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녹색빛] 손으로 짓는 지구

2019.03.18 | 행사/교육/공지


손을 움직여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합니다. 제가 만드는 것은 주로 바느질만 할 줄 알면 만들 수 있는 천으로 된 물건이고, 상품처럼 마감이 깔끔하지 않아 조금 투박합니다. 어딜 봐도 핸드메이드 티가 팍팍 나는 이 물건들을 저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소재의 케이스 대신 사용합니다. 면으로 된 천과 실은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없어지는 과정에서도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아 플라스틱이나 비닐, 일회용품을 사용할 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지구에도 도움이 된다니, 다행입니다.

몇 해 전 방을 정리하며 물건을 잔뜩 버리다가 제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 어떤 경로를 거쳐 저에게 오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버리려는 이 물건에는 몇 명의 수고가 담겨있을까? 내가 사용하는 이 물건이 누군가의 노동력을 착취한 물건은 아닐까? 해외에서 만들어진 이 물건을 혹시 어린아이가 만든 것은 아닐까? 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이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한 화학 물질 때문에 병에 걸리지는 않았을까? 내가 혹시 누군가를 아프게 한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버렸을 때 잘 썩는 물건일까? 소각하는 과정에서 유해한 물질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재활용은 가능할까? 이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산이 벌목되지는 않았을까? 강과 바다가 오염된 것은 아닐까? 살 때는 전혀 의문 없이 산 물건들인데 버릴 때가 되니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질문 후에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은 만들어서 쓰고, 만들 수 없는 물건 중 꼭 필요한 물건만 사되 윤리적으로 소비하고, 그 물건이 만들어진 목적을 다할 때까지 끝까지 쓰자”입니다. 지구에 얹혀 사는 제가 제 삶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만들 때, 지구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만드는 이유부터 사용하는 재료까지,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에게는 지구에 덜 해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요.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지구에 남겨져있는 재료 말고 나와 같이 늙어가며 사라져갈 재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생산하는 과정에서 광대한 면적의 나무를 벌목하거나, 야생동식물의 삶을 빼앗거나, 지역 주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재료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리사이클링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스스로 만드는 사람이 더 많아질 미래를 그려보면, 물건을 공장에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전기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전기 사용이 줄어들면 발전량도 줄어들겠지요. 발전량이 줄어들면 온실가스도 줄어들고, 우리를 괴롭히는 미세먼지도 줄어듭니다.

“그거 들고나가면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뒤에서 흉볼거야.”
“요즘 누가 핸드메이드를 좋아해. 정성이 최고다 그런 것 다 빈말이야.”
“그냥 사지, 궁상맞게 뭘 또 만들고 있어. 그거 만들 시간에 그냥 가서 사겠다.”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사는 거야. 네가 들고 다니는 물건이 너를 말해준다고. 그건 너무 없어보이지 않아?”

손으로 지은 물건을 들고 다니는 데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지 몰라요. 싼 값에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어 팔고, 계속된 소비를 강요하는 자본주의가 하나의 물건에 정성을 들이는 핸드메이드를 좋아할리 없다고 생각합니다(또는 핸드메이드에도 자본주의를 끼얹겠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눈에 핸드메이드 물건이 투박하고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손으로 짓는 일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게나마 스스로 자립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요즘에는 ‘소비하면 확실히 행복하다’고 변형하여 사용하지요. 저도, 소비가 행복합니다. 하지만 생산은 더 행복합니다. 재미도 있습니다. 스스로 자립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존감은 덤입니다.

손으로 짓는 일은 지구와 사회에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요즘 핸드메이드 작업을 하는 오프라인 원데이 클래스나 온라인 클래스가 활발하게 개설 되고 있지요. 관련된 어플도 많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만족과 치유를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바늘을 꽂고 빼는 일 그 자체를 좋아합니다.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마트폰을 만지던 손으로 따뜻한 감촉의 천을 만질 때 행복합니다. 실이 천을 통과하는 소리가 정말 중독적이라는 것, 겪어본 사람만 알겠지요. 머릿속의 잡념이 사라지며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바느질할 때의 느낌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바쁜 하루의 끝에서 잠시라도 바늘을 잡으려고 합니다. 저에게 바느질은 명상과 같거든요.

혹시 당신의 삶이 일과 잠뿐이라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소비하고 있다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싶다면 ‘손으로 짓기’를 조심스레 권합니다. 당신의 삶에 풍요를 더해줄거예요. 그리고 분명히, 지구가 당신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느끼게 될 거예요.

 

글: 이다솜 (녹색연합 활동가), leeds@greenkorea.org

이 글은 빅이슈 199호 <녹색빛> 코너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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