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친구 참가후기①] 눈을 감지 않는다고 새가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21.06.11 | 행사/교육/공지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핑 돌도록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적이 다들 한 번 쯤 있을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의 높이를 고려하지 못했다거나, 전방을 주시하지 않은 채 길을 걷다가 예상치 못한 구조물을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는 한다. 혹은 투명한 유리를 옮기는 사람들 사이를 뛰어가려다 유리에 부딪쳐 쓰러지는 장면을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을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이 잠깐 고통스럽거나, 심할 때는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정도의 상황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생명체가 있다. 하늘을 누비는 자유로운 영혼, 새. 대한민국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이 2018년에 조사한 바로는 국내에서만 연간 약 800만 마리의 새가 투명창에 충돌해 죽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숫자가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인간이 1년 동안 눈을 감았다가 뜨는 횟수가 대략 800만번이니, 비교가 될 것이다.

부산은 지명처럼 산이 많은데다 한국전쟁 시기에 수많은 산을 깎아 주거지를 만들었다 보니, 많은 학교가 산등성이에 있다. 그런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간혹 길 잃은 새가 학교 복도에서 푸드덕 날아다니고 그러다가 창문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장면을 누군가는 즐거워하고, 누군가는 무서워하며, 누군가는 측은해한다. 창문을 최대한 열어놓으며 부디 열린 창문을 찾아서 날아가길 바라지만, 새는 어김없이 바로 옆의 유리창에 부딪히고는 힘없이 떨어진다. 결국에는 지쳐서 도망치지 못하는 새를 손으로 잡아서는 열린 창가에 놓아주면, 잠시 쉬었다가 날아가고는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애달파 하고, 새를 쫓아다니며 걱정하거나, 수업을 들어가야 할 때는 영선 담당 주무관님께 전화를 드리지만, 어느 것도 새의 고난을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고민도 그때뿐, 삶의 수많은 걱정과 고민에 휩쓸려 살던 어느 날, <녹색연합>에서 실시하는 「새를 살리는 조류충돌 저감 ‘새친구’」 캠페인을 알게 되었다. 새 충돌이 내가 보았던 새의 고난과 정확히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직접 배우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 같아서 캠페인을 신청했다.

직접 스티커를 붙이러 가기 전,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캠페인 참가자들은 ‘네이처링’이라는 자연 관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전국의 ‘새 충돌’에 대한 현황 조사를 하는데, 이러한 임무를 맡고서 세상을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 것이다. 사실 한 건도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걸어서 출근하는 아침 출근길에, 번화가인데다 가로수를 제외하면 인공물 투성이인 ‘하단 오거리’의 어느 상가 앞에 겉보기엔 멀쩡한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이었다. 배운 대로 사진을 이리저리 찍고, 새의 사체를 들어서 한쪽 구석에 있는 화단에 묻듯이 옮겨놓았다. 마음이 착잡하고 안쓰럽고 슬펐다. 나중에 알게 된 그 새의 이름은 되지빠귀였다.

그리고 6월 5일이 임박했다. 사실 캠페인을 신청했을 당시엔 내가 사는 부산에서 ‘조류 충돌 저감 스티커’를 직접 붙이는 활동을 하게 될 장소까지의 거리 감각이 없었다. 직선거리로 약 300km, 차량으로 가게 되면 약 4시간이 소요되는 400km의 거리. 거기다가 내 차는 전기차라 분명 중간 어디쯤에서 충전도 해야 하니 실제 시간은 더 걸릴 터였다. 진지하게 포기하는 것을 고민했는데, 일전에 2시간 동안 화상으로 교육을 들었던 게 너무 아까웠다. ‘그래, 전날에 올라가서 하룻밤 자고 가면 되겠지.’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충청남도 서산시에 가게 되었다.

2021년 6월 5일(환경의 날), 아침 일찍부터 서울 압구정역 인근 주차장의 버스에서 활동을 함께할 분들과 만나게 되었다. 두 시간 반 가까이 걸려 서울에서 충청남도 서산시까지 갔는데, 뭘 했다고 가자마자 점심부터 먹었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두부와 갖은 재료가 뒤섞인 비빔밥을 먹으며, 경기도 용인에서 직접 차를 몰고 찾아오신 분과 담소를 나눴다. ‘정말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구나. 맛있는 밥도 얻어먹었으니 열심히 해야겠다.’ 이때는 미처 몰랐다. 배부터 든든히 채워주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한가득 담고 온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은 649번 지방도가 가로지르는 드넓은 평원이다. 삐뚤빼뚤한 논에는 모내기가 끝난 후 한창 쑥쑥 자라는 벼가 마치 아이의 까까머리처럼 들쑥날쑥했다. 논과 논 사이의 작은 길에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바구니에 담긴 녹색의 무언가를 다듬는 곳. 그러한 지극히 평화로운 삶의 풍경을 채우는 음악은 다름 아닌 온갖 종류의 새 소리였다. 새소리는 산에서나 듣는 것으로 여겼던 경상도 인간에게 지평선이 보일 만큼 전후좌우 어디로든 끝없는 평야와 지나가는 차들이 없을 때마다 들리는 새들의 노래는 그의 울퉁불퉁 모난 마음을 한없이 펼쳐주는 자연의 손길 같았다.

그곳에 서 보니, 대한민국의 많은 장소 중에서도 왜 하필 이 곳인지가 대번에 이해되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당신은 이제부터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평원을 자유로이 날며, 때로는 내리꽂듯 먹이를 낚아채기도 하는 새이다. 인간이 전심전력으로 달려도 따라잡지 못할 쏜살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세상의 모든 바람과 자유를 만끽하던 당신은 날아가는 속도와 힘 그대로 투명한 방음벽에 부딪힌다. 그것은 곧 세상의 종말이다.

그 날은 바람도 선선하고, 구름도 적당해서 야외에서 일하기엔 정말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약 4시간에 걸쳐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은 크게 ‘투명 방음벽 씻고 닦기’과 ‘유리벽의 위쪽과 아래쪽에 가로 10cm 간격의 점 찍기’, 그리고 ‘위 아래 점을 수직으로 연결하며 조류 충돌 저감 스티커 붙이기’로 구분되었다. 나는 충남 천안에서 온 분과 한 조가 되어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높은 곳에 매달려 무서워하기도 하고, 노동요도 듣기도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힘들긴 했지만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테이프 형식의 스티커를 붙였다가, 테이프를 떼어내면 스티커만 붙어있는 모습은 묘한 희열감을 느끼게 하였다. 물론 중간중간 유리창에 붙지 않고 테이프에 붙은 채로 떨어지는 스티커와 씨름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지런히 붙은 네모난 스티커들로 가득한 유리창은 가슴 벅찬 성취감을 선사했다. 가끔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시고 덥고 땀이 나며 힘들기도 했지만, 작업 중간에 나눠 먹은 수박이 정말 달콤하고 시원해서 그 고단함을 눈 녹듯이 사라지게 해주었다.

고단한 노동을 끝마치고 버스 안에서 비몽사몽 서울로 돌아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철이 들고, 운전을 하게 된 지금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에는 고속도로만이 아니라 수많은 지방도가 생겼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생기고 있다. 어릴 때 쓰러진 벼를 세우러 아버지와 함께 가던 경주의 어느 산골짜기도, 부모님이 귀농한 언양의 시골 마을도, 옛날이라면 분명 구불구불한 1차선 편도 길을 느릿느릿 운전해야 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고속도로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쭉 뻗은 길을 느긋하게 운전하기만 하면 도착할 수 있다. 왜 이렇게까지 도로가 많은 걸까? 이렇게까지 필요할까? 모세혈관 같은 이 수많은 도로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나.

지구는 죽어가고 있다. 자연사하는 게 아니라 살해 당하는 중이다. 이런 현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먹고 먹히는 자연의 섭리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류의 육식 행위가 아니라 인류의 과포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들이 채식하는 삶이 모이는 것보다 인류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과욕하지 않으며, 쇠락하는 데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우리 각자에게 죄책감을 심는 것보다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기업에 법적 책임과 윤리적 비난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는 공급이 있기 때문에 수요가 생겨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득, 인류 멸망에 대한 간절한 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지구 상의 인류가 한 명, 두 명 육식을 끊고 채식을 해나가는 것이, 오늘 내가 직접 새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인 것과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2021년 6월 5일 하루가, 우리가 붙인 스티커 몇 개가, 다만 작은 생명 하나라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바꾸게 될 것이다.

글 | 녹색연합 회원&새:친구 4기 류기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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