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함과 기대를 남긴 투어

2017.04.28 | 행사/교육/공지

오랜만에 깨끗한 날씨였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밝고 좋은 날이었습니다. 지난 연말 성북동에서의 회원 송년의 밤 이외엔 처음으로 참가하는 녹색연합 이벤트 때문인지, 화창한 주말 외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한껏 들뜬 저는 룰루랄라 흥얼대며 약속장소인 이촌역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활동가님 들의 안내로 이름표도 달고, 간식도 챙기고 용산 담벼락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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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국립중앙박물관 계단 위에 서서 날 좋은 서울 전경을 바라보며 모든 일정에 앞서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을 때만 해도 투어의 내용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수연 활동가님의 대략적인 설명 이후 우리는 조금 걸어 내려와 벚꽃잎 비가 내리는 화창한 봄날의 공원 안에서 둘러앉아 투어의 의미와 알고 넘어가야 할 일련의 정보들을 듣고, 또 짧지만 굵직하게(?) 환경보호에 관한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간단한 게임도 한 후, 본격적인 담벼락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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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있던 기분도 잠시, 곧게 뻗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던 동작대교의 사실을 듣고 바라본 순간부터 조금씩 진지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던 거 같습니다. 힘이 없고 결정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이 뜻하지 않게 서려 있는 구조물이었다고나 할까요. 한껏 곡선을 그리며 돌아 나오는 동작대교를 뒤로하고 왼쪽으로는 미군 기지의 담벼락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봄 날씨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들과 녹슨 철조망이 얹혀 있는 높은 담벼락의 묘한 이질감이 뭔가 모르게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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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고 지나쳤던 도로와 담벼락인데, 그 너머에 우편번호까지 캘리포니아로 정해져 있는, 우리 땅 아닌 우리 땅이 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로 말입니다. 이미 알려진 혹은 일부만 우리에게 알려진 미군 기지 내에 유류유출과 토양오염에 대해 듣기 전에는 말입니다. 이런 문제에 이제껏 내가 얼마나 소홀히 하며 살아왔나 라는 생각에 창피함이 먼저 든 것도 사실입니다만 지금부터라도 좀 더 알아가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수밖에요. 아무튼, 이미 반납된 부지 안에 지어진 용산구청 근처에서 올라간 육교 위에서 내려다본 담장 너머 풍경은, 안팎의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그 모습은 꽤 오랫동안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담장 너머 견학을 마치고 용산구청에 도착한 후, 꽤 더웠던 날씨 덕에 살짝 지쳐있던 우리는 용산구청 안마당에서 잠시 쉬며 목도 축이고, 들었던 정보들에 대한 퀴즈도 맞히면서 휴식을 잠시 취했습니다. 활동가님들이 보따리장수처럼 주섬주섬 준비해오신 퀴즈 정답자들을 위한 선물들로 좀 더 활발하고 열띤 퀴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같이 하나도 못 맞힌 사람들에게도 참여상 비슷한 상품을 주시고… 감사합니다.

 

즐거운 퀴즈의 시간이 끝나고, 녹사평역 쪽으로 계속 향하던 도중, 이태원 도입부에 있던 공사장 같은 곳에 대한 뜻밖의 정보를 듣고 한 번 더 놀랐습니다. 꽤 자주 지나다니게 되는 길이였는데, 응당 그곳이 그냥 공사 현장인 줄만 알고 지나쳤었는데, 사실은 그곳이 오염된 지하수를 거둬 가는 집수정이었습니다. 매주 1~2회 오염된 지하수를 거둬 간다는데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가 관심이 너무 없었던 거였겠지요. 불과 몇 시간 동안 도대체 몇 번이나 이런 놀라운 사실과 대면하게 될 수 있는 건지, 어쩜 이렇게도 관심 없게 다녔는지 또 한 번 반성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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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쟁기념관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녹색연합의 사육곰 공익광고가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을 본 것은 일종의 작은 깜짝 선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전쟁기념관 앞에 도달하여 투어를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모여 환경 문제에 대해 자신이 바라는 것도 직접 써보고, 사진도 찍고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짧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그 반나절을 다시 떠올리고 정리하며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직접 써 내려간 그 시간은 차분하게 투어를 마무리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투어 일정이 끝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뒤를 돌아보는 기분에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미묘한 씁쓸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환 후 좋게 변해갈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며 투어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이 후기를 써보겠느냐고 연락이 왔을 때 워낙 글재주가 없는 저는 망설여졌지만 이렇게 느낀 점을 말하는 것도 참여의 한 부분이 되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써봤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지하수/토양 오염에 대한 환경부의 검사 결과가 공개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항상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상의 관심이 덜한 문제에 대해서도 꾸준히 지속해서 노력해 주시는 활동가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종석 님은 고양이와 자전거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설치예술가다. 꿈은 세상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가 되는것이고, 초능력을 얻는데 실패하여 요즘은 친환경적인 예술 생태계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다. 세상 대신 지구라도 지켜볼까 하고.

 

글 . 김종석 회원

사진. 김종석 회원/ 신지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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