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와 바람이 지나는 제주에서

2020.03.12 | 행사/교육/공지

제주 우도에서 성산포로 돌아오는 길에 남방큰돌고래를 기적처럼 만났다. 선장은 포구로 돌아오다 말고 배 시동을 껐다. 바다가 집인 남방큰돌고래가 먼저 지나가도록 바닷길을 양보한다. 일출봉 일몰의 아름다운 시공간, 그때 펼쳐진 얼떨떨한 풍경에 여행객은 ‘와, 와’ 하며 연신 감탄이다.

남방큰돌고래는 짧지 않은 시간을 나란히 오더니 방향을 돌려 우도 물골의 센 물살 속으로 스며든다. 일출봉 아래의 연산호 바다 숲은 도화돔, 주걱치, 자리돔의 안식처이자 태평양을 거슬러 온 등 푸른 물고기의 앞마당이고 푸른바다거북의 고향이다. 제주, 이곳은 우리나라 남방큰돌고래, 연산호, 푸른바다거북의 마지막 서식지이며, 물고기의 길이다.

사진 설명 : 배에 서서 바라보는 우도

성산 주민들이 집 앞마당이자 철새도래지인 하도리-종달리-오조리 습지와 성산읍 연안을 찾았다. 저어새, 매, 물수리, 노랑부리저어새 등 법적 보호종, 멸종위기종을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갈매기와 오리 떼도 먹이 활동을 위해 성산포 상공을 일시에 날아올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국토부가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검토의견에 ‘철새도래지 보전을 위한 노력’과 ‘철새도래지 등이 지정되지 않은 입지 대안’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항공기-조류 충돌’ 예방 대책도 없다고 했다. ‘새의 길’은 정부 보고서 어느 곳에도 없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멸종위기종 새들의 둥지이고 길이다.

제주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주먹 하나에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크기의 구멍인 ‘숨골’이 제법 많다. 오름과 곶자왈을 타고 흐른 빗물은 여기서 맑은 물로 정화된다. 곳곳의 숨골을 통해서 모인 빗물은 커다란 공간을 만들고 지하수를 차곡차곡 채운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보내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를 품는다. 숨쉬는 땅은 무 농사, 감귤 농사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제주 성산의 먹을거리는 아삭한 식감과 알싸한 단맛이 단연 으뜸으로 제주에서도 알아준다. 숨골과 땅속 보금자리를 통해 빗물과 지하수의 길이 뒤엉켜있다. 그 덕에 농작물이 훌쩍 자라고 사람도 살찐다.

제주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자연분야 3관왕을 차지한, 생명의 근원을 간직한 곳이다.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이다. 한라산-쇠소깍-섶섬-문섬-범섬은 생물권보전지역이며,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성산 일출봉은 한 덩어리로 세계자연유산이다. 10만 년에서 30만 년 전, 한라산 동쪽 거문오름에서 터진 용암은 선흘곶자왈과 만장굴, 김녕굴 등 용암동굴 지대를 만들었다. 오름과 동굴지대가 거미줄처럼 엮인 곳을 지나, 깊은 동굴을 지나, 성산 일출봉으로 이어지는 길. 대자연의 흐름은 땅의 길을 열었고 생명에 호흡을 넣었다. 성산에 봄이 오면 비바리뱀이 똬리를 틀고 맹꽁이는 장마철에 소리를 높인다.

사진 설명 : 파도의 물결, 해녀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 제주를 바란다.

자연은 쉽게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자연은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준다. 자연은 ‘스스로(自) 그러한(然)’ 섭리에 따라 생명의 집을 만들고, 생동의 길을 열었다. 성산 수산리 A씨는 제주섬 모양의 마당 정원을 만들고 새와 맹꽁이, 바람과 안개, 비와 바다, 오름과 숨골, 무와 감귤, 이웃 삼촌을 만났다. 성산 하도리 해녀들은 ‘나는 바다다, 나는 엄마다, 나는 소녀다, 나는 해녀이다’라고 노래했다. 매시간, 밤낮, 그믐과 보름, 4계절이 그러하였다.

성산 난산리 B씨는 저녁 뉴스를 통해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을 알아차렸다. 자기 집이 사업 예정지로 편입된 사실을 그렇게 알았다. 또 다른 뉴스는 ‘제주 관광객 2,000만 명 시대 임박’, ‘8개 쓰레기 처리장 수용력 초과와 필리핀 불법 수출’, ‘도두동 제주하수처리장 오・폐수 그대로 바다 방류’, ‘집값, 임대료, 물가 고공 상승’ 등의 제주 포화 기사를 내보냈다. ‘로빈새의 울음에서 한 왕조의 ‘몰락’을 예감한다는 어느 옛말이 떠오른다. 2020년 지금, 국토부는 총사업비 4~5조 원, 2025년 4,500만 명을 수용하기 위한 제2공항 건설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다시 묻는다. 나의 길을 내기 위해 공생의 길을 빼앗을 것인가.

글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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