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도시는 재난에 안전한가?

2010.10.02 | 행사/교육/공지

내가 사는 도시는 재난에 안전한가?

– 폭설과 태풍, 폭우에 무기력한 ‘기후보호도시’ 서울 –

모두가 풍요로워야 할 명절인 추석에 서울이 물바다가 되었다. 서울·인천·경기 등 중부지방에 200㎜가 넘는 폭우가 내려 1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가 물에 잠겨 교통이 마비되고, 강서구와 신월동 일대 가옥이 침수됐다. 국민들은 뉴스 속보를 들으면서 ‘아무리 103년 만의 폭우라고는 하지만 서울의 자연재해 대비 시스템이 저렇게 허술할까?’하며 안타까워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9월 14일 밤, 분당의 상가 신축현장에서 지하 20미터 터파기를 한 공사 현장이 무너져 인근 도로까지 땅속으로 꺼졌다. 도로위로 차나 사람이 지나갔으면 아찔했을 순간이다. 잦은 비로 지반이 약해져 무너져 내린 것이라 한다. 8월 한 달 동안 서울에 0.1㎜ 이상 비가 내린 날짜 수는 24일이나 됐다고 한다. 기상이변이 심상치 않다. 내가 사는 도시는 이렇게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재해와 피해에 잘 대비하고 있을까?

자연재해에 앞에 도시는 위험지대

9월 2일, 태풍 곤파스가 기상청 예상보다 6시간이나 빨리 상륙해 4시간 15분 만에 수도권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 사람을 쓰러뜨릴 정도의 강풍에 서울시 가로수 8000그루를 포함 전국적으로는 25만 그루가 쓰러졌다. 정전으로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고, 교통대란이 초래됐다. 성남시청 지붕과 인천 문학경기장 지붕이 날아갔다는 걸 보면, 강풍에 대한 고려 없이 건축물이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태풍 피해 중에는 가로수에 깔리거나 갑자기 날아온 간판이나 기왓장에 맞아 애꿎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 하소연 할 데 없는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러고 보면 도심을 걷다 하늘을 쳐다보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간판과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전선줄을 볼 때 위험하다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물 부착 시설물에 대한 규제가 없다보니 관리가 허술해, 각종 재해에 무방비 상태라고 한다. 곤파스가 불어 닥쳤을 때, 출근 중이던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시설물에 아찔한 경험을 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태풍 경보를 발령해 출근과 등교 시간을 조정했어야 했다. 지자체와 정부가 우왕좌왕 하는 사이 시민들은 위험에 노출되었다.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예보와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의 물난리도 배수시설 미비로 발생한 ‘인재’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겨레> 신문에 따르면 서울시가 3년 전 발표한 빗물펌프장 증설공사 등 수방대책 공사 예산이 축소되면서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오세훈 시장의 역점사업인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디자인서울에는 4년간 각각 4160억 원과 3000억 원이 투입돼 대비된다는 것이다. 2009년 제3차 C40 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면서 기후보호도시를 천명했던 서울이 무색해진다. C40 회의 내용에는 분명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논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1월 폭설에도, 9월 태풍 곤파스와 추석 기간 기습폭우에도 서울은 속수무책이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적응 정책이 형편없는 것이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기후변화 적응대책

우리가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 하더라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가 대기권에 남아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구의 온도는 일정정도 상승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해 ‘적응’을 해야 한다. ‘적응’이란 새로운 기상현상에 맞춰 사회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다. 예방조치로 폭염이나 기상재해와 같은 자연재해에 관한 조기경보시스템을 갖추고, 기후변화에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전예방 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 기후변화와 연관된 질병에 대해 연구하고, 대비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해안가 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작황의 변화에 대비해 적합한 농작물의 종자를 확보하고 경작방법을 바꾸는 것, 강력한 태풍에 대비해 대피 시스템을 갖추고 하수도를 정비하는 것 등이 모두 기후변화 적응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 적응은 국가차원은 물론 피해가 직접 발생하는 지자체 차원에서도 갖춰야 할 중요한 정책이다.

국가 차원에서 재난 대비 시스템을 이야기 할 때, 올해 아이티와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이티 지진에서는 25만여 채의 가옥이 파손되고 2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나 뉴질랜드에서는 10만 여 채의 가옥과 500여개의 건물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미국 지진 전문가 피터 야네프는 이에 두고 “빈곤이 사람들을 죽였다”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티로서는 엄격한 건축 기준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할 처지”라고 지적했다. 재난에 대비한 건축기준과 사회기반시설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꼭 경제력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다. 2004년 9월 강력한 허리케인이 중·남아메리카에 연달아 불어 닥쳤을 때, 아이티에서는 홍수로 3,000명이 익사했지만 쿠바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쿠바도 아이티만큼 가난한 나라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재난대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가 피해를 입을 만한 지역을 미리 점검하고, 배수망을 정비하고, 노약자들을 미리 대피시키는 등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것은 자연재해에 대한 피해는 빈부의 차이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가 재난에 얼마나 잘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공동체적 연대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6개 광역지자체 기후변화 적응역량은?

9월 12일,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지역경쟁력센터와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는 16개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영향과 적응역량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강원도가 산불, 호우, 병충해 등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과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전남, 경남, 전북, 충남 순이었다. 적응대책이 우수한 지방자치단체는 울산, 강원, 전남이었다. 경남은 기후변화 영향 순위에서 3위였지만 적응역량은 최하위였다.

폭염일수는 대구가, 열대야 일수는 제주도, 태풍피해액도 제주도가 가장 많았다. 강원도는 호우 피해가, 전남은 대설피해액이 많았다. 해수면 상승이 심한 제주, 경남, 부산 등이 오히려 ‘해안 인접지역 개발 규제’나 연안침식 방지 대책, 연안지역 거주민 및 시설물 이주계획 대책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울산시는 재생에너지 생산 비중, 친환경 건축물 인증 현황 등 적응 지표에서 최하위권 이었다. 기후변화 관련 전염병 발병률에서 1위를 차지한 충남은 건강 부문 적응역량 평가에서는 하위권이었다. 대구시는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폭염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지역이지만 적응 대책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기후변화 관련해 지역 조사를 다니다보면 강원도와 제주도 같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 준비도 많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원도는 공무원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기후변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영향을 제일 많이 받고, 적응역량은 2위로 나타나 우수해 보인다. 제주도는 전남에서 귤과 한라봉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농업분야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현재 망고를 비롯해 구아바, 용과 등 열대과일 재배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도 열대과수 재배 농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법적 근거를 마련해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수립한 지자체는 강원과 전북뿐인데, 지자체들이 이번 조사 결과를 꼼꼼히 검토해 기후변화 적응역량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적응 정책 펼쳐야

도시는 여러 가지 기상재난 중에서도 폭염에 대비해야 한다. 2003년 유럽을 덮친 폭염으로 35,000명이 생명을 잃었다. 노인층과 도시 거주자들 사이에서 사망률이 높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이번 여름 총 455명이 폭염으로 인해 응급진료를 받았고, 9명이 사망했다. 지난 8월 성균관대학교 사회의학교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하자작업장학교는 폭염이 서울시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미치는 건강영향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에 있는 쪽방 촌에 살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19가구 20명을 측정하였다. 보고서 결과를 보면 ‘무더위 쉼터’의 경우 고령인구보다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었고, 폭염이 발생했을 때에는 방문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것은 폭염대책이 계층별, 지역별로 차별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대도시의 폭염대책으로 취약계층 방문건강 프로그램, 무더위 휴식시간제, 무더위 쉼터 운영 확대 등을 시행해볼 만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은 단순히 자연재해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 건강부터 산업, 생태계, 수자원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 위기에 우리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힘이 든다. 농사일은 망치기 일쑤이고, 당장 비가 많이 오면 노점상도 공사장에서 하루하루 일하는 사람들은 허탕 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 재난 대비 정책만 세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종합적인 적응 정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사회복지 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작업장에서도 기후변화가 노동자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에 미리 대비하는 노동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 지자체가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졌다.

월간 「도시문제」 10월호 ‘함께하는 녹색생활’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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