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정규 회원 – 분리를 넘어 연결로!

2020.06.11 | 행사/교육/공지

천문학을 전공했던 필자는 녹색연합에서 일하기 전 잠깐 노원우주학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우주 이야기’를 한다는 이정규 관장님을 만나기 위해 무턱대고 지원서를 쓴 것인데요. 대체 우주 이야기가 무엇이길래 그랬을까요? 창밖으로 새싹이 돋아나던 봄, 관장님을 다시 만나 삶과 우주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노원 우주학교에서 만난 이정규 관장님

Q. ‘우주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많이 하시잖아요. 우주 이야기가 뭔지, 독자들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A. 토마스 베리 신부님과 브라이언 스윔이라는 과학자가 함께 쓴 『우주 이야기』라는 책이 있어요. ‘우주 진화사가 바로 인간의 역사다’라는 내용인데요. 우리가 ‘인간의 역사’라고 하면 약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되었던 때, 또는 구석기 시대 즈음으로 보잖아요.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이라는 종이 생명이 진화해서 생겨났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럼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물었을 때 과학자들은 생명을 구성하는 것은 물질(원소)인데, 그 물질은 별로부터 왔다는 거예요. 그 별은 빅뱅에서 생겨난 입자들로부터 만들어졌고요.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우주 태초부터 지금까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여기에 바로 ‘연결의 세계관’이 숨어 있어요. 내가 단지 지구상에 몇십 년 살다 가는 존재가 아니라 사실은 장구한 우주 진화의 연속 선상에 있는 신성한 존재이고, 생태계 그물망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600만 년 거슬러 올라가면 침팬지와 친척이고, 5억 년 올라가면 지렁이와 친척이고 35억 년 올라가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친척이고요. 이렇게 자연과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지금의 생태계 파괴, 기후위기를 일으킨 시스템의 근간에는 ‘분리의 세계관’이 깔려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어 있고, 너와 내가 분리된 존재라는 것. 그래서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 인간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 그 여파가 다양한 위기의 형태로 지금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거죠. 이것을 되돌리려면 분리가 아닌 연결의 세계관이 필요한데, 바로 우주 이야기 속에 그런 연결, 생태적 세계관이 담겨 있어요.

Q. 저도 천문학을 공부했지만, 우주를 공부했다고 해서 모두가 이런 깨달음에 이르지는 않잖아요. 삶 속에서 어떤 계기를 통해 천문학과 생태적 세계관이 연결되었나요?

A. 저는 사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어요. 하지만 이걸 학문으로 공부하기보다는 삶 속에서 꾸준히 가져갈 이슈라고 생각했어요. 천문학을 하면서 환경운동을 하거나, 여러 이슈에 목소리 내는 방식으로요.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제가 천문학 연구를 계속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에요. 제가 박사학위를 취득하러 유학을 갔는데 4년 동안 박사 논문을 못 끝냈거든요(웃음). 현실적인 계기는 이렇지만 사실 천문학 안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천체, 천문 현상이 한 개의 ‘점’이라면 저는 이 점들을 쭉 연결해서 큰 그림으로 보았을 때,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게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그 이야기가 생태계의 위기 시대에 너무나 중요한 세계관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우주 이야기를 하는 걸 업으로 삼게 됐죠. 우주 이야기는 유학 나갈 때 처음 접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부터 다시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한동안 생태에 대한 관심과 천문학이 따로 놀다가, 15년 전 우주 이야기를 다시 읽고 그제야 두 관심사가 연결된 거죠. 제 삶이 뒤바뀐 순간이었어요.

Q. 생태, 생명에 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으셨던 건가요?

A. 이성적으로 깨어났던 건, 중학교 때 일본사람이 쓴 『하나뿐인 지구』라는 책을 보고 미나마타병, 이타이이타이병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예요. 등이 S자로 휘어진 물고기 사진, 사지가 비틀린 사람의 사진을 보고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죠. 당시는 잘살아 보세, 새마을 운동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소위 잘살아 보자는 발전이 빛을 좇아가는 거라면, 그러한 산업 발전 뒤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는 생명의 죽어감, 생태계 파괴가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어렸을 때 제가 살던 집이 흙담으로 지어진 기와집이었는데, 툇마루에 앉아 남쪽을 보고 있으면 서쪽에 오죽(검은 대나무)이 있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었어요. 해가 질 때면 새들이 정말 시끄럽게 거기로 날아드는데, 당시 제가 우리 언니한테 물었어요. “언니야, 쟤들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저렇게 시끄럽게 울어?”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어, 이제 해가 지니까 집에 가자고 가족들과 친구들이 서로 부르는 거야”라고 답을 해줬어요. 그래서 항상 대나무 숲을 보면서 ‘아 저곳이 새들의 집이구나, 저 안에 사는 애들은 자기들끼리 무슨 대화를 하며 지낼까?’, 이런 게 늘 궁금했어요.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떤 이유에선가 갑자기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엄청나게 밀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동물들을 먹어도 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일주일 동안 좋아하는 생선도 모두 물리치고 밥상에 올라온 채소만 먹다 일주일 만에 깨달음을 얻었죠. ‘채소도 생명인데’ 아, 그러면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거구나, 그게 동물의 형태든, 식물의 형태든. 그 때 내가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명에 대한 관심과 생각은 제게 늘 있었던 것 같아요.

Q. ‘생태적 영성’에 특히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공덕동의 아지트에서 생태심리연구소도 여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A. 제가 기후변화에 대해 처음 알게 된 때가 학부생 시절, 벌써 30년이 지났어요. 과학자들이 30년 넘게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잖아요. ‘왜 사람들이 바뀌지 않을까, 사람을 변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 하는 관심이 생겨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가진 깊은 수준의 무의식적인 믿음을 건드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우주 이야기를 통해 그걸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이대로 가면 6차 대멸종에 이르게 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요즘에는 우리가 지금 6차 대멸종기를 지나고 있다고 하잖아요. 우리 인간 때문에 지난 100년 동안 거대 포유류의 50%가 멸종됐어요. 이걸 단순히 숫자, 통계로 보는 게 아니라 가만히 생각하며 가슴으로 가져오면, 너무 슬프지 않아요? 저는 이게 너무 슬픈 거예요. 그런데 이 슬픔에 압도당하지 않고 이에 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과학자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그래서 생태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공덕동 아지트의 〈생태심리연구소〉에서 ‘생태 애도’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기후위기, 생물의 멸종으로 느끼는 슬픔과 불안을 우리가 충분히 직면하고 아픔을 느껴야 사랑에서 우러나는, 다른 생명을 구하며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Q. 기후위기, 멸종…. 이런 암울한 미래를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과 희망 사이를 갈팡질팡하는데요. 불안감, 죄책감, 무력감 사이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무게추 같은 말이 있을까요?

A. 저도 고민하는 지점인데요. 최근에 저에게 도움이 된 말은, 조안나 메이시라는 생태심리학자의 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절망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아파하는 이유는 내가 그 존재들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그 존재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도 않다는 거예요. 그 사실 자체에서 에너지를 얻어 행동하게 되면 좋겠다는 말씀이 저에게는 위로가 됐어요.

저에게 힘이 되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유하고 싶은데요. 제가 우울하고,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주저앉아 있던 시기에 4대강 사건이 터졌어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서 4대강 이슈를 이야기하는 단체에 찾아가 봤어요. 그때 알게 된 단체인 ‘새와 생명의 터’에서,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가 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서를 내셨더라고요. 그 보고서 영문판을 준비 중인데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게 너무 힘이 났죠. 그리고 어느 날 밤, 그 보고서를 번역하고 있는데, 이런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깜깜한 한밤중에 철새들이 날아가고 있는데, 제가 그 새들 옆을 같이 가면서 박수를 치는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게 그런 이미지로 저에게 다가왔어요. 그 이미지가 저에게는 두고두고 큰 힘이 돼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작아 보여도,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될 거란 확신이 필요할 것 같아요.

관장님이 쓰신 책 〈우주산책〉에서 더 자세하게 우주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인터뷰, 정리 이다예 녹색연합 정책팀 활동가

*녹색희망 271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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