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에세이] 바늘과 실로 기후변화 꿰매기

2020.06.12 | 행사/교육/공지

“지구는 내가 죽기 전에 기후 변화로 망할 거 같아.” 어느 늦은 밤 세 명의 친구가 오랜만에 모여 앉아 직접 만든 요리와 함께 기분 좋게 취해가던 중이었다. 이들은 예전에 같은 ‘환경 컨설팅’ 회사에 다니면서 알게 된 사이로, 이제는 각자의 길을 찾아 그 회사를 떠났지만 종종 만나는 술친구가 되었다. 나의 자조적인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우리는 전에 없던 말다툼을 했다. 그중 B는 계속 내게 물었다. “그럼 넌 희망도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탄소배출권 팀에서 주로 발전 사업자들과 일했다. 국내에서 가장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대형 석탄 화력 발전사업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배출권거래제에 대응하기 위해 컨설팅을 요청하였다. 정부는 과거 우리나라의 급속한 산업 성장과 국가번영을 함께 했던 석탄 증기 열차에서 좀처럼 내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국가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은 수립했지만,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 방안과 체계가 부재해, 전력 생산의 우선순위는 여전히 값싼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에 돌아갔다. 배출권 구매에 따른 비용 부담이 높은 업체, 즉 배출량이 큰 업체에는 한전이 구매 비용 일부를 정산해주기까지 하였다. 발전사로서는 늘 해오던 대로 대량의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데, 대용량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고 신재생 발전설비로 대체할 요인은 매우 낮다. 국가 배출량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전력 부문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업체들은 새로운 저탄소 사업에 투자하기보다, 모자란 배출권만 겨우겨우 구매하면서 무기력하게 3년을 견뎌냈다. 그 결과 2019년, 환경부는 지난 3년간의 제도 시범운영에 성과가 있었다는 발표와 함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하여 2017년에는 역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초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도입되었던 이 제도는, 단순히 과징금을 무는 기업 하나 없다는 사실을 성공적이라 정리한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1%를 차지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자발적으로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기로 한 국가,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세계의 나머지 부분은 어떨까? 1997년 지구 온난화에 대한 국제적 기후 결의에서 합의된 교토의정서의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로부터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이 차례로 빠져나가, 결과적으로 교토의정서를 비준한 국가 배출량 합계가 겨우 세계 배출량의 15%에 그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토의정서의 연장선인 파리협약에서도 미국은 기어코 탈퇴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또다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다. 벌써부터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돌아가서, 그러니까 굳이 대답하자면 그랬다. 나는 배출권거래제라는 제도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에 희망이 없다고 보았고, 과거로 퇴보하는 듯한 ‘자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책이 인기를 얻는 사회에서 각자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지하는 것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나의 꿈은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오존층에 난 구멍을 실과 바늘로 꿰매는 것이었는데, 지금이 딱 그 기분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바늘이 소용없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전 지구적 재난을 막을 수 없다면 난 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서 나는 일을 그만두고 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무엇을 공부해야 하지?

집들이가 파한 뒤로도 나와 B는 이따금 만났다. 마치 대한민국 독립을 도모하는 투사들처럼 환경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소중한 대화들은, 특히 정부 주도적으로 운영되는 전력산업의 꽉 막힌 틀에 갇혀있던 나의 시각을 깨워주었다. 시민들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되어 환경오염과 송전설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충남은 아시아 최초로 탈석탄 동맹에 가입했다. 그 외 많은 지자체도 해당 지역 에너지 계획을 수립할 때에, 에너지 협동조합이나 시민발전소 등 지역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형태의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제서야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일반 가정에 설치된 조그만 태양광 패널 하나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하나둘 모여 장차 핵발전소를, 또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쓸모없게, 그리고 결국 지구를 떠나게 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앞으로 도시는 점점 늘어나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도구들도 끊임없이 생산되어 전력 사용량은 훨씬 더 증가할 것이다. 어쩌면 태양광 패널로는 도무지 충족되지 않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비좁고 모든 것이 집약적으로 발달된 공간에 앞으로 어떤 기술이, 누구도 피해를 보거나 소외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적용되어 모두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 해결책이 기술 그 자체에 있을지,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있을지, 그도 아니면 시장경제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해결책을 찾아 떠나는 내 앞에 놓인 비포장 자갈밭 길 위에도 내게 다양한 시야와 안목을 나누어 줄 사람들이 곁에 있어 줄 거라는 것. 나의 나아갈 방향을 항상 조언하고 응원해 주는 주변의 이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지인의 권유로 녹색연합 회원이 된 이후로, 다정한 문체로 쓰여진 세심한 활동 내역과 다채로운 주제의 녹색희망을 받아보는 것은 매 계절 나의 즐거움이었다. 짧은 회원 기간 동안 설악 오색케이블카 중단, 사육곰 구출 등 쉽지 않아 보였던 사업들로부터 기쁜 소식이 속속 전해질 때면, 아- 변화는 가능한 일이구나, 하고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친구를 화나게 했던 나 자신에 대한 변명만 길었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녹색연합 회원인 B야, 보고 있니?) 나는 절대 지구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산천초목의 풍요로움을 회복하고 인간과 동물, 물고기와 풀벌레 모두 잔뜩 거느리고 오래오래 있어 주었으면 한다. 30살이 된 올해의 나는 실언을 하지 않고 조금 더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30세 땡 친다고 해서 미동도 없던 현명함의 수면이 갑자기 끓어오르지는 않겠지마는, 그래도 나의 불꽃에 열심히 땔감을 넣는 한 해가 되기를!

*녹색희망 271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이슬(녹색연합 회원)
몰랐던 것을 발견하기 위해,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 하기에 운동도 춤도 열심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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