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잠시 잊으셔도 좋습니다

2010.12.20 | 행사/교육/공지

나는 녹색연합이란 시민단체에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주제로 활동하고 있다. (실상이 어떻든) 나 역시 소위 전문가로 분류되는 영역에 있는 셈이다. 2007년 이후 지구온난화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교육현장에서도 곧잘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에 대한 특강요청이 들어온다. 지구온난화 이슈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영역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보니 선생님들이 바로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덕분에 나도 몇 번 학교로 특강을 하러 갔었는데, 일회성 특강을 하고 나면 대개 허탈함을 느낀다. 내가 진행하는 특강이 일종의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2008년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 전화상으로는 한 반 학생(50명)만을 대상으로 해 달라고 하더니 막상 학교에 가자 전교생을 대상으로 해 달라고 했다. 겨우 이론교육은 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방송을 통해 하고, 실습교육은 한 반 학생들만 따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실습교육 현장에 담임선생님이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만 시켜주고 시간 내내 자리를 비웠다. 별 다른 말씀은 없었지만 나를 배려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 계속 아이들과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담임선생님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은 조금 많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 때문에 전문가의 지구온난화 교육은 일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의 증거(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 상승 그래프)와 그로 인한 현상들(가뭄, 홍수, 태풍)을 보여주고, 양치질 할 때 컵 사용하기, 전기 아껴 쓰기 같은 에너지 절약 방안이나 풍력, 태양광 등 대안에너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육은 대개 효과가 거의 없다. 에너지 절약은 너무나 익숙해 잔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크고, 대안에너지에 대한 강조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야만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고 오해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막연한 공포감만 갖게 되거나 이산화탄소만 배출하지 않으면 된다는 대안에너지에 대한 맹목적 찬양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산림을 훼손하면서 백두대간 마루금에 풍력발전기를 세우거나 인도네시아 등의 원시림을 밀어내고 팜 등의 바이오연료의 원료작물을 심는 행위 등이 오해로 인한 부작용의 일부다. 무엇보다 전문가에 의한 교육은 주체에 대한 이해 없이 교육이 이루어지기에 변화의 주체가 될 학생 개개인을 각자의 삶과 분리시키고,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킨다. 어미 새가 갖다 주는 벌레만 기다리는 아기 새 꼴이 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중 2010년 푸른꿈고등학교에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에너지 캠프 <이제는 녹색스위치를 켜요!>를 기획했다. 학교에 자전거, 태양광발전기가 갖춰져 있고 텃밭, 생태화장실 등 생태캠프장으로 활용한 만한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캠프 기획부터 실제 진행까지 모두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에 맡겨 보기로 했다. 나와 푸른꿈고등학교 곽진영 선생님은 조력자에 머물기로 했다. 생태,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던 14명의 친구들이 모였고, 기획팀, 홍보팀, 진행팀으로 역할을 나누어 4월부터 수차례 회의를 통해 캠프를 만들어 나갔다. 8월, 2박 3일 캠프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참가자들의 60%가 내년에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캠프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지구온난화를 자신만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획팀장 효진(18)에게 수세식 변기에 벽돌을 집어넣는 일은 익숙한 잔소리였지만, 하루 20리터 물로 생활하라는 캠프 규칙을 통해 효진은 자연스럽게 수세식 변기에 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는 곧 자신이 사용하는 물과 지구온난화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성미산학교 중등학생들은 성미산마을을 지구온난화란 관점에서 낯설게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저탄소 마을 만들기 수업에서는 마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먹을거리부터 교통까지 바라볼 수 있는 위치는 다양하다. 자동차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줄이기에서 시작된 고민은 자전거도로 조사로 이어졌다. 용재(15)는 다른 나라의 자전거이용실태를 도서관에서 조사하고,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으며 자전거이용주민과 자전거가게 사장님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마을의 횡단보도를 모두 없애 자동차가 가급적 마을을 빨리 지나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용재의 제안을 바탕으로 마을 주민의 자동차사용을 줄일 수 있는 정책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그 결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일정 구역 내에서 무료로 운행되는 버스를 만들자는 안이 채택됐다.

이 외에도 먼 곳에서 오는 먹을거리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피자가게와 햄버거가게에 가서 재료와 원산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론 마을 내 몇몇 건물과 학교 옥상에 텃밭을 만들어보자는 안이 채택됐다. 또한 학생들은 매월 학교에서 전기, 가스, 물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학기 말에는 모니터링 내용을 분석하여 학교 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다. 경기도 의왕시의 더불어가는배움터길에서도 에너지부 학생들이 매월 전력, 가스 사용량을 모니터링하여 복도에 게시하고 있다.

위 세 학교에서는 교사와 전문가, 학생의 구분이 없거나 흐릿했다. 덕분에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경계가 모호해져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이슈를 각자의 삶과 연결시켜 고민하고 바라보게 하였다. 전문가주의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능동적 주체가 들어섰다.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은 방과 후나 주말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자발적으로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성미산학교의 용재는 졸업과제로 성미산마을을 저탄소마을로 디자인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능동적 주체는 조금씩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일본 도쿄시 에도가와 구 에도가와네트워크는 1997년 교토의정서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마을 주민 몇몇이 모여 만든 이 단체는 마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하여 프레온가스와 전기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전기 사용으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돈을 모아 노인복지관 지붕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했다. 그런데 1호 태양광발전소를 세우고 나자 애초부터 이산화탄소를 만들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그 결과 에도가와네트워크는 마이크로크레딧사업과 연계하여 효율이 낮은 가전제품을 효율 좋고 전력소비량이 적은 가전제품으로 바꾸어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에도가와네트워크의 활동은 구 내에서 많이 알려져 야마자키 사무국장은 에도가와 구의 마을디자인위원회에도 참여한다.

진정한 교육은 누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연관 지어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 능동적 주체가 되고, 삶의 방식까지 달라진다. 반면 전문가주의는 개개인의 삶을 하나의 그릇으로 뭉뚱그려 일반화시켜 각자의 삶에서 개인을 소외시킬뿐더러, 전문가 자신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없을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몇 년이 지구온난화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한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전문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가능성은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으며, 그 가능성이 발현될 때만이 변화는 가능하다.

– 대안교육잡지 <민들레> 7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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