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우리에게 물이요, 식량이요, 생명이라오!

2010.05.06 | 행사/교육/공지

1995년 4월 5일 제50주년 식목일 날 아침,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마을에는 분홍빛으로 곱게 피어나는 진달래꽃 봉우리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오늘은 골프장 사업주들이 우거진 숲을 갈아엎어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산마루에 녹색연합 회원과 주민들이 함께 2천여 그루 ‘생명나무’를 심는 날이다.

“유세차, 을해년 4월초 닷새 식목일을 맞아/이선리에 사는 박영규로 제주하고 감히 고하나이다/원적산, 앵자산 조상대대로 수만 년을 굽어보며/우리를 감싸 안아 주었건만/주민은 무지하고/행정당국은 분별없고/사업주는 이익만 추구하는 금전만능의 세태가 되어/우리면내에는 골프장 사업승인 남발로/수려하던 산림을 마구잡이로 훼손하여 몰골이 험상하였는데도/우둔한 주민들이 늦게나마 다가올 재앙을 두려워하여/녹색연합의 덕을 빌고/언론의 힘을 더하여/전 주민이 한마음으로 우리 산천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뜻으로/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결연하게 고사문을 읽어 내려가는 이 마을의 박영규 골프장 대책위원장의 그 순한 눈가가 젖어든다.

우리는 이 마을에 200만평 규모 4개의 골프장이 건설되면, 산림훼손은 물론 주민의 삶과 농업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골프장 건설부지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현재 녹색사회연구소(당시 배달환경연구소) 소장이신 이경재 서울시립대 교수, 배달환경연구소 이인현 부소장, 인천 도시생태연구소 박병상 박사 등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조사한 결과, 개발이 불가능한 녹지자연도 8등급지역이 50% 이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야말로 환경영향평가는 엉터리로 작성되어 골프장 건설허가를 해 주는 면죄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89년「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골프장은 관광, 사치시설에서 체육시설이 되어 골프 대중화정책의 길을 본격 열어놓았다. 6공화국 들어 골프장 무더기 건설허가가 나고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특혜의혹과 환경영향평가 조작사례, 골프장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이른바 ‘골프공화국’에 힘겹게 저항해야 하는 민초들은 녹색연합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구했고, 전국에서 작은 힘과 뜻이 모여 연대활동을 시작하였다. 91년 10월엔 전국의 환경단체, 지역대책위원회가 골프장 건설에 따른 대규모 산림과 생태계 파괴, 농약피해 등 심각한 환경문제를 청원이유로 ‘골프대중화정책 철회를 위한 관계법률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환경영향평가서의 부실을 찾아내고,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맹독성 농약의 문제를 조사하였다. 95년 4월 29일 탑골공원에 전국의 골프장 피해 주민들이 참석하여 국내에선 처음으로 ‘세계 골프 없는 날’ 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전국에서 만난 주민들과 함께 수없이 마을집회를 열고, 그날은 여지없이 동네잔치 날이 되어 떡과 막걸리, 사물놀이로 한바탕 신명이 났다. 그동안 주민들은 장지오노 원작의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을 함께 나누어 보았고, 인도 원주민 여성들이 벌인 나무 껴안기 ‘칩코운동’을 배웠다. 그리고 주민들은 정부와 골프장 사업주에게 ‘벌목꾼이여, 숲은 우리에게 물이요, 식량이요, 생명이라오!’라며 생명을 품은 어미의 마음으로 골프장 반대를 외치곤 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우리의 강산은 골프장으로 개발되어 현재 전 국토의 3%에 해당하는 면적에 280여개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바뀌어도 골프장 개발은 ‘골프대중화’, ‘경기부양과 지역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골프장 건설 규제완화와 감세정책 덕으로 우후죽순 성장가도를 달리며 주민의 삶터와 가슴에 시커먼 구멍을 내고 있다. 참여정부시절에도 우리 국토는 개발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2004년 11월 전국의 110여개 환경단체는 <환경비상시국회의>를 결성, 골프장 진흥정책 등 참여정부 개발주의에 저항하였다. 현 정부의 ‘친기업 성장주의’ 아래서 골프장 규제는 막힘없이 풀려버렸다. 골프장이 체육시설로서 도시기반시설이라는 이유로 주민은 평생 살아온 고향과 토지를 강제로 수용당하고 있다. 지난 20년 정부가 골프대중화를 밀어붙이는 동안, 수많은 주민은 골프장에 자신의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빼앗겼다.

법정스님이 입적하시면서 우리 사회에 남기고 가신 <무소유>를 다시 보면서 “‘골프는 인간의 죄를 벌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칼비니스트들이 창조해 낸 전염병’이라고 한 말을 상기해 봄직하다. 오늘 우리 현실은 개인의 기본권이라고 할지라도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유보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수계층만이 즐기는 취미는 사회적 계층의식을 심화시켜 마침내 국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바람직한 취미라면 나만이 즐기기보다 고결한 인품을 키우고 생의 의미를 깊게 하여,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고 하신 글이 골프장을 아직도 성장과 욕망의 도구로 일삼는 이들에게 깨우침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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