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어른을 위한 숲놀이 – 나 지금 주머니에 연륜 있음

2015.06.08 | 행사/교육/공지

조금 늦었다. 벌써 예닐곱명이 둘러 모여서서 강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오는 사람은 없나? 벌써 시작을 한건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흥화문. 이곳에 숲이 있을까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늦으면 주의도 마음도 한박자씩 늦는것 같다.

“앞으로 가볼까요?” 강사님이 이끈 곳은 단풍나무 앞이었다. 잎을 가리키면서 다섯갈래 이상으로 갈라진 걸 당단풍이라고 한다 알려주셨다. 마침 도감에서 봤던 것이 떠올라 흡족했다. ‘앗싸, 내가 아는거다.’ 단풍나무엔 씨앗이 두개씩 시옷자로 매달려 있었다. 가을이 되면 반으로 쪼개져 뱅글뱅글 돌면서 날아간다고 한다.  지금은 늦은 봄이라 씨앗이 한창 초록색을 띠며 여물고 있었다. 그렇구나 가을 풍경을 가늠만 하는데, 강사님이 땅에 보면 작년 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있을거라 했다. 진짜 있었다. 꼭 발바닥 모양으로 생긴 단풍나무 씨앗이. 아, 숲놀이라 해서 나무만 생각했는데 땅에도 나무가 살아온 날들이 있는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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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처럼 앞 사람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며 좇아 가기

맞은편엔 가을도 아닌데 잎이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었다. 내가 질문을 했다. “왜 가을이 아닌데도 단풍이 들었나요?” 홍단풍이란다. 일본의 한 식물학자가 개발해 낸것이라고 한다. 개발이라니? 나무가 개발될수있나? 정원에 심을 목적으로 사철 단풍을 보려고 만든것이라고 한다. 처음에 이상한건가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그런 사연이 있다니 뭔가 안쓰런 마음이 들었다. 이상한 거 아니냐 의심했던걸 강사님도 아셨을까?  개나리 이야기를 해주셨다. 봄에 피어야 하는데 무슨일인지 가을에도 활짝피는 것들이 더러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좀 관심있는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계절이 이상해지자 꽃도 “미쳤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가 예전보다 큰 폭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로인한 재앙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것도 맞다.

그러나 자연은 굉장히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한편으로는 생각치도 못한 예외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개미는 바로 앞에 기어가는 개미가 내뿜는 페로몬만 보고 따라간다. 외국 어디 숲에서 줄지어 지나가던 개미중에 맨 앞에 있는 개미가 그만 그 대열에 맨 마지막으로 따라오던 개미와 너무 가까워진 나머지 그 개미를 따라가서 결국은 10만마리의 개미가 뱅글뱅글 서로 꼬리를 물게 된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10만마리의 개미들은 언제까지 그 고리를 따라갈까? 죽을때까지다. 죽어야만 끝나는 그 고리에서 딱 한마리의 개미라도 앞 개미의 페로몬을 따르지 않았다면, 어쩌면 10만마리의 개미는 그렇게 뱅글뱅글 돌다만 죽지는 않았을 거다. 고리를 끊는다는 그 한가지만으로도 여운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듯 개나리도 변화하는 기후에 대해 어쩌면 다양한 시도로 (어쩌면 변이로 생각할수도 있는)가을에 꽃을 피워보기도 하는건 아닐까 강사님은 이렇게 생각해볼것도 제안하셨다. 미처 따라갈 수 없는 자연의 아량이랄까, 넓이가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 숲놀이가 시작되었다. 강사님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하다고 했다. 간밤에 죽지 않았다는것, 그리고 변함없이 해가 떠올랐다는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진심일까? 강사님이 돌맹이를 주워 나무 그림자를 본 따 바닥에 그렸다. 딴이야기를 잠깐 했다. 5분이나 지났을까. 다시 땅을 바라보니 그림자는 그 새 바닥에 그려놓았던 본을 비껴나 있었다. 그래 이게 시계구나! 해시계도, 장영실도 생각났다. 너무나 정확한 그림자의 움직임(사실은 지구의 움직임)이 신기했다. 인간의 문명은 사실 그 처음은 자연으로 부터 시작되었던 거겠다 싶었다. 그래 아침에 변함없이 그리고 정확하게 해가 떠올랐고 나는 그 해를 보았다면 감사할수도 있겠다. 이해가 조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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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해를 만나는 시간
그림자 위에 나뭇가지를 올려놓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사이, 그림자는 벌써 나뭇가지를 지나가고 있다.
 

늦어서 초조하던 마음도 없어지고 점점 숲놀이에 난 빠지기 시작했다. 거울을 눈아래 대고 숲을 걷는 놀이도 해보고 도토리를 보자기에 올려놓고 서로 조금씩 움직여서 보자기에 그려진 그림에 맞춰보는 놀이도 했다. 숲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낯설게 보기, 집중력, 협동심등을 기를 수도 있다고 했다. 땅바닥에 나뭇가지를 이어 만든 원안에 솔방울을 던지는 놀이도 했다. 둥근 원 안이 섬이고 밖은 바다라고 치고 소나무의 씨앗인 솔방울이 둥근 원 안에 들어가야만 씨앗이 새로운 나무가 될수 있는 것이다. 땅바닥에 금을 긋고, 둥근 원 안으로 솔방울을 던지는 것은 쉬웠다. 이번에는 뒤로 던져 넣는 것이다. 훨씬 어렵다. 강사님은 눈을 감고 해도 좋다고 했다. 원안에 들어갈 확률은 더 낮아지겠지만. 실제로 한그루의 나무에서 씨앗이 날아가 다시 그 씨앗이 엄마 나무처럼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평균적으로 백만분의 일 (십만분의 일이었나, 여튼 어마어마한 확률)이라고 한다. 그럴만 하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겠는가. 비바람과 메마름 혹은 질병이 찾아올 수도 있고, 원밖으로 던져진 솔방울처럼 척박한 곳으로 씨앗이 날아갈 수도 있고, 도토리처럼 동물들이 씨앗을 가져가 버릴수도 있고, 동계올림픽을 한다고 수백년된 나무조차 아예 베어버릴 수 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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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날아가 싹을 틔울 좋은 땅을 나을 만나기 얼마나 어려운지 솔방울 던지며 느껴보기

강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솔방울을 만지작거렸는데, 끝부분에 가시같이 뾰족한것이 느껴졌다. 소나무 씨앗이 저기 섬에 들어가서도 누군가에게 꼭 붙어있으려는 것 같았다. 애기랑 하루종일 부대끼다보면 “오늘도 갔다”는것에 위안을 느끼며 제대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는 이등병처럼 하루하루를 떠나보내곤 했다. 하루하루 사는것이 소중한것, 절박하게 살아본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그 뾰족한 가시를 괜히 자꾸 만졌다.

나무를 오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중에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강사님은 엄마들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셨다. 떨어지면 죽거나 크게 다친다는 것을 아이들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위험한 곳은 아이들이 알아서 오르지 않으며 또 안전한 곳을 오를때도 매우 조심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진짜 재밌어 보였다. 나는 사실 치마를 입어서가 아니라 아침에 좀 체했기 때문에 나무에 오르지 못했다. 아기 엄마가 돼면서부터는 이렇게 재미있는것들도 ‘위험하니까 안돼’가 버릇이 돼었다. 그래서 재밌는지도 까먹고 있었다. 아니 사실 서울서만 자란 나는 해본적이 없으니까, 재미있을거라 생각도 안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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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오른 지 언제였을까?

언덕에 올라 톱질을 할때엔 도저히 해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결국 톱을 켰다. 아카시아 나무는 굉장히 단단했다. 팔목만한 것이었는데도 꽤 오래 걸리고 삐뚤빼뚤하게 잘라 졌다. 좀 몸을 움직이니까 체해서 꽉 막혔던 기운이 좀 도는것 같았다. 실제로 가만히 못있고 몸이 근질근질한 아이들에겐 톱질 같은 것이 에너지를 발산 할 수 있어서 좋다 한다. 동글동글한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있자니 차분해지고 주의도 환기되는 느낌이 들었다. 강사님이 질문을 했다. “나이테는 우리말이지요. 그럼 나이테를 한문으로 뭐라고 할까요? “ 나이테? 글쎄… 한문으로? 들어본적이 없는것 같다. “연륜이라고 하지요.” 아! 그렇구나. 연륜!  말도 자연으로부터 왔구나. 연륜이란 말이 만들어졌던 먼 옛날로 돌아간 것 처럼 아득하고 아련했다. 나무에 새겨진 연륜은 아름답고 자연스러웠다. 단면에 매직으로 간단한 그림을 그리고 날카로운 돌맹이로 쪼개서 퍼즐도 만들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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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부러진 나무를 톱질해 만든 나무퍼즐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속이 좋지 못해 점심을 먹지못했지만 또 각자 소감도 나눌수 있어서 편안했다. 나는 “애기랑 매일 산에가는데 뭐 하진 않지만 뭔가 해야하나 하는생각도 들고 그래서 신청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애기때매 신청했지만 사실 그냥 내가 좀 즐거웠다.

“나 지금 주머니에 연륜있음.” 등짝에 써붙이고 싶을만큼 . 더위가 가고 가을즈음에 또 한번 했으면 좋겠다.

글 / 오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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