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12] 벤츠타고 학교간다?

2014.12.25 | 행사/교육/공지

아직도 폭스바겐 타고 학교 가니? 벤츠 타고 학교 간다.

자동차에 관심 없는 사람도 벤츠가 비싼 고급차량에 속한다는 것쯤은 안다.  동경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던 노란 딱정벌레차를 만든 폭스바겐의 차종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에서 폭스바겐은 말 그대로 누구나 타는 국민차다. 그러나 난 오늘도 벤츠를 타고 학교를 간다.  그것도 무상으로 탄다. 왜?

독일 학생들은 무상으로 버스를 타고 등교하여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일단 의무 교육 대상 아이들은 학년 초 시 교통당국으로부터 통학에 필요한 버스 및 기차 티켓을 무료로 발급 받는다.  의무교육이니 당연히 수업료는 없다. 교육이 의무이고 권리라면, 이를 위해 발생하는 대중교통비 역시 제공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이곳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해야 부모들이 학교에 태워다 주고 데려오는데 필요한 시간, 수고, 연료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게 된다.

 germanbus

사진. Axel Freidrich 박사의 시민티켓 도입을 위한 발표자료 <왜 우리에게 대중교통이 필요한가>  에서 퍼옴.

대학생들에게는 제메스터 (Semester – 학생)티켓이란 것이 있다. 대학 등록금은 없다. 필요한 교육을 받는데 개인이 별도의 돈을 들이지 않는 것. 무상교육은 독일 사회의 원칙이다.  (뜻밖이지만, 독일에 대학등록금이란 것이 등장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20%에 불과한 금액이었지만, 대대적 시위에 직면했고, 대학등록금을 도입한 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이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들은 일종의 분담금이란 것을 한 학기 (6개월)에 40만원 정도 내야 한다.  주 별로 차이가 있는데, 대략 1-2만원의 학생회비, 15만원 정도의 학생 복지비, 교통비 20여만원 항목으로 구성, 쓰이고 있다.  교통비 항목이 제메스터 티켓 비용을 의미하는데, 이 티켓을 소지하고 있으면 대학이 속해있는 주의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어느 권역까지, 어떤 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것인지는 학생들의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한 각 대학 학생회의 협상력에 달려있다.  이른바 강성! 학생회가 있는 대학이라면, 해당주를 넘어서 인근 주의 대학이 있는 다른 도시까지의 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 고속열차도 이용할 수 있다.  6개월간 교통비로 24만원, 한달에 4만원 정도면 독일의 소득이나 물가를 고려할 때, 조금 저렴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무료에 해당한다. 소도시 시내 최단거리 버스 이용권이 6만원쯤 되고, 베를린처럼 큰 도시의 경우 12만원,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도 수십만원이 되는 걸 고려하면, 이 제메스터 티켓은 참 매력적인 티켓이다.

이 티켓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연대재정원칙에 따른 대중교통 유인책  – 사회적 공공성과 생태성의 결합

이 티켓을 도입하게 된 주요 계기는 자동차를 이용,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중교통으로 흡수하고자 한 데 있다. 주차문제도 해결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감소시키기.
물론 여기에 <사회적 연대>란 개념이 빠질 순 없다. 버스비가 부담스러운 가난한 사람들의 이동권을 고려한, 즉 교통약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고려한 연대재정원칙이 이 안에 담겨있다. 이 티켓을 도입한 이래 대중교통이용 비율은 현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연구결과, 이 티켓 덕분에 약 18%의 학생이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선택했다고 답변했고, 응답자의 10%는 자신의 승용차를 폐기했으며, 26%는 티켓 덕분에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교통수단 별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을 보면, 1인당 1km 주행 시, 자가용은 142.3그램의 이산화탄소와 0.0087 미세먼지를 배출하는데 비해, 버스는 각각 50%, 20% 적은 양을 배출한다. 근거리 철도의 경우 감소효과가 각각50%, 70%나 된다. 독일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40%, 2050년까지 80-95% 감축하기로 했다.  2010년 기본에너지 컨셉에 의하면, 수송분야에서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는 2050년까지 1990년 대비 마이너스 85% 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것이 필수이므로, 2020년까지 10%, 2050년까지 40% 에너지 수요를 낮추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주요하게 고려, 추진되고 있는 것은 개인 차량에 대한 증세이다. 개인 차량에 대한 에너지세를 높이고, 연료세 역시 탄소세를 올려서 그 부담을 늘리고, 연료 소비자 가격 역시 2050년까지 휘발유의 경우 90%, 디젤의 경우 144% 까지 인상시킬 계획이다. 또한 독일국내 항공선에 유류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에 반해 대중교통차량에 대한 연료세는 2030년 30%까지 낮출 계획이며, 철도에 대한 전력세 50% 인하도 추진하고 있다.  즉 독일의 정책기조는 대중교통이용 증대를 위한 대폭 지원, 그리고 기후변화물질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원인자에게 세제부담을 현격히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세제로 개인차량 이용을 억제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을 권하는 것도 지극히 타당한 일이지만, 제메스터 티켓이란 참신한 방안 역시 대중교통이용에 크게 기여한다.

이 제메스터 티켓을 모든 대학생이 소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회가 공공교통사업자와 성공적으로 협상을 체결했을 때 만이 가능하다. 또한 이 티켓을 학생회가 쟁취!하기 까지는 오랜 기간 고단한 길을 걸어야 했다. 학생들의 동의를 받아서 추진하는 티켓이기 때문에, 필요성, 의미,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동의와 합의는 당연하다. 티켓 도입과정에서 비용분담의무에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이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이 티켓의 특성은 소지한 사람이 교통수단을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를 묻거나 고려하지 않는다. 일종의 사회연대부담금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을 위해 모두가 내는 비용으로서, 교통영역에서 연대재정원칙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마치 독일 공보험이 가입자에게 의료행위의 횟수와 무관하게 월 분담금을 납입하게 하고, 병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 비용을 내지 않고 치료받듯이, 그렇게 건강시스템의 비용을 공동체 전체가, 재정적 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책임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다만 학생이므로, 제메스터 티켓의 분담금이 동일할 뿐이다.  가난해서 교통약자일수밖에 없는 학생들은 버스와 기차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고,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는 학생들을 대중교통으로 흡수, 이산화탄소 저감에 기여하게 하는 것. 이렇게 이 티켓은 사회적 공공성과 생태성이 결합된 개념으로 탄생했다.

모두를 위한 시민티켓!

많은 혜택과 장점이 있는 제메스터 티켓을 꼭 대학생만 가져야 하는가?  모두가 선호할 만한 티켓이라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것이 좋고도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질문과 논의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제메스터 티켓에서 착안되었기에 <모두를 위한 제메스터 티켓>  또는 <모두를 위한 시민티켓>이란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두를 위한 시민티켓>으로 연대재정원칙에 따라 모든 시민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도시 권역 내 버스와 기차를 이용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룹구매를 통한 이용비용이 개인적으로 구매할 때보다 저렴하고, 이미 지불된 티켓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티켓 구매시간이 절약되는 장점도 있지만, 교통사업자 측에게도 재정적 안정성을 보장한다.  이를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 재정마련 방안으로 시민부담률, 보조금제도 이용 등 전문가들은 구체적 비용을 계산해내고 있다.

벤츠 버스 사진

벤츠타는 가난한 학생? 버스가 벤츠니까.  Mercedes-Benz O 305 Heppenheim 100 1914“. CC BY-SA 3.0
교통분야의 이산화탄소 감축과 가난한 이들의 교통비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학생티켓은 시민티켓으로 확장되고 있다. 

부퍼탈 연구소와 함부르크 미래 위원회, 분트와 공동연구에 따르면, 함부르크 주민이 시내와 인근지역 대중교통을 위해 매월 14유로 (약2만원) 분담하는 시민티켓을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독일 전역의 모든 공공대중교통에 대해 적용할 경우, 금액은 두세배로 늘어날 뿐이다. 이미 튀빙겐이나 포츠담의 경우 시민티켓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형태에 따라서 세입자티켓 또는 직장인티켓이란 것도 있다.  이들 역시 연대원칙을 따르고 있는데, 기업이나 관청등이 교통회사로부터 발급받아서 무상 또는 유상으로 배급한다.

무상대중교통을 도입한 세계 곳곳의 도시들은 무상교통정책 도입 후자동차 이용이 현격히 감소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들고,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이 확대되고, 버스이용이 늘어나 시내와 마을이 더욱 활기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대중교통 이용을 활성화하고, 기후변화를 막고, 교통약자를 위한 정책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시도이다.

이쯤 되면 왜 폭스바겐이 아닌 벤츠를 타고 다니는지 눈치챘을 것 같다. 독일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만든 버스가 가장 많이 운행된다.

 

글 /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