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이 섬을 떠나서 갈 곳은 없다

2019.09.14 | 행사/교육/공지

태평양 한가운데, 타쿠(Takuu)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400여 명의 폴리네시아인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작은 섬이다. 전기도 스마트폰도 없이 전통적인 문화를 천년 넘게 유지하며 살아온 공동체다. 어느 날부터인가 바닷물이 이들의 집을 침범하고 해안가가 점점 사라져간다. 밭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타쿠섬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지, 몰려오는 바닷물을 막을 대책을 세울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외부에서 초빙한 과학자들은 파도를 막기 위한 방조제는 무용지물이라고 판단한다. 방조제가 오히려 모래를 쓸어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결국 타쿠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인근 타히티 부갱빌로 이주하고 있다.

<그곳에 섬이 있었다(There Once Was and Island: Te Henua e Nnoho)>라는 다큐멘터리의 내용이다. 짐작했겠지만 타쿠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된 것은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때문이다. 빙하가 녹고 지구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바닷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에 치명적이다. 타쿠섬 만이 아니라 휴양지로 유명한 몰디브나 투발루, 키리바시와 같은 작은 섬나라의 국토 전체가 바닷속으로 사라질 위험에 놓여 있다. 말 그대로 기후변화는 이들에게 재앙이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난민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머나먼 태평양 어느 작은 나라의 딱한 처지로만 여길 수 있을까.

영국의 언론사 가디언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중립적인 단어표현으로는 현실의 심각성을 드러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인간이 뿜어낸 온실가스는 지구를 위기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 이상 기후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2018년 한국의 유례없던 폭염을 기억할 것이다.
한 달여간 지속 된 폭염은 4,526명의 온열질환자와 48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올해 유럽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렸고, 인도는 50도에 육박했다. 북극권에 위치한 알래스카도 평년의 2배가 넘는 섭씨 30도를 넘어섰다. 폭염만이 아니라 태풍, 호우, 산불 등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낳는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다. 이상기후는 식량부족과 물부족을 낳는다. 생태계 붕괴의 징조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구 생물종의 멸종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빙하가 녹는 속도는 과학자들의 예상을 넘어서며 해수면 상승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영구동토층과 북극 심해의 메탄이 방출되면 기후변화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고무줄이 끊어지듯, 지구가 회복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에 합의했다. 파리협약은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상승을 2도 훨씬 아래로 억제하자는데 약속했다. 2018년 IPCC는 특별보고서를 통해서 2도가 아닌 1.5도로 기온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인류 문명과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1.5도가 마지노선일 수 있고, 그 마지노선을 넘느냐 마느냐가 향후 10년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노력은 형편없이 부족하다. 유엔환경기구는 최근 파리협약에 따라 각국이 약속한 의무를 다 지켜도 지구 온도가 3도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은 어떤가. 유럽의 민간기구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57개국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한국은 기후변화대응지수 55위를 기록했다. 꼴찌에서 3번째다. 더군다나 현재 한국정부는 온실가스의 가장 큰 주범인 석탄발전소 7기를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아직 세계는 위기를 위기로,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전세계 인구의 18%에 해당하는 소위 선진국들이 전체 이산화탄소의 70%를 배출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전기조차 쓰지 않는 타쿠섬처럼 가난한 나라의 주민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폭염에 쓰러지는 이들은 냉방설비에 에너지를 펑펑쓰는 이들이 아니라, 40도를 넘나드는 아스팔트를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들이다. 기후위기를 일으킨 것은 기성세대이지만 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금 막 생을 꽃피우기 시작한 청소년들이다. 인간이 뿜어낸 온실가스로 죽어가는 건 바닷속 산호초와 고산지대 구상나무들이다. 기후위기는 불평등을 가중시키고, 지구의 약자들은 기후위기의 재난 앞에 더 큰 위협을 받고있다.

몇몇 백만장자들은 기후위기를 피할 그들만의 대피처를 막대한 돈을 들여 마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들의 시도가 성공할지도 만무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무수한 생물들은 이 행성, 지구 외에 갈 곳이 없다. 차오르는 바다로 인해 태평양의 타쿠섬이 잠기듯이, 높아지는 온도는 지구를 침몰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온실가스와 지구 생명들의 숨을 조여오고 있다. 올해 9월, 유엔에서는 기후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때에 맞춰 전 세계 시민들은 “기후행동(Climate Strike)”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9월 21일, 기후위기에 맞선 비상행동이 열린다. 기후를 위한 청소년들의 등교 거부 운동을 시작한 스웨덴의 17세 그레타 툰베리의 호소를 기억하자. “행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희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찾는 대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구라는 섬을 떠나서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글. 황인철(녹색연합 정책팀 팀장)

 

이 글은 녹색희망 268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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