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만드는 청년, 당신을 떠나보냅니다

2019.03.18 | 행사/교육/공지

 

포털 사이트에 ‘산업재해 사망’을 검색해 본다. KCC 여주 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포항제철소 하역기 사망사고, 여수 조선소 선박 수리작업 중 사망사고…. 2019년 2월에도 산업재해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 ‘김용균법’이 만들어졌다는데 직장인들은 여전히 일하다 죽고, 책임 공방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가족·연인·친구였을 이들의 죽음은 ‘인부’, ‘50대 건설근로자 추락사’와 같은 무심한 단어로 남는다.

 

빛을 만드는 발전소

한국서부발전(이하 ‘서부발전) 태안화력 9,10호기.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이 발전소는 2017년 12월 21일 완공된 ‘산업역군’이다. 국내 표준화력 500MW의 두 배 용량(1,050MW), 연료비를 300억 원 이상 절감할 미래형 발전소, 발전효율을 1.5% 높여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하는 친환경발전소, 타 발전소의 사업기간과 비교해 6개월가량 단축된 준공기간. 건설과정에서 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건설 도급사들이 ‘저가 입찰’의 압박으로 줄줄이 부도를 냈지만 서부발전은 ‘자부심을 느낀다.’[참고1]

화력발전은 보일러로 물을 가열하고, 그 증기로 전기를 얻는다. 석탄이 공급되어야 보일러는 가동된다. 석탄이 하역되는 순간부터 보일러에 도착할 때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움직인다.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움직이는 석탄이 고착되거나 낙탄이 생기면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로 몸을 집어넣는다. 고착된 석탄을 쑤셔서 뚫고, 낙탄을 삽으로 제거하고, 이상을 점검한다. 김용균 님의 업무도 그랬다. 2018년 12월 10일, 김용균 님은 평소 업무였던 컨베이어 벨트 이상 유무를 확인하던 중 고속회전 하는 롤러와 벨트에 몸이 협착되어 목숨을 잃었다.

 

비용절감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안전을 놓쳤다

멈췄어야 할 컨베이어벨트는 멈추지 않았다.[참고2] 컨베이어가 멈추면 석탄 저장고(사일로)의 석탄 게이지가 줄어든다. 석탄 게이지가 낮아지면 발전소 출력이 감발될 수 있다며 서부발전은 예민하게 굴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움직이는 컨베이어에 제대로 된 안전장비 없이 몸을 집어넣는다. 믿을 것이라고는 비상시에 누군가 잡아당겨 줘야 하는 풀벨트(안전줄) 뿐이다. ‘점검지침서’에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하지만 김용균 님은 홀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이하 ‘발전기술’) 간에 체결된 도급계약서에는 투입인력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계약서에 따르면 컨베이어 운전원은 20명이다. 20명이 4조 2교대에 따라 조별로 5명씩 나뉘고, 5명은 5개의 구간에 배치된다. 구간마다 한명, 원천적으로 2인 1조 근무는 불가능했다. 투입인력이라는 ‘비용절감’과 점검지침서라는 ‘안전’이 놓인 저울은 ‘비용절감’으로 기울었다.

 

개선을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김용균 님은 비정규직이었다. 일하는 곳은 ‘서부발전(주) 태안발전본부’지만 소속은 ‘발전기술’이라는 회사다. 발전기술은 태안발전본부의 발전소 9, 10호기 및 IGCC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 즉 서부발전(주) 정규직 노동자가 근무하는 보일러까지의 운탄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석탄을 옮기는 일은 발전량과 직결되는 문제다. 서부발전은 발전기술을 통제하고, 현장의 의견을 묵살한다. 설비 하나가 고장이 나서 탄이 너무 많이 새는 경우에도 발전기술 노동자들은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서부에서 모든 지시를 한 다음”에야 처리할수있기에고장난기계를계속돌려야한다. 발전기술 노동자들은 서부발전의 부당한 지시에 위험했던 적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한다.

“제어원이(서부에서) 빨리 돌리라고 하니까 확인 못하고돌려버렸어요.한명이 벨트 위에서 타고서 몇백 미터 갔죠. 그때(설비 운용 초기) 당시 2인 1조로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비상정지 스위치를 땡겨서 사고를 막았죠. 다른 일하다 보면 시간이 걸려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는데 서부 감독들은 ‘빨리 돌려라’ 한 거죠. (근데) 우리 잘못으로 와요. 제어원이 경위서를 쓰고 그분은 그만뒀어요.”[참고3]

노동자들은 28차례에 걸쳐 설비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발전기술과 서부발전은 이를 묵살했다. 서부발전이 자부심을 느낀다는 9~10호기에는 최소한의 물청소 라인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위험한 작업 개선을 요구하면 “손실금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하청에서 책임지라”는 답변만이 돌아왔고, 위험한 업무를하다사고가나면“네가일을한전문가인데 위험한 줄 알았으면 하지 말았어야지.”라며 책임을 떠넘겼다.[참고4]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사회적 타살이다

서부발전은 3년째 무재해 사업장으로 정부 인증을 받았고, 산재보험료를 22억 원 넘게 감면받은 사업장이다. 김용균 님 이전에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까. 아니다. 최근 5년간 서부발전의 재해자는 총 44명[참고5]이 중 42명(95.5%)이 비정규직이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정규직의 죽음. 서부발전은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 한 덕에 무재해 사업장이 될 수 있었다. 김용균 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서부발전은 2018년에도 무재해 사업장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김용균 님의 사망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사회적 타살이다. ‘위험의 외주화’의 실패임과 동시에, 한국노동시스템의 오류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진상규명’ 역시 안전에 대한 기술 진단, 법위반 사항 적발[참고6]로 한정 지을 수 없다. 서부발전, 한국의 전력생산 시스템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전기라는 사회적 혜택을 위해 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드러내야 한다. 생명과 안전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참사를 만들어냈는지를 밝혀야 한다. 안전제도와 프로그램의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구조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실을 규명해야지요.

빛을 만드는 청년이었던 김용균 님. 62일 만에 그를 보내는 영결식의 이름은 ‘김용균이라는 빛’이었다. 김용균 님이 떠난 자리, 우리의 과제만 남았다. 이는 송경동 시인이 말한 ‘진실 규명’이 우리의 과제다.

 

진실을 규명해야지요
이때 한 청년비정규직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빛이 되어주었는지
한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우리 모두의 폐부를 어떻게 찢어왔는지
왜 없는 이들에게 여전히 세상은 곳곳이 세월호고 구의역이고 태안화력발전소인지

이 실상을, 이 참상을, 이 야만을 규명해야지요 남은 우리 모두가 김용균이 되어
이 뿌리 깊은 설움을, 이 분노를 규명해야지요

이런 시작이라고 약속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작이라고 어머니를 부둥켜안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작이라고 이 불의한 시대에 선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달리 어떤 위로의 말도 찾지 못해
진상을 규명해야지요, 진상을 규명해야지요
수천만 번을 되뇌이며
우리 시대 또 다른 빛이 되어주었던 당신을 떠나보냅니다 (참고7)

 

·오진호

오진호 님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이다. 노동과 사회운동의 접점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지금은 직장인들의 상담창구 ‘직장갑질119’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 및 부분 출처]

1) [매일경제]’국내 최대 용량’ 태안화력 9·10호기 준공, 2017.12.21

2) 제92조(정비 등의 작업 시의 운전정지 등) 1
사업주는 공작기계ᆞ수송기계ᆞ건설기계 등의 정비ᆞ청소ᆞ급유ᆞ검사ᆞ수리ᆞ교체 또는 조정 작업 또는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작업을 할 때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해당 기계의 운전을 정지하여야 한다. 다만, 덮개가 설치되어 있는 등 기계의 구조상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3)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보고서(2019.01.24.,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

4)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보고서(2019.01.24.,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

5) 드러난 통계. 노동자들은 일하다 사고를 당해도 산업재해 처리를 받지 못한 채 치료만 받고 다시 출근한다는 증언들이 많았다.

6) 2019.01.15. 노동부는 ‘서부발전 태안화력 특별안전보건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1,029건 적발, 과태료 6억7천여만원. 사용중지 컨베이어 8대 등이다.

7) <진실을 규명해야지요. 2019.02.09.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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