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요리사에 도전하다

2006.04.10 | 행사/교육/공지

지난 해 녹색연합이 펴낸 친환경요리책 [소박한 밥상]에 이어 두 번째 요리책을 녹색연합과 녹색생활 소모임 ‘옛사름’이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여러분께 선보일 두 번째 요리책 기대해 주세요.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름을 타고 나서 무엇이든 복잡하고 귀찮으면 안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런 나에게 ‘친 환경적으로 살기’라는 과제는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하는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부들의 관심사인 먹거리 문제는 심각했다. 밖에서 먹는 먹거리들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것이 대부분이고 가까운 수퍼나 마트에서 사 먹는 식품들은 온갖 첨가물의 범벅이라 도대체가 먹을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났는데, 대안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전이 확보 될 때 까지 먹거리만은 내 손으로 직접 해 먹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생협을 통해 무농약이나 유기농 제품을 구입하지만 대부분은 가공 되지 않은 것을 선택하다 보니 결국 귀차니즘의 대가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딱한 처지가 된 것이다.



헬렌 니어링의 책에서 지적했지만 가급적 불을 사용하지 않고 요리하지 않는 듯이 요리하는 것이 소박한 밥상이라고 했다. 그 부분은 매우 동감 되었지만 그러기엔 식구들의 입맛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잘 못된 입맛에 길들여져 있었다. 한 마디로 맛이 확보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동안 직장 생활을 핑계로 요리하고는 담을 쌓고 살다 이제 새삼스럽게 요리사로 변신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러던 차에 2005년 녹색연합에서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이라는 요리책이 나왔다. 공모를 통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요리를 비롯해, 손이 덜 가는 요리법들, 친환경 팁까지 망라된 내 입맛에 딱 맞는 요리책이었다. 책 중에 가장 인기 메뉴를 보면 양파를 잘라서 기름 두르지 않은 팬에서 익혀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 요리인가? 요리의 대가가 보면 그게 무슨 요리냐 하겠지만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이 보다 좋을 수 없는 것이다.

아이 간식 지킴이 단으로 출발해 옛사름이라는 주부 모임을 하면서 여러 가지 환경 문제도 공부했지만 특히 먹거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옛사름을 도와주는 녹색연합의 신근정 간사님이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2’를 기획하는데 옛사름이 주도하여 맡아 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고, 요리 선정과 시연 부분에 참가가 결정 되었다. 나를 아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요리책 작업에 참여한다고 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사람이 오기라는 것이 발동 되는 순간이 이런 것이리라. 온갖 화려한 재료와 소스들로 무장한 멋진 요리는 만들 수 없지만 정말 잘 먹고 잘 살기위한 요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얘기가 딱 들어 맞는 것 같다.

요리의 선정 작업부터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리마다 레시피를 꼼꼼히 살피고 보기 좋게 번호를 매겨 수정 작업을 하고 각 요리에 점수를 주어 수록 요리를 선정하고… 지난한 작업들이 예정일을 넘기며 한달 넘게 진행되었다. 출판을 맡게 된 북센스의 송주영님까지 같이 참가해 사진 작업을 담당하신단다. 책에 수록 될 레시피는 130여가지, 사진 촬영을 위한 요리 시연은 하루에 15가지 내외가 될거라 예상했다. 요리 시연에 참가할 옛사름 회원은 모두 4명으로 결정 되었고 장소도 편의상 ‘우리집’으로 정하게 되었다. 집 거실은 촬영 무대로 꾸며졌고, 요리 시연을 위한 온갖 도구들이 부엌과 거실, 빈방에 좍 깔렸다. 공방에서 빌려 온 예쁜 그릇들은 깨질새라 조심해야했지만 눈이 즐거웠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작업은 우리 옛사름 회원들의 능력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본인이 맡은 요리를 척척 해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리버리한 면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 할 수밖에 없다. 한 자리에서 요리를 완성 시키는 것이 아니라 요리 과정을 수시로 촬영하며 완성해야 하므로 사진 촬영을 잊기도 하고, 대충대충 요리에 길들여진 것을 일일이 분량을 재가며 요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지라 재량이 잘 못 되어 요리를 망치기도 했다.

거의 매일 장을 봐야하는데 꼭 빠뜨린 것이 있어 다시 사러 가는 수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잠시만 그럴 뿐 이내 익숙해지자 레시피의 분량을 고쳐가며 하나 둘 완성해 갔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목표량을 초과하며 하루에 20가지가 넘는 요리를 완성 시켜내자 사진사가 견뎌내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10여일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한 시연일이 단 8일 만에 끝나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하루를 마무리 할 때쯤이면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지지만 또 다시 내일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만들어진 요리를  맛보는 것인데 점심시간이 바로 시식 시간이라 거기서 품평회를 하는 것이다. 레시피 상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음식의 의외로 맛있거나, 실제 해 보니 잘 안 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성공적이라 다행이었다.  떡 요리를 하면서 ‘예술’이라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기도 했는데 결과는 책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4계절 요리를 담고 싶었는데 긴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관계로 재료를 구하지 못해 싣지 못한 요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시연이 끝나고 출판사에서 편집 과정을 거쳐 책이 세상에 나올 일만 남은 것 같다. 힘든 요리 과정에 우리 옛사름 회원들이 보여준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에 감동했고, 전체 진행을 맡아 작업을 해주신 신근정 간사님, 혼자 푸드 스타일리스트까지 겸하며 사진 촬영에 임해준, 송주영님, 모두모두 너무 대단하고 장하십니다. 좋은 책으로 만들어져 나와 친환경 먹거리로 고민하는 주부들의 도우미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출산을 앞 둔 산모처럼 두근두근하는  가슴으로 그 날을 기다려 본다.

글 : 옛사름 백수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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