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야생동물 서식지 보존운동의 방향은? –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2020.12.22 | 행사/교육/공지

[내부포럼]

우리는 공존할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동물 그리고 인간의 절멸 위기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의 권리를 넘어 모든 생명의 권리는 어떻게 지켜져야 할까요? 현장에서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고, 동물과 인간, 자연의 공존에 대해 고민해온 김산하 박사님과 함께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생물다양성과 동물과 인간의 공존의 중요성에 대해 짚어보았습니다. 


야생은 지금은 너무 멀지만 앞으로는 중요하게 다가올 키워드입니다. 왜 야생이 중요하냐면 자연이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살도록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멀게 느껴지지만 야생의 먼 거리를 이어줄 사람, 단체, 콘텐츠나 매체가 굉장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버거운 일이라도 야생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전면에 내세우시길 바랍니다. 코로나라는 시대적 당위가 조성됐기 때문에 눈치 보지 말고, 안 먹히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뻔뻔하게 내세우세요.”

1. 코로나 이후 한국사회는?

최전선에서 활동하시는 녹색연합 활동가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빈말이 아니고요.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중요한 주제에 대해 번아웃될 때까지, 게다가 박봉에 시달리면서 유난히 열심히 해주셨던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는 기승전결이 있는 설득이나 강연보다는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 같아 대화와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녹색연합에 코로나 TF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해요. 저도 이번에 코로나 터지면서 희망이 생겼어요. 이제 드디어 지구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사람들도 행동의 변화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고 기대했죠. 그런데 코로나 이후의 한국의 상황에 충격을 금치 못했어요. K-방역이 성공하고 나니까 한국은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배운 게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죠. 해외에서는 일반 사람과 업계에서도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변화가 꽤 보이거든요. 하지만 한국은 초반에 칼럼이 조금 나오기도 했지만 이러한 담론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 시민, 학계, 정부 기업 모두에서 ‘언제 끝나’라는 말만 하고 있어요. 

얼마 전 절멸 선언도 했지만 코로나19가 우연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잖아요. 데이비드 콰먼의 책 <Spillover,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서 보듯이, 2012년에 처음 나온 책이지만 이미 다 예견된 이야기에요. 천산갑이 중간숙주일 가능성이 높고, 박쥐에게 유래된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박쥐에서 니파도, 에볼라도 나왔기 때문에 하나도 놀라울 게 없고 천산갑은 중국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밀매된 동물이기도 하죠. 이 모든 것이 하나도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간 근본적인 변화는 하나도 없었어요.

여러분 중 각자의 가족에서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손들어보세요.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운동에 직업으로 투신한다는 것은 특이한 것이잖아요. 활동하면서 여러 변화가 있긴 했지만, 실체적인 한국의 모습은 여전히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걸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인터넷에서 비거니즘이 화제이잖아요. 하지만 사실 웬만한 식당에는 채식 메뉴조차 없죠. 선진국에서는 어떤 환상이 벌어지면 실체와 함께 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도 중대한 의사결정을 다루는 단위에서는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제가 세 가지로 한국의 국민성을 요약해봤는데, 하나는 연결입니다. 사돈에 사촌에 육촌까지 연결이 되고 먼 곳까지 연결을 잘 시킴에도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는 변화, 변화에 굉장히 열려 있어요. 슬로건이 Dynamic korea이죠. 변화에 빠르고 변화가 미덕이지만 친환경적인 트렌드로 빨리 바뀌지는 않아요. 세 번째로는 미래지향적이에요. 근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죠. 하지만 바로 직면한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둔감해요.

이렇듯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사안별, 문제별로 대응을 하게 되지만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지 않은 채 한국사회가 너무 오래 왔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표피적 대응만 하고 있죠. 근본적 대응으로 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NGO도 비슷하게 담론적인 이야기조차 못 하고 있어요.

또 하나, 우리나라는 민간 부분이 발달하지 않아서 학계와 NGO가 분리된 것이 큰 문제입니다. 민간 부분 펀딩이 적다 보니 생태, 환경 분야는 거의 모든 자금이 정부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업계 종사자가 생태와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연구와 실천(NGO)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정부 쪽 학자가 생태와 환경 쪽에 목소리 내지 않으니 진실의 영역이 호도되고 간극이 생기고 있죠.

2. 잊혀진 공존에 대한 감각

다시 코로나 이야기로 돌아와서, 코로나로 생긴 재밌는 상황 중에 사람들이 집에 숨어 있다 보니 동물들이 거리로 나왔었잖아요. 홍학 떼, 염소, 원숭이, 사슴이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튀어나왔죠. 인간이 없으니 자연이 회복이 된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동물이 사람의 영역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죠. 나올 동물이 없고 생물다양성 자체가 빈약하니까요. 

저는 우리나라의 야생동물의 베이스라인이 너무 낮아졌다고 생각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서식지 보존과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고 판을 다르게 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단 사람들이 공존에 대한 감 자체가 없습니다. 까치, 직박구리와의 공존인가? 맹꽁이가 나오는 하천이 공존인가? 공존이라는 말 자체를 아예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사실 해외에서는 우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동물까지도 대도시에 공존하는 곳이 많습니다. 인도 뭄바이에는 표범이 20-30마리 살고 있어요. 남아공에서는 비비원숭이가 주거침입을 하기도 하고, 런던의 경우엔 여우가 너무 많아요. 이렇게 세계에서 무서운 동물이 남아있는 이유는 누군가는 그들과 사는 것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 수준이 매우 후퇴해 있다는 거죠.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가? 저도 고민입니다만 일단은 단어가 실체를 가지는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언어의 세계부터 너무 오염을 시켜 놓다 보니 아무도 그것을 진지하게 듣지 않아요. 가령 ‘생태’는 완전히 난도질 된 단어예요. ‘생태공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사람들은 이제 ‘또 무엇을 만들려나’ 생각하죠. 환경영향평가 보고서가 얼마나 허상인지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거고요. 단어 자체가 공허해지고 아무 뜻이 없게 되는 거예요. 만약 코로나를 통해서 공존이라는 것이 실체를 가지고 의미를 가지려면 그전에 공존이 아닌 것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진짜로 아니었던 것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정부 정책에 대응하느라고 잘못된 예를 바로잡는 작업조차 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공생으로 다시 넘어오면, 도심공원이 사실은 사람들에게 공생을 알려주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공원은 개발 광풍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녹지임에도 가만두지 않죠. 땅을 포장하고 운동시설 설치는 물론이고, 밤에도 조명을 끄지 않고, 벌레가 꼬이지 않게 육종된 식물만 심습니다. 타감작용이 있는 소나무만 식재해서 하층 식생이 자랄 수 없게 하고요. 그래서 저도 한번은 제 주변에 생태공원을 조성한다길래 공무원과 싸우다가, 그럼 선생님은 무엇을 원하시냐 묻길래 저는 ‘아무것도 안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아무것도 안할 수가 있는가? 그건 아예 옵션이 아닌 거죠.

3. 새로운 키워드 – 재야생화, 활생

그러면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제가 최근에 번역한 책 중에 <활생>이라는 번역서가 있습니다. 최근에 영미권과 유럽에서는 rewilding, 재야생화가 화두가 되고 있어요. 그동안은 멸종위기종 보존, 서식지 보존 등 유실을 방지하자는 접근이었다면, 그보다 더 능동적인 접근으로 더 야생으로 만들겠다, 최상위 포식자를 다시 복원시키겠다는 것이에요. 대표적인 사례가 옐로우스톤의 늑대죠. 어떤 곳은 인간의 손이 닿기 전, 원시시대로까지 복원시키겠다고 선언한 곳도 있어요. 만 년 전, 홍적세 시대까지 복원시키겠다는 곳도 있고 러시아에서는 본격적으로 맘모스의 DNA를 추출해서 맘모스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있습니다. 

Rewilding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얻으면서 붐을 일으킨 책이 <Feral>이라는 책인데, 저는 재야생화라는 말보다 활생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활생은 자연이 제 갈 길을 알아서 가도록, 필요한 요소만 갖추어주고 물러나 있는 자세를 말하거든요. 활생이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문명적 대안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냥 지키고,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들을 살리는 보존사업은 사람들에게 이제 와닿지 않는 면이 있거든요. 전폭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컨셉이라 인기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저도 포럼이나 자리가 있으면 이런 것들을 제안해보려고 해요. 한발 물러선 자연보호 정책보다는 능동적으로 가고 싶어요. 

정리해보면, 현재 환경운동은 학계와의 연관성의 문제도 있고, 증상적 대응도 해야 하지만 더 나아가서 동시에 근본적인 이야기, 담론 제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야생동물과 관련해서는 기준점이 너무 낮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오염된 언어에 실체를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질문과 토론

  • 녹색 – 국내에 활생의 사례가 있을까요? 환경부가 하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라든지, 백두대관의 폐광산을 복원하여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이라든지…

김산하 – 한국에는 적합한 예시가 별로 없습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야생을 복원한다는 것보다는 멸종위기종 하나를 복원해보자고 시작된 것이죠. 산장이나 베이스캠프에서 곰이 나타나는 순간, 곰은 마취를 당하고 억류당해요. 서식지 내에서 곰의 야생적 활동에 대해 사람들이 감수하는 게 아니라 관리대상으로 보고 문제 취급하기만 합니다. 적어도 반달가슴곰의 핵심 서식지 내에서는 오히려 산장과 숙박, 취식은 불가한 조치가 필요한 것인데 말이죠.

게다가 개체군이 늘어나면 서식지가 넓어지고 분산되는 건 당연한데, 이것을 ‘이탈’로 취급해요. 그런 철학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활생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종복원을 한다는 뜻은 기본적으로 개체군을 복원한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확산, 증가에 관한 아무런 정책적, 철학적 대안이 없는 상황이죠. 

이건 인간의 사용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인데, 한국은 사람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취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어요. 이걸 어떻게 하면 거리를 두고 즐기는 쪽으로 유도를 할 수 없을까 고민이에요.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자연을 즐기되 비침해적으로 즐기는 문화를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동물축제반대축제를 했던 이유도 그런 것이었죠. 사람들은 자연과 교감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나 그것을 비침해적으로, 비착취적으로 할 수 있는 문화적, 생태적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 녹색 – 말씀하신 것처럼 활생은 좋은 개념이라 생각이 드는데,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재야생화를 이야기하는 건 괴리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이것이 사람들의 생활방식 변화와 어떻게 같이 갈 수 있을까요?

김산하 – 물론 그런 측면이 있지만 같은 것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생태공원 조성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우리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NGO에서도 생태공원에 개념 정립이 없는 상태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패러다임만 바꾸어도 운신의 폭이 넓어질 거예요. 예를 들어 양천구에 있는 실개천 생태공원은 강변이 모두 개발되고 풀은 골프장처럼 잘라놓은 곳이에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제가 싸우니까 ‘생태라는 단어에 너무 천착하지 마시고요’라고 구청에서 답변하더라고요. 생태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그런데 만약 서울시가 그동안은 생태공원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야생생태공원’의 시대다, 라고 선언을 했다고 합시다. 그래서 일부러 나무를 우거지게 놔두고, 야행성 동물들을 위해 일부러 조명을 끄는 거죠. 이렇게 구체적으로 접근하면서 ‘야생은 원래 이런 거고 이게 재밌는 거야’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면 어떨까요? 이런 식으로 도심공원부터 개념을 정착시킨다면 강원도에서는 언젠가는 꽤 무서운 놈까지 살 수 있을 거예요. 호랑이까지 복원은 어렵지만 표범은 괜찮지 않을까 한국범보존기금은 생각하고 있어요.

  • 녹색 – 야생동물 활동을 하다 보면 왜 생물다양성이 중요하냐는 질문을 받아요. 예를 드셨듯이 반달가슴곰은 한 번의 인사사고만 나면 종복원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없어질 거라 생각해요. 야생동물이 없어도 불편함에 전혀 없는데 왜 한반도에 곰과 호랑이가 뛰어놀아야 하는가 사람들은 질문하거든요. 그런 근본적인 것들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김산하 – 그것이 우리가 탐구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생물다양성이 왜 필요하냐는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전 세계가 아직도 대답을 못 하고 있어요. 너무 당연한 질문이거든요. 하지만 윤리적, 생물적인 여러 가치와 이유를 열거한다고 해도 이것으로 사람들이 설득될까요?

루이 암스트롱이 ‘누가 그걸 물어봐야 한다면 너는 그걸 영원히 모를거야’라고 말했죠. 너무 근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어렵습니다. 하지만 코로나와 같은 가까운 답들은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이 코로나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전파를 막을 수 있어요. 실제로 생물다양성이 가진 숙주희석효과, 한 숙주가 있을 때엔 그 숙주에만 적응을 잘하면 바이러스가 확 퍼질 수 있지만 여러 숙주가 있으면 적합도가 제각각이다 보니 바이러스가 퍼져나가기 어렵습니다. 이 현상이 생태계에서 얼마나 보편적으로 일어나는가에 대한 학계의 논쟁이 있긴 하지만요. 이런 이야기는 무수히 많아요. 멧돼지나 메뚜기 같은 한 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 boom and burst를 막는 것도 생물다양성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서구 합리적이고 기능주의적으로 답변함으로써 같은 레벨의 기능적 경제논리에 부딪히게 된다고 생각해요. 많은 학자들이 갯벌에 값을 매기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값을 매긴 순간 산출비교에서 지면 끝나는 거거든요. 그 논리를 하면서도 근원적인, 본원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태문화적 감수성에 대한 교육을 많이 해야 하고요.

  • 녹색 – 마지막으로 녹색연합에 바라는 점이 있으실까요?

김산하 – 케이블카 싸움 때 녹색연합이 전략적으로 산양을 내걸었지만, 케이블카 문제의 핵심은 자연보호구역이거든요. 여기는 정말 천연자원이고 정말 보호해야 한다는 레이블을 건 곳이 설악산이죠. 그조차도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저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전략적으로는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해야겠지만 여전히 논리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들이 원하는 논리구조와 법적인 싸움에 치중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이런 곳에는 정말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해요.

아시다시피 녹색연합뿐만 아니라 환경단체들이 오랫동안 정부 정책에 대응하는데 치중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대국민적인 설득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환경이슈가 한사람, 한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생태적인 시민의 삶을 설득하는 활동을 더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더는 대리하지 말고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환경운동은 국민들을 대신한다는 식으로 많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국민들은 환경운동가에게 이러이러한 역할을 해달라고 위탁을 하고, 후원도 하면서 그 역할을 활동가들이 대신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건 대의 민주정치와 다른 거거든요. 지금은 의탁이 아니라 국민도 같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에요. 

의탁의 임무를 충실히 따를 게 아니라 국민들한테 오히려 의탁만 하지 말고 함께 의견을 피력해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환경단체 어깨에 많은 것이 올라가 있는 상황인데 국민들은 환경단체가 어깨에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거든요. 이것은 절대로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이를 이끄는 역할을 좀 더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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