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희망 나누기 생태체험 ‘자연아 놀자’

2005.10.11 | 행사/교육/공지

9월 30일 명수학교 (서울시 성북동소재 정신지체장애특수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자연아 놀자’ 생태체험은 녹색연합 2005년 종이안쓰는날(4월 4일) 캠페인 ‘나이테더하기 희망나누기’ – 종이고지서를 전자고지서로 전환하여 나무와 숲의 나이테를 더하고, 그 생명의 소중함과 생태적 감수성을 사회의 소외계층과 함께 나누고자하는 실천운동-으로 적립된 기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이날 내린 가을비가 무거웠음에도 하루 자연 나들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오고갔으며, 서로 간의 다름과 차이를 넘어서 생태 감수성을 나누었습니다. ‘자연아 놀자’ 생태 체험을 따뜻한 가슴으로 나누어주신 분들과 생태체험이 가능하도록 종이고지서를 전자고지서로 전환하는 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명수학교 친구들과 함께한 하루 자연나들이를 통해서 참가자 모두가 장애인생태체험이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음을 다시 한번 공감하였으며, 오늘의 생태체험이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아니하고 지속적인 관심으로 사회에 메아리되도록 하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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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아 놀자’ 생태체험 후기

자원활동가 이진희 님

우리가 타인을 향해 하는 걱정 중에 과연 얼만큼이 진정 타인을 위한 것일까? 정작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염려도,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을 두고 괜한 걱정을 하느라 앞서 포기하고, 멈추는 것은 또 얼만큼이나 될까?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은 졸음을 밀어내며 토닥토닥 빗소리가 어찌나 선명하게 들리던지. 며칠전부터 예보가 있긴 했지만 염려하는 마음중에도 설마하는 기대가 있었는가 보다. 제법 많이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한숨이 포옥~쉬어졌다. 어린 친구들인데…괜찮으려나…야외활동이 불가능할텐데…생태체험이 의미가 있으려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한 걱정들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었나 보다. 비가 오면 불편할텐데…비가 오면 사진이 잘 안나올텐데…하는 나만의 걱정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비가 얼마나 더 내리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운동장에 발도장을 이리저리 찍어보았다. 성북동 끝자락, 작은 언덕위의 명수학교는 꼭 작은 새둥지 같았다. 푸른 나무와 안개에 쌓여 들어앉은 모습도 그랬지만 노란 등교버스에서 쉴새없이 폴짝폴짝 뛰어내리는 아이들과 두팔벌려 환하게 아이들을 맞던 선생님의 모습이 더욱 그러했다.



생태체험에 함께 할 친구들과 짝꿍 선생님들이 둘씩 셋씩 손을 잡고 버스에 오르고, 비가 쉴새없이 내리는 가운데 우리를 태운 든든한 버스는 곤지암으로 향했다.
상림리 마을회관에 도착했을때, 버스에서 내리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반가이 맞아주셨던 문경용 선생님. 비온다고 밥 거르냐던 선생님의 든든한 말씀에 다들 근심이 조금은 씻기는 듯 하다.

마을회관에서 잠시 서로의 얼굴을 재차 확인하던 시간. 풍경사진과 웃으라면 웃고, 멈추라면 멈추던 전문모델(?!)들만 앞에 두고 사진을 찍던 내게 아이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장이라도 더 담아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셔터를 눌러보지만 신통치가 않다.

곧이어 점심시간. 어린친구들에게 손길이 더욱 필요할 때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서로를 챙기며 의젓하게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예뻤다.푸짐한 시골밥상과 맛난 사과로 배를 채우니 생태체험의 반은 끝낸듯 하다.  ^^*

생태학교로 이동해야 할 시간.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하늘은 우리를 배려할 마음이 전혀 없는듯이 보였다. 험한길은 아니었지만 비 때문에 무척 미끄러웠다. 빗줄기는 서로를 보듬는 손길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모양이다. 맑은 하늘아래였다면 그렇게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그렇게 서로의 발 닿는 곳에 마음을 쓰며 걸을 수 있었을까. 한 우산 아래 두세명씩 들어서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니 빗속에 피어있는 들꽃다발 같았다.

작은 입구로 들어선 숲속학교는 참 아늑하고 향기로웠다. 따뜻한 차로 몸을 덥힌 뒤 명상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비때문에 야외활동을 못하고 대신한 프로그램들이었지만 친구들은 충분히 느끼고 즐기는 듯 보였다.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참 놀랍고 신선했다. 나는 그림을 그린지 참 오래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막상 종이와 크레파스를 쥐어주면,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라 막막할 것만 같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제각기 다른 빛깔과 다른 그림을 쏟아내는 친구들…미술학원에서 배운 비슷비슷한 그림들만 보던 내겐 다들 근사하고 예쁘게 보였다. 비록 친구들이 그 그림속에 좋은 것만 풀어놓지는 않았겠지만… 아픈것도, 속상한 것도…내가 모르는 다른 것들도 있었겠지.
이제서야 아이들이 조금씩 웃는다. 손을 잡는 것이 익숙해지려고 한다.

아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선생님들도 잠깐의 여유를 가졌다. 하우스 안의 풀꽃들과, 향기로운 열매들, 그리고 강아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빗소리가 참 좋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잠깐의 뚝방길 산책으로 빗물에 손을 적시고, 야외활동의 아쉬움을 접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는 찐감자로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따뜻함을 뱃속 가득 채웠다. 먹으며, 젖은 몸을 말리며, 그렇게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엔, 비가 더욱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뜨끈한 수제비 한그릇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 본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이렇게 보니 새로운 것이 보인다. 처음 만날때부터 시간순으로 나열된 디지털 이미지. 처음엔 모두들 어색했다. 웃고 있었지만 눈을 마주치기 쉽지 않았고, 손을 잡고 있었지만 가슴까지 닿아있진 않았다. 약간의 어색함, 약간의 긴장감.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고 편안해진 사진속 모습들. 그건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정말 신기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본 기분이었다. 사람 사이에 익숙해진다는거. 친해진다는거. 그 비밀을 혼자 알아버린 기분이랄까.

사실, 친구들을 만나러 오며 가장 걱정한것은 비도 아니었고, 사진도 아니었다. 나와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나와 다른 친구들이 느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진이 내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친구들이 느낀 걸 고스란히 느꼈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어디서든, 누구와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습은 모두 같다. 내가 얼마나 빨리 바깥세상을 받아들이는지, 문제는 그 시간일 뿐이다.

친구들의 특별한 소풍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통도 계속되었으면 한다. 그 후에, 자연과 만나면 더 반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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