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자연학교 후기

2004.08.02 | 행사/교육/공지

무지개
                     윌리암 워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유종호 옮김)

  자연에 대한 신비한 경외감을 가진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이는 어린이가 가진 여린 감수성과 순수함을 열망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은 백지와도 같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음은 손 데지 않은 자연에 비유된다. 감히 손 델 수 없을 것만 같이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어린이와 자연… 나는 3박4일 동안 무한한 자연 속에서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자연의 감수성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요즘 아이들이 과연 순수한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하겠다. 아이답지 않게 영악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 영악함이야말로 아이를 더 아이답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눈치챌만한 영악함은 아이의 또 다른 귀여움이다. 아이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해맑다. 불행한 것은 그러한 아이들의 자연스러움이 마음껏 발휘될 만한 환경이 주위에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자연에 마음껏 풀어진 아이들은 가진 자연스러움을 발휘하기 시작했지만,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는데도 날지 못하는 것은 갇혀있던 새장이 너무 좁아서였을까?

서울과 인천, 그리고 멀리 남부 지방에서 참가한 80명의 아이들이 20명의 선생님들과 무주의 푸른꿈 고등학교에 갔다. 푸른꿈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다. 조용한 산자락 입구에 예쁘게 지어져 있다. 기숙사나 식당 시설도 꽤 좋았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 준비만 하면 될 만큼.

3박4일간의 프로그램은 꽤 빡빡했다. 황토벽돌 만들기, 황토·먹 염색하기, 바느질하기, 계곡에서 물놀이하기, 공동체 놀이, 유기농 농사체험, 새끼 꼬기, 환경신문 만들기, 작은 운동회 등. 뙤약볕 속에서 진행하기에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만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더라.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기대하고 있고, 프로그램 사이사이 남는 시간에 조차 쉬지 않고 뛰논다. 나에게 와서 심심하다고 하는 아이도 많았다. 과연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아이들. 이들이 불태우는 것은 젊음이 아니다. 넘치는 기운을 태워서 에너지를 만든다. 아이들이 열심히 뛰놀고, 활동하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쌓아간 에너지가 나중에 이들에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될지 기대된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놀아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놀아야 한다. 옷을 더럽히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몸에서 땀 냄새가 날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지쳐서 그만 놀고 싶다고 할 때까지 놀아야 한다. 어린이 자연학교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놀았다. 과연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렇게 놀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아이들이 가엾기도 했다. 색소가 잔뜩 들어간 간식을 입에 물고 현란한 색깔이 눈을 어지럽히는 컴퓨터에 앉아서 에너지를 화면 속에 빼앗길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끔찍하다는 느낌도 든다. 아이들이 3박4일 동안 자신들 안에 있는 넘치는 힘과 상상력과 감수성을 발견했을까?

아이들은 너무나 기발하고 독창적이다. 어른들은 상식과 이성 속에 갇혀서 생각해 낼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은 금방 발견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 생각의 깊이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안에 있는 잠재된 감수성의 발현이다. 황토벽돌을 직사각형으로 만들지 않는 아이들, 잎사귀로 벽돌을 장식하는 아이들은 숲 속에 감춰진 반딧불을 보는 데 열중하고, 밤하늘의 별을 찾아 길 위에 드러누울 수 있는 순수한 감수성의 소유자다. 자연과 함께 드러나는 그들의 감수성은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면서, 짚으로 꼬아 만든 뱀 인형이 없어졌다고 우는 여자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안쓰럽던지…

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훌쩍 커버린 것에 대해 역시나 서글퍼졌다. 더 깊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도 슬펐고, 내 마음이 닫혀져 있는 것도 슬펐다. 물론 금방 지쳐버리고, 밥을 포기하고 낮잠을 청하는 나의 체력을 보는 것도 슬펐다.

인천에서 오신 처장님께서 황토를 서울로 가져가면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가 될 거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짧은 시간 키운 꿈과 에너지가 부디 도시로 돌아가 쓰레기처럼 쓸데없어 소외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자연이랑 친구하고, 친밀하게 지내온 이 시간을 소중히 기억해서 언제 어디에 있든지 자연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 모둠교사 물댄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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