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가구로 소박하게 꾸미는 보금자리

2014.05.28 | 행사/교육/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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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어때?”

 

남자친구는 자랑스럽게 작품을 내밀어보였다. 손에는 전에 보지 못한 종이곽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 우리가 시켜 먹은 피자의 포장지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두툼한 종이곽을 잘라서 조립한 다음 테이프로 붙여 만든 상자였다.

“이걸로 뭐하게?”
“책장 옆에다 붙여서 수납함으로 쓰게. 우산을 둘 데가 없어서 집안에 나뒹굴었잖아. 이제 여기다 넣어두면 비 올 때 우산 찾기도 쉽고, 집안도 깔끔해지고.”
재활용품이 될 포장재로 가구를 만든 것이다!
“올~ 역시 내 남자!”
요란스러운 내 몸짓에 남친은 씨익 웃었다. “다이소에 갈 돈을 아꼈어.”


다이소. 우리처럼 원룸에 사는 커플에게 가장 적합한 집안 소품 쇼핑몰.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영혼이 두 팔 들어 환호하며 달려가 천 원, 2천 원에 수납장을 모셔오는 바로 그 곳. 그 누가 감히 다이소 같은 곳에 돌을 던질 것인가. 그러나 진열된 제품의 구성 성분을 보면 충격에 눈이 튀어나온다. 온통 폴리프로필렌(PP) 투성이! 이른바 플라스틱이 판치는 것이다. 심지어 그릇 닦는 수세미조차 폴리에스터랑 폴리우레탄폼, 플라스틱이다! 이 플라스틱 제품을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사 갈까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하다. 그 가운데 재활용되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멘붕’이 온다.

 

사진 2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소비를 줄여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쓰레기가 포장재다. 음식물 쓰레기를 빼고 나면 포장재가 쓰레기통을 독차지하는 건 여느 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물론 재활용 가능한 녀석도 있지만, 귀차니즘에 사로잡힌 집주인 때문에 매립지로 가는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가운데 멀쩡한 재료로 튼실한 놈도 많은데 말이다. 이렇게 우산꽂이로까지 변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고품질 포장재를 뜯자마자 쓰임이 다했다며 버리고 난 뒤 정작 플라스틱 수납장을 사는 데 돈을 또 쓰게 된다. 왠지 마음이 찝찝하다. 두툼한 종이 상자나 플라스틱 병으로 책상 위 필통, 우산 수납장을 만들면 고작 2~3천 원 주고 사면 될 것을 웬 수고냐 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 보시라. 그 돈이면 김밥 한 줄, 비싼 과자를 사 먹을 수 있다. 세 번만 아껴도 만 원이다. 주머니 돈도 아끼고, 플라스틱도 덜 쓰고. 꿩 먹고 알 먹고, 아니 꿩이 배불리 밥 먹고 알까지 낳아 행복하게 둥지를 꾸릴 수 있겠다.

“자, 가위 주세요.” 남친은 그렇게 자신의 작품을 책장 옆에 붙이기 시작했다. 상자와 책장 사이는 양면테이프로 붙이고, 다시 투명테이프로 책장에 단단히 옮아 맸다. 우산 두 개를 넣어도 흔들리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꽤 튼튼한데! 그러면 세탁 세제까지 넣어볼까? “오홍~ 액체라 무거운데도 잘 버티네?” “그러게, 다행이다.”

“과자 상자를 책상 위 필통으로 쓰는 거에서 한 단계 진화했다. 다음엔 옷 서랍장도 만들 수 있겠는데?” “거기까지 가면 아예 부업으로 해야겠어!” 우리 보금자리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가구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글/ 사진 선아


*선아 회원은 늑대를 지향하나 소심한데다 몸이 안따라줘서 들개로 살고 있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녹색 세상에 발을 디디면서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조금 해소가 되었으나 여전히 방황은 끝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 선아 회원의 재활용 가구 이야기는 녹색희망 242호(2014.05/06)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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