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15 – 폐기 대신 나눔, 독일의 음식구조원

2015.03.25 | 행사/교육/공지

버리는 대신 나눈다. 독일 내 음식구조원 전국적으로 4,787명 활동.

share-1'소유 대신 나눔'에 이어 '폐기 대신 나눔'도 등장했다.

앞의 표어가 자동차 나눠 타기 혹은 함께 타기에 관한 것이라면, 뒤의 표어는 음식물 나눔을 위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음식물은 40억 톤에 이르는데, 그 중 1/3인에 달하는 13억 톤의 음식물이 버려지고 있다. 버려지는 음식물의 절반 이상은 독일처럼 잘사는 선진국에서 벌어진다. 세상의 절반이 필요한 식량을 얻지 못해서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멀쩡한 음식물을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도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다. 버려지는 음식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과 기후변화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농경지나 바다에서 수확되어 저장, 운송, 가공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전 식품과정을 에너지로 환산하면 56%를 버리는 셈이라고 한다.

(사진출처 : www.foodsharing.de)

'상하지 않은 음식을 구하자'는 각성과 움직임이 독일에서는 '폐기 대신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도 이런 저런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물 중 2/3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막을 수 있다. 자발적 특명을 부여한 약 5천명의 자원활동가들은 버려질 운명에 처한 멀쩡한 음식을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장소에서, 누구나 냉장고의 문을 열고 안에 있는 음식을 가져갈 수 있는 <나눔 냉장고>. 음식물을 꺼내갈 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군가 싹쓸이 해가는 일도도 벌어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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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르크에 위치한 공정나눔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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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구조대원 – 공정나눔지기 요한네스와 안나.
이들은 버려지는 음식을 필요한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분배를 위한 작은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음식구조원으로 활동하기 위해선, 인터넷 사이트에 이름을 등록하고, 음식 및 음식물 쓰레기와 관련된 몇 가지 상식적 퀴즈를 맞추면, 활동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자원음식구조대들은 음식을 자전거로 배달하기도 하고, 냉장고를 주 1-2회 관리, 식품들을 검사한다.

함부르크 대학 학생회의 인포카페 안 냉장고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공정나눔> <마음껏 가져가세요> <무료> 란 스티커가 냉장고 문 잘 보이는 곳에 붙어 있다. 이미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냉장고 문은 채우기 위해, 꺼내먹기 위해 부지런히 열리고 닫힌다. 공정나눔지기 열명이 운반한 냉장고 속의 음식은 필요한 사람이 소비한다. 냉장고 안의 음식들은 대체로 신선한 편이다. 노숙자 중 한 명은 매주 “매우 훌륭한 음식들”이라며 두 개의 사과와 빵, 우유와 스프를 꺼낸다. 슈퍼마켓이 소장하고 있는 컨테이너 속에는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으나,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혹은 판매하기에 모양과 색깔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음식물이 쌓여있고 폐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컨테이너로 들어간 식품들을 다시 꺼내서 유통시키거나 먹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폐기 대신 나눔> 파트너가 된 독일 전역의 1,450개 슈퍼마켓은 식품들을 컨테이너에 넣기 전에 공정나눔지기들을 통해서 나눔 냉장고로 옮길 수 있도록 협조하고 있다.

 

‘폐기 대신 나눔 운동’의 시작과 빠른 확산
‘폐기 대신 나눔 운동’은 지난 2010년 독일에서 제작, 전국을 순회하며 상영된 <Taste the Waste -쓰레기를 맛보자, 음식물 쓰레기의 불편한 진실> 이란 다큐멘터리 필름의 후속 활동이기도 하다. 이 필름의 제작자 발렌틴 투른씨는 전 세계적으로 특히 선진국에서 과잉 생산된 음식물이 어떻게 폐기처리 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필름으로 고발한 바 있다. 영화 상영 후 음식물 폐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음식물 나눔 운동을 제안했다.
몇 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스스로 먹을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되는 음식을 다른 사람을 위해 건네지 않을 것, 위생적으로 부적합한 음식을 제공하지 말 것, 소비기한 (유통기한이 아닌) 이 지났거나, 가열되지 않은 생선, 육류, 달걀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운동이 시작되자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는데, 접근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 인터넷 사이트 www.foodsharing.de에 접속, 음식 나누미로 등록을 하고, 나누고 싶은 음식을 식품 장바구니에 입력하면 된다. 입력된 식품들은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이 있는 장소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까지 표시되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은 직접 받아가거나, 서로 편리한 방법을 약속해서 주고받거나, 혹은 음식구조대원 – 음식나누미가 받아 오기도 한다. 인터넷 등록 없이 나눔 냉장고나 선반에 직접 놓아 둘 수 있다. 물론 냉장고에 있는 물건을 직접 취하기만 할 수도 있다. 가져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가져올 필요는 전혀 없다.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과잉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 시작 이래 독일 전역에서 구해낸 식품은 1000톤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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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foofsharing.de

식품을 버리는데 한몫을 하는 유통기한. 이익을 얻는 식품기업
2012년 슈투트가르트 대학 연구소는 독일인 1인당 년간 82킬로그램의 음식물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천만 톤의 식품 중 1/3은 가정에서, 2/3는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버려지고 있었다. 상품 규격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생산지에서 수확 후 바로 폐기되기도 한다. 유통기간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소매업에서도 제조기업으로 돌려보내진 상품은 곧장 폐기 처리된다. 가정에서는 유통기한 표시와 무관한 과일이나 야채 등이 폐기 식품의 절반을 차지했고, 조리된 음식은 15%였다. 개봉되지 않는 멀쩡한 식품조차 버려지기 일쑤였는데, 이 역시 유통기한이 경과했다는 이유였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감각보다 유통기한으로 찍힌 날짜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어서, 식품의 이상 여부를 직접 판단하기 전에 유통기한이 경과한 경우 버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행동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유통기한이 경과했어도, 식품 이상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감각이 우선되는 것이 맞고, 또한 보관상태에 따라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은 상당히 늘어날 수도 있다. 염두 할 것은 유통기한이란 그야말로 유통업체가 상품을 유통시킬 수 있는 최종 시한을 의미하는 것이지, 해당 날짜까지 소비되어야 한다거나, 버려야 하는 날짜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유통기한은 원래 상품의 보관가능기간보다 지나치게 짧게 설정되어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또한 식품 관련 당국이 유통기한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식품기업이 자율적으로 설정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독일 일간지 타케스 자이퉁 TAZ 은 유통기한이 짧게 설정되어 있을수록 버려지는 식품이 많고, 그러면 기업은 유통기한이 남아있는 다른 식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지적했다. 유통기한의 중요성!을 철썩 같이 믿게 만들어야, 소비자는 식품을 버리고 다시 구매하는 일을 반복하며, 식품기업의 매출이 늘고, 이익을 취하게 되는, 일종의 작전에 말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유통기한 만료일은 폐기날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공유가 시급하다고 전하고 있다.

타펠과의 경쟁? 경쟁도 아니지만 많을수록 좋은 것.
독일에는 이미 타펠 (Tafel, 식사, 밥상) 이란 것이 자발적으로 전국 900개소에서 운영되고 있다. 6만 명의 자원활동가들에 의해 남겨진, 그러나 품질 면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식료품들을 유통업체나 생산업체로부터 기증받아 무료로 식품을 나누는 일종의 <밥상>이다. 가져가는 사람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상징적인 금액(예를 들면 1유로)을 내기도 한다. 매 주 150만 명의 사람들이 이 타펠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중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1/3정도 된다고 한다. 독일사회에도 실업자, 한부모 가정, 저소득자, 다자녀가구와 연금생활자들 중 식료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타펠에 식품을 전달함으로써, 저장 공간을 절약할 수 있고, 버리는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또한 개인 누구든 자신에게 남는 음식을 타펠에 제공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타펠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회부조 수령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소지한 사람에 한해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타펠측에서는 푸드 쉐어링이란 새로운 경쟁자가 생긴 것을 반기면서, 근래에 들어 슈퍼마켓과의 협력 속에서 기증받는 식품의 양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식품기업들이 타펠에 기증하기 보다, 바이오가스 생산 원료로 판매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은 연료로 재활용하기 보다, 섭취가 우선임을 강조한다. 타펠이 사회부조금 수급자들로 음식 나눔을 제한하고 있다면, 푸드 쉐어링은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고 필요한 모두에게 음식 나눔을 열어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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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펠을 위한 식품모금함
슈퍼마켓 앞에 놓인 타펠 식품모금함을 관찰하며 사진을 찍으니, 맞은편 열쇠수리 점 주인이 주의 깊게 쳐다본다. 혹, 내가 음식을 꺼내갈까, 걱정스러웠던 걸까? 궁금한 게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 타펠에 대한 정보는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그가 내 질문에 얼마나 대답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볼 겸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본다. 그는 타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질문에 막힘없이 타펠의 의미와 운영방식에 대해 훌륭한 답변을 해주었다.

 

글 /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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