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함께 걷다 뿐이겠어요~. 손까지 꼬옥 잡아드릴게요^-^
– 글 / 류세희 회원
빗방울이 폴폴 날리는 수요일 저녁, 처음으로 호두나무집을 방문했다. 버스를 연거푸 갈아타고 한가한 골목을 헉헉거리며 올라오던 나를 맞은 것은 우선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자전거였다. “서울에서 자전거 타는 것은 자살행위야. 도로도 위험하거니와 매연 뿜어대는 차들 옆에서 달리다간 폐병 걸릴 걸~”이라던 주변의 만류에 항상 동경만 해오던 바로 그 자전거들!!!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다.
호두나무집에서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따뜻했다. 마치 잘 알고 지내온 사람처럼 친근히 인사해주던 간사님들 덕분에 혼자서 왔다는 어색함도 버릴 수 있었다.
한마당의 첫 순서는 올해 다녀온 천성산 녹색순례에 대한 이야기였다. “천성산, 생명의 속도로 가라”는 화두로 전개된 이번 순례는 참가자들에게 ‘백번 듣는 것도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를 실감케 한 감동적 체험이었다고 했다. “KTX 고속철도로 지나쳐 버리기엔 천성산은 너무 아름답습니다.”라는 표현을 본 기억이 났다. 속도를 위한 속도가 아닌 누구를 위한 속도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숨 돌릴 새 없이 바삐 고지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 늦더라도 꼼꼼히 걸어가는 것! 녹색순례는 경쟁적인 수치들로 표시되는 속도 때문에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의 속도를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예정보다 길어진 자기소개 덕분에 저녁식사가 늦어졌지만 조급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오카리나 교실, 고래보호 캠페인, 동물발자국 손수건…. 녹색연합에 회원가입을 하게 된 가지가지의 사연들도 흥미로웠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참 인연이다 싶어 즐거웠다. 살뜰한 저녁 밥상을 행복하게 먹은 후엔 내부 사무실을 둘러봤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들, 마루에 놓여있는 침낭, 지키지 못할 다짐뿐인 “야근금지”표지 등을 통해 바쁘고 치열한 녹색연합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다른 회원 분들의 ‘나만의 녹색생활 노하우’와 메밀 씨앗을 선물로 받아 돌아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가 얻은 더 큰 기쁨은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자신감이다. 그동안 느리고 경쟁적이지 않은 내 삶의 속도에 대해 불안해했고, 주변의 걱정과 부추김에 항상 흔들려 갈등했다. 스스로의 삶의 속도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 맞추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조차도 부끄러워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의 속도-생명의 속도 같은-를 인정하게 되었다. 또 앞으론 절약습관 때문에 ‘요즘애가 궁상맞다’거나 ‘할머니 같다’고 친구에게 놀림 받더라도 상처받지 않을 튼튼한 자신감도 생겼다!!! 하! 하! 하!
메밀의 작은 씨앗에서 잎이 돋아나듯 내 마음에도 용감한 초록희망이 움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