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 가을숲 산수유반 이야기

2004.10.25 | 행사/교육/공지



날이 참 좋아서 오늘의 만남이 은근히 기대된다. 전날 새싹과 사과샘과 함께 숲에 잠깐 들렀더니 아무래도 맘이 든든하다. 숲에 가는 길목에 보라색 꽃향유들이 만발한 걸 보면 아이들이 참 좋아하겠지?  지난달에 고마리들을 보면서 탄성을 올렸던 그 자리에 꽃향유들이 들어서 있었다. 한 달 사이에 또 변했다.

오늘  친구들이 많이 안 왔다. 주민자치센터가 문을 열지 않으니 곧장 사일구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이들 만날 준비를 열심히 해 오신 초록이 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랴, 안 온 녀석들이 후회할 만큼 재미나게 놀아야지.

햇살이 좋은 사일구 공원에서 멍석말기를 하고 놀면서 시작했다. 첫 달에 그렇게 빼면서 안하던 아이들이 오늘은 신나게 빙빙 돌아가며 멍석을 말고, 풀고, 그러다 넘어지고.
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놀고, 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땐 쉬고. 그렇게 느껴지는 마음을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이었는데, 초록이 학교를 할 때면 더 자연스러워지는 아이들, 한번 한번 더 만날 때 마다 자연스러워 지는 것을 보니 참 좋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 그대로, 일상생활에서도, 학교생활에서도, 집에서도.  마음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특히 아이들에게.

오늘은 숲과 물로 나누어서 진행을 할텐데, 숲팀은 여덟명이다. 적어서 더 좋은 점은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 마디라도 더 나누게 되고, 눈도 한번 더 맞출 수 있지.

지난 봄에 개구리알과 올챙이들이 손에 달라붙던 습지 쪽으로  들어간다.  그 사이 습지쪽은 발갛고 누런 풀들- 무언지 이름은 모르지만 무지 푹신푹신한 풀들이 잔뜩 있다.
성진이는 어이구 소리를 내며 풀 위에 쓰러진다. 나도 따라 누웠더니 여러가지  풀냄새가 한꺼번에 난다.

사과샘의 안내로 가을 숲 파레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름과도 달라진 숲은 정말 여러가지 색이 가득한 파레트 같다.  누나를 따라 온 유치원생 석호가 제일 바지런하게 이것 저것 모은다.



   

보라색 개미취, 회색과 갈색이 조금 섞인 새의 깃털, (석호가 금색이라고 주장하는)바스락 거리는 잎, 새빨간 잎, 조그만 노란 잎, 입구에서 주워온 것 같은 도토리들, 밤송이, 풀꽃.

아이들마다  종이팔레트에 붙이는 것도, 붙이는 방식도, 모으는 취향도 다 다르다.
작고 깔끔하게 붙이는 아이, 크고 작은 것과 색색가지가 어울리도록 배치하는 아이, 큼직큼직하게 대범하게 붙이는 아이. 태환이는 습지 밖에 나가서 고사리를 가져와서는 저 혼자 발견했다고 좋아라 한다.

파레트를 죽 걸어놓으니 그 자체로 멋진 작품이 되었다. 어디서 발견했는지, 무슨 색으로 불러줄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아이들은 신이 났다. 어디서 발견했는지 자랑하고, 눈이 밝은 것도 자랑스럽고, 자신들의 작품에 스스로 감탄하여 샘들의 사진기를 가져다가 사진찍기에 바쁘다.

숲에 올라가서 낙엽으로 모자와 목걸이, 팔찌를 만들고, 나무그네위에서 놀고, 열매를 주워모으다 보니 어느덧 새참시간. 찐계란을 머리에 대고 톡 톡 두드려서 까고 꿀떡을 먹는다. 늘 그렇지만 산에 오면 뭐든지 다 맛있어서 잘 먹게 된다 – 물론 안에서도 아이들은 늘 잘 먹지만.

공책과 색연필을 나누어 주고 시와 그림그리는 시간을 주니 금세 그리기에 열중한다.
낙엽 깔고 잎맥나타내거나 나무를 그리고, 시를 쓰는 것이 진지하다.

조용한 가운데 집중하는 것도 이 숲에 오면 좋은 점 중 하나이다.  해야 할 숙제가 많거나,학교에서 혼나거나 친구들과 싸우거나, 할머니에게 혼나거나 혹은 수학문제가 많이 틀려서 이래저래 속상한 일들 때문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고요한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다.
좁은 공간에 다양한 학년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기에 늘 비좁고 소란스럽고 수선스러운 공부방생활에서는 좀처럼 갖기 힘든 순간이다. 여럿이 있지만 혼자서도 즐기기. 고요한 가운데에 집중하기.


    

숲을 내려와서 난나수련관뒤에서 물팀 아이들과 만났다. 날이 춥진 않은데 춥다고 샘들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니 물에 빠졌다 나온 기색이 역력해서 웃음이 나온다. 물 만난 고기들처럼 놀았나 보다.  

내려오는 길에 모아온 고사리, 풀꽃, 여뀌, 단풍잎들을 수건위에 올려놓고 숟가락으로 두드려서 나뭇잎 손수건을 만들었다. 난나 수련관 뒤에 울려 퍼지는 숟가락 두드리는 소리, 다다닥 다다닥. 쩌렁쩌렁 울리는데도 녀석들은 하나도 시끄럽지가 않나보다. 잎의 색들이 손수건에 배어나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가 들려있기 때문이다. 고사리가 고스란히 모습이 드러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사리 좀 더 꺾어올걸.”
제법 조형적으로 배치해가며 잎을 두드리기도 하고. 단풍잎이 색이 잘 나온다며 한 가지 가득 달린 잎을 가져와서 깜짝 놀라게 한다.
“꺾은 거 아니에요~ 주워온 거에요”

어느덧 아쉬운 시간이 가고 샘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짧지만 정말 길게 보낸 하루다. 다음달 초록이 학교가 또 기대된다. 다음엔 더 길고 긴 하루가 되겠지?

추신 :  16일날 초록이 학교를 하고 난 후, 창가에 손수건을 걸어두었어요. 못 온 아이들이 배 좀 아팠지요^^* 그리고 19일 수요일에 창경궁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이런저런 열매줍고, 처음보는 나뭇잎 모으고, 책에서 나무 찾아보았답니다. 잎자루가 긴 잎, 넓은 잎, 작은 잎이 많이 달린 잎들, 주워온 이유가 갖가지인 게 아이들 눈이 많이 밝아졌나 봅니다.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이번 주는 아이들도 저도 내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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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딸기샘 이경원

수유2동 방과후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하고 계신 딸기샘은 넓고 큰 마음을 가진 큰언니같은 선생님입니다. 아이들보다 더 경이로운 눈빛으로 자연을 만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초록이학교 선생님들은 늘늘 많이 배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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