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가을을 그리는 생태드로잉 12기 첫 시간 🙂

2018.10.15 | 행사/교육/공지

치열한 삶에 지칠 때면 자꾸 숲으로, 산으로 가고 싶어서 쉬는 날마다 여기저기 많이도 떠돌았었다. 하지만 그때뿐,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지치게 되고. 그래서였을까. 회색 도시에서도 찾아보면 꼭 어딘가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는 초록 생명들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은.

녹색연합에서 여는 생태드로잉 강좌를 알게 된 것도, 몇 년 된 것 같은데 이제야 연이 닿았다. 직장 다니면서 이미 수많은 것들을 하고 있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스케쥴이 소박해지고 나니 비로소 자연에, 그림에 손을 뻗게 됐다.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항상 뒷전으로 미뤄뒀던 것들. 더이상 미루지 않게 되어 좋다.

오늘은 첫 교육날. 혜화동 녹색교육센터에서 7시반부터 9시반까지 수업을 했다. 오랜만에 들른 혜화역. 풍경이 여기저기 바뀐 듯 그대로인데, 너무 차가워진 바람은 참 낯설었다. ㅋㅋㅋ 경량패딩을 입길 참말 잘했다.

오늘의 준비물! 다 준비한 나는 모범 학생. 이야.

첫 수업의 준비물은 펜 -피그먼트 펜(0.01mm나 0.02mm). A5나 B5 사이즈의 무게 120g이상의 재질의 스케치북. 알고 보니 첫날에는 설명도 꽤 많아서 이걸 굳이 다 갖출 필요는 없었다. 동네 알파에 갔다가 피그먼트 펜을 낱개로 안 팔고 세트로 팔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6개 세트를 산 1인은 웁니다.ㅠㅠ 피그먼트 펜을 쓰는 이유는 피그먼트 잉크가 물에 번지지 않아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이 가능하기 때문. 보통 수채화에는 연필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지우지 않고 한번에 펜으로 그리기에 시간이 단축된다. 대신 수정이 어려우니 신중히 잘 그려야겠지..? ㅠㅠ

요즘 생태 세밀화가 유행이라고 한다. 실제로 모 대학 평생교육원의 졸업작품집을 보여주시면서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하셨다. 다들 하루에서부터 끽해야 일주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한 달이나 걸린단다.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너무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그럼 우리는? +_+ 1시간이면 그릴 수 있다고 한다. 그리면 그릴 수록 시간은 점점 짧아질테고. (작가님은 실제로 간단한 것은 15분, 복잡한 것도 30분만에 그리신다고 한다.) 다행이다. 휴우..ㅋㅋㅋㅋ

강사 황경택 선생님! 책에서만 뵙다가 실제로 뵈니 신기했고, 강의할 땐 완전 열정이 넘치셨다. ㅎㅎ

자연을 사랑하셔서 돈 많이 버는 만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생태 만화가가 된 황경택 선생님. 숲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경험하며 배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흔한 오해도 정정해주셨다. 단풍나무 잎은 프로펠러처럼 생겼는데, 실제로는 쪼개져서 하나씩 날아간다고 한다. 다음에 숲에 가서 확인해봐야지.
책 열 권을 동시에 쓰시는 기염을 토하시며… 지방을 오가며 강의하시며 바쁘게 사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오늘 강의 내용을 목차 별로(?) 요약해보자면

1. 인간은 왜 그리나? 모든 것은 유한하기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 (37000년 전).

쇼베동굴 벽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나도 내 삶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를 하고, 또 블로그를 하면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더 기억에도 오래 남는 걸 보며.. 기록은 본능이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일이다.^_^

2. 인간은 왜 잘 그리고 싶어하나? (우리는 왜 이 강좌를 들으러 왔나..?)
한 마디로 자랑하고 싶어서…ㅋㅋㅋ
하고 싶은 걸 자발적으로 표현하고 싶고 +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아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3. 그림을 그리면 관찰력이 살아난다. 그러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게 된다.
–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하면 관찰한 것이 아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서 살면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진다. 그게 바로 정신적 장수다. 풍요롭게 살면 같은 기간을 살아도 오래 산 기분이 든다. ㅎㅎ

실습: 지금 내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 안 보고 그리기 / 보고 그리기
나는 립밤을 골랐다. 막상 그리려고 하니 겉포장에 쓰여져 있는 게 뭐였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났다.

왼쪽이 생각으로 그린 그림, 오른쪽이 실제로 보고 그린 그림. 지구본 그리기가 이렇게 어렵다니.ㅋㅋ

이 조그만 립밤 안에 지구 모양이 있는 줄 알았다면 안 골랐을텐데. ㅋㅋㅋ 그리고 All in one이 아니라 All one이었다. 흠흠. 크기도 실물과는 많이 차이가 나고. 늘 보던 것인데도 유심히 보지 않으니 기억이 안 나더라. 화가들은 이렇게 보고 그리고 안 보고 그리고를 반복하며 연습했단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천재적이어서 안 보고도 쓱 그리는 줄 알았지..ㅋㅋㅋ

4. 그림을 안 틀리고 그리는 방법? 유아처럼 그리면 된다. 한 선으로 주우욱!

5. 윤곽선으로 그리기(컨투어 드로잉)
구도를 잡지 말고 윤곽선부터 먼저 잡아서 그려라.

실습: 내 눈 앞의 포크 그리기.

급한 대로 테두리만 쓰윽. 그래도 제법 나쁘지 않은데?

6. 조금만 보고 조금만 그려라.
–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과 못 그리는 사람의 차이??
못 그리는 사람은 그냥 한 번 보고 혼자 외워서 그린다.
잘 그리는 사람은 피사체를 계속 보면서 조금씩 그린다.

ㅋㅋㅋㅋ 왼쪽이 못 그린 그림, 오른쪽이 잘 그린 그림.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의 차이는? (둘 다 황 작가님이 그리심.)
왼쪽은 한 번 쳐다보고 슥 그렸고, 오른쪽은 몇초에 한번씩 계속 얼굴을 보며 그린 그림.
그것이 잘 그리는 사람의 결정적 비결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읍따!!

7. 선 사이의 빈 공간을 보면서 그려라.
자꾸 내 그림을 공개하게 되어 부끄럽지만 설명을 위해…

저기 검은 부분으로 표시한 것이 선과 선 사이의 공간. 저 모양도 보면서 그려야 정확히 그려진다.

이렇게 쉬는 시간 없이 두 시간이 알차게 흘러갔다. 첫 시간이지만 그림도 벌써 몇 개 그리고. 다섯 번의 수업만에 기적이 일어난다는데.. 과연 내게도 일어날 것인지.ㅎㅎ 기대가 된다. 어쨌든 귀차니즘과 망설임을 이기고 수강을 결정한 나 자신에게 박수. 짝짝짝.

– 만날 마감되던 강의인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자리가 있다네요! 이제라도 들으실 분들 함께 해요.^_^
https://www.greenkorea.org/?p=66073

 

글/사진 : 금민지 회원(녹색연합 가을을 그리는 생태드로잉 12기 수강생)

블로그 주소 : https://blog.naver.com/livefe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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