과 음독이란 극한적인 선택에 내몰리면서 건설 중독자들과 싸워야 하는 방식은 아니다. 전투력을 동원해서 방어막을 치며 송전탑 공사를 하고 있는 한전과 정부의 모습 따위는 이곳 관련당국과 송전사업자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다. 독일 내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의 배경과 이유, 해결방식은 우리나라 밀양에서 벌어지는 것과는 아주 다른 양상이다.

독일정부의 신규송전선계획이 발표되면서 해당지역 주민들이 결성한 대책위원회는 전국에 수백 개가 된다. 신규 전력 망 개발계획 구간이 총 3,800km 이고, 용량증대구간이 4,400 km구간이나 되니 말이다. 송전선개발예정노선을 그린 지도를 따라 대책위원회가 지역별, 마을단위로 촘촘히 구성되어 있으니, 송전선노선지도는 송전선 대책위원회지도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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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수요계획법 (BBPIG)에 따른 신규전력망개발계획 신규노선 2,750km, 송전용량증대 구간 3000km>
– 검은 실선 : 기존 송전선 / 빨강선: 계획 구간 / 파란선: 계획확정절차 과정 구간 / 주황색선: 승인절차 완료 또는 공사중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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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송전망확충법 (EnLAG) 에 따른 신규노선 970km, 송전용량증대구간 870km>

– 검은 실선: 기존 송전선 / 자주색선: 승인절차에 있지 않음 / 노랑선 : 입지선정과정중 / 파란선: 계획확정절차 중 또는 앞두고 있는 구간 / 주황선 : 승인절차 완료 또는 공사중인 구간 / 초록선: 공사완료구간

765kV 송전선도 없고 핵발전소를 위한 송전선도 아니다

독일에는 밀양처럼 765kV 초고압송전선에 반대하는 대책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100미터 높이의 765kV 초고압송전선이란 것은 있지도, 계획에도 없기 때문이다. 독일 면적은 남북한의 1.8배로, 유럽에서 제법 큰 땅 덩어리를 가진 나라에 속하지만, 송전선 최대 용량은 380kV. 이들이 초고압 송전탑이라 일컬으며 싸우는 가장 센 대상은 70미터 이하의 380kV 다.

독일 내 송전선 분쟁은 독일정부가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전환계획과 함께 대대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독일정부가 장거리 전력 망 고속도로를 포함하는 <송전선 연방수요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전환의 차질 없는 수행’이란 명분을 함께 강조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해 연안에는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독일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전력수급 목표달성을 위해, 계획중인 추가 풍력단지까지 포함하여, 넓고 푸른 바다에 펼쳐진 바람개비들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신재생에너지를 남쪽 내륙으로 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적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바람이 많은 연안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산업과 인구밀도가 높아서 전력수요가 높은 남서쪽 지역으로 송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력망이 필요하다는 것. 새로운 전력망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면 재생에너지를 생산해도 보낼 수도 이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독일국민의 95%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찬성하고 있고, 74%는 탈핵에 동의한 바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를 위한 송전망 구축 명분은 참으로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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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고압송전선에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 (Gütersloh – Lüstringen 구간)
출처 Quelle: http://www.keine380kv.de

그렇다. 독일은 밀양처럼 신규 핵발전소에서 생산할 전력을 보내기 위해 송전망을 새로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일시민들은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동아시아 일본 땅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연일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이며 핵 발전 가동중단을 외쳤다. 녹색당 지지도가 오르고, 기독교민주당(이하 기민당) 철옹성이었던 주에서 주지사 자리까지 녹색당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기민당이 주도한 지난 회기 독일 정부는 결국 가동기간을 연장하려 했던 8개 노후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2022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핵발전에서 생산된 전력을 위한 송전망 신규계획은 더 이상 없다.

이 점이 밀양과 독일이 다른 점이다. 그렇다면 고갈될 우려도 없고, 공기 오염이나 죽음의 핵폐기물과도 상관없는 친환경에너지. 아름다운 북해 연안에서 낭만적으로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생산하는 전력을 생산, 전송하겠다는데, 지역주민대책위는 무슨 명분으로 반대하는 걸까? 실은 독일정부의 신규 송전망 계획이 재생에너지 송전뿐만 아니라 전력거래구상과 새로운 화력발전소 운영과도 연계되어 있다. 화력발전을 통한 송전과 해외로 전력을 수출하려는 계획이 신규 송전망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독일정부는 북해 연안에서 풍력발전기로 생산한 전력을 남서쪽 지역으로 보내기 위해 약 860km의 고압송전선을 2015년까지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북해연안에 신규화력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고, 여기에서 생산된 전력도 더불어서 송전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결국 송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력은 녹색전력만이 아니라 때 묻은 오염 전력이라는 것이다.
독일정부는 원자력발전을 포기한 이후 100% 재생에너지로 가기 위한 과도기에서 어쩔 수 없이 화력발전소를 가동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지만, 환경단체나 독일 녹색당, 또 많은 독일시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과도기를 위한 방식으로서 소규모 가스발전을 늘려 나가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 발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용납할 수는 없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화력발전 증설과 이를 위한 송전로 건설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말한다. “문제는 송전사업자가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니다. 사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느냐이다.”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송전선 계획은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최종 수립, 건설한다.
지난 2011년 제정된 전력망확충촉진법 (NABEG)과 에너지사업에 관한 법 (EnWG) 개정으로 전력망 설치에 대한 규정이 바뀌었는데, 이와 동시에 송전망 계획을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주민들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시민참여제도 역시 강화되었다. 주민들이 송전선 건설과 관련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국가전력망개발계획(NEP)을 기초로 독일연방수요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때는 송전망의 처음과 끝을 지정할 뿐 구체적 노선을 결정하기 않기 때문에 주민들이 전체적인 송전정책과 에너지 정책 일반에 대한 입장까지 포괄적으로 낼 수 있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신규송전노선을 정확히 확정하는 연방전문계획 수립단계에서다. 송전노선이나 개별구간의 경로와 송전선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대안노선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데, 500∼ 1000미터 단위의 세부구간이 결정되며, 입지타당성 평가, 전략환경평가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 때 반드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대안노선이다. 이 전체 과정에서 주민들은 노선 경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제출할 수 있다. 송전이 인체와 경관, 동식물 서식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견 모두를 밝힌다.

세 번째는 정확한 장소와 어떤 방식의 송전기술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계획확정 절차다. 주민들의 의견 및 이의제기권은 해당노선에 직접 관계된 토지. 주택 소유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민들에게 주어진다. 송전선은 구간노선의 부동산 소유자들에게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경관, 소음, 동식물 피해 등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민참여의 목적은 당사자들에게 송전망 건설계획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갖게 하고, 주민들의 요구를 사전에 파악, 조사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어 대안노선을 만들어가는 등, 모두가 합의하고 동의할 수 있는 방식을 찾기 위함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절차 외에도 다양한 논의, 중재과정이 마련되어 있고, 이를 위탁 받아 전담하는 기구도 존재한다. 이른바 독일 내 송전탑 갈등과 해결이란 이런 과정을 일컫는다. 정부나 송전사업자, 관할 당국은 주민들과 대화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을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데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적 과정으로 여긴다.

송전탑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요구는 무엇일까?

duck2만일 새로운 송전선이 필요하다면 이는 최소한 땅 밑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위로 흐르는 송전선은 전자파를 발생시켜, 건강에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파괴하며, 지가하락과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현격히 격하시키기 때문에 주민들은 최소한 지중화를 원한다. 지중화 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꿈은 지중화에 머물러 있지 않다.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분투한다. 기존의 교류송전방식대신 직류방식을 취하는 지중화 요구가 주를 이루고 있고, 아니면 가능한 거주공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이다. 고압직류전송방식은 전자파 발생을 줄일 수 있고, 500킬로미터 이상의 장거리 송전에서 과부하 없이 전력손실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 최대 환경단체인 분트(BUND)는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 방식 역시 380kV의 경우 소아백혈병이나 신경계통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0.01 µT (마이크로테슬러) 크기의 저주파 자기장 발생 예측 시 송전선로가 거주지역으로부터 600미터이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에너지송전망사업법에 따라 니더작센 주의 되르펜/베스트 (Doerpen/West) 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베젤 (Wesel) 로 전개되는 170km 구간의 디일레 –니더라인 (Diele – Niederrhein) 구간은 생산량이 늘어나는 북독일 지역의 풍력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기존 송전용량 110/220kV 를 380kV로 증대하려는 노선이다. 이 구간은 지중화시범사업으로 선정된 4구간 중의 하나이다. 각 세부 구간별로 계획확정절차가 남아있다.이들 대책위 주민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생각은 이렇다.

만일 우리가 아주 제한적인 가능성만을 갖고 또 그렇게 대응한다면, 나중에 당신의 아이들, 또 그녀석의 꼬마들이 , 당시 당신들은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려는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중화 추진대책위원회 (Buergerinitiativenn pro Erdkabel NRW)는 2008년 송전망 증축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송전사업자 RWE의 계획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서명을 모으고, 입장과 서한을 전달했다. 관계당국과 정책결정자들과의 대화를 조직하고, 전국의 대책위원회, 단체들과 연계망을 형성했다. 정부의 노선 지중화 결정 이후 이들의 바람인 고압직류방식의 송전선이 고속도로변을 따라서 땅 밑으로 설치되기 위해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이들은 “생태적 규범에 따라 얻어진 전력은 생태적 규범에 따라 송전되어야 한다” 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커다란 공명 –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산, 지속 가능한 에너지 송전.after2

독일에서도 거대전력생산 및 공급시스템의 전형적인 특징은 지상위로 뻗친 송전선과 송전탑이었다. 과거엔 이것들이 거주지와 인접해 있어도 문제가 되거나 인지 되지도 않았지만, 이제 110kV이하의 송전선은 무조건 지중화 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 독일에서 핵심적인 구호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지속 가능한 송전> 이다. 송전망 수요를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이 사용되지도 않은 지역에서 화력발전소를 가동하는 낡은 사고를 버려야 한다. 거대한 신재생에너지 단지를 계획하기 보다는 각각 필요한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것. 장거리 송전을 피하고, 송전량을 줄이려면 전력이 필요한 곳에서 소규모 발전소를 가동하는 원칙을 갖자는 것이다.
과거처럼 집중화된 전력생산방식 대신 분산형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염두에 둘 때만이 인권과 환경정의를 고려하는 송전방식이 가능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재생에너지를 송전한다는 정부의 장거리 초고압 송전망 건설의 아름다운 명분은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 지속 가능한 송전 이란 더 나아간 대의에 부딪히고 있다. 이것이 독일 송전탑 분쟁의 핵심이고, 이렇게 독일은 지속 가능한 송전이란 길로 나아가는 여정에 있다.

독일에서 녹색연합 전문위원 임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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