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하려고요. 여러분은 잠재적 범죄자입니다.

2011.04.20 | 행사/교육/공지

<여러분이 만약 야외에서 열리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면 여러분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입니다. 여러분이 기자회견에서 특정한 구호가 적힌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있다면 여러분은 유죄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사회자나 발언자가 마이크를 사용하였다면 이 또한 유죄로 처벌 받게 됩니다.>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이것이 2011년 4월 현재 대한민국 법정에서 내린 판결의 요지입니다.  어이가 없으시죠? 오늘도 광화문 주변을 포함한 수많은 곳에서 기자회견이 열릴텐데 집회신고를 하지 않고 기자회견에 참여하면 참여자 모두는 잠재적 범죄가가 되는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유죄판결을 감수하고, 전과자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기자회견을 강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모든 기자회견을 할 때 집회신고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을 고치게 위해 싸우시겠습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2010년 4월 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주최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고 마침내 4월 15일 선고 공판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20여명이 참석하였고 필자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기자회견 동안 피켓을 들고 서 있었고 퍼포먼스에 참여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사건에 대해 100% 무죄를 확신했습니다. ‘이 사안이 유죄라면 이것은 완전히 코메디이다. 사법부는 오늘의 재판기록을 역사의 부끄러운 장면으로 기록할 것이다’ 라는게 재판을 받으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메디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재판부(재판장 : 이원범 판사)가 밝힌 판결 요지를 밝혀봅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 “‘옥외 집회란 천정이 있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아니한 장소에서 여는 집회’를 말한다.”

“위와 같은 집회의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비록 기자회견을 표방하고 일부 이에 부합하는 진행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기자회견의 개최목적과 전체적인 진행경과, 기자회견 이후 참석자들의 구체적인 행동 및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성 등을 실질적으로 관찰하여 동일 장소에 참여한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실질을 갖추어 있는 경우에는 집회에 해당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규제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이 기본권 최대보장의 원칙을 위반하여 헌법상 표현의 자유 내지 언론의 자유를 부당하게 좁게 보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기자회견에 참석한 환경단체 사람들은 4대강 반대라는 공통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고,…..(중략)…‘죽음의 삽질을 멈춰라’ 등의 내용이 기재된 10여개의 피켓과 깃발등이 사용디었고 , 마이크와 스피커 등 방송장비가 동원되었다. ….,(중략).. (원더우먼 복장 등) 가면과 의상 등을 사용한 퍼포먼스가 행해졌으며…,(이하 생략)” 위의 판결 내용을 종합해보면 ‘야외 기자회견에서 공통의 목적을 피력하거나 피켓 등을 들고 있을 경우, 마이크 등의 방송장비를 이용할 경우 등’은 예외없이 집시법 위반이 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어제 개최한 기자회견은 과연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 예정되어 있는 기자회견을 경찰에서 고발하면 여러분은 범죄자가 되지 않을 확신이 있으신가요?

세상에 기자회견을 하려고 모였으면 당연히 공통의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또한 효과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려면 피켓이나 현수막, 마이크 사용 등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불법이라뇨? 지금 우리가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것 맞습니까? 이 판결대로라면 야외에서 진행되는 모든 기자회견은 불법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경찰과 검찰이 입맛대로 기소를 할 수 있고 기소가 되면 100% 유죄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확인드리면, 저는 이번 사건으로 집시법 위반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물론 선고 유예 판결이 내려지긴 했지만요) 이 판결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야외 기자회견을 하지 말아야 하나요? 아님 기자회견마다 집회신고를 할까요?

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선고유예로 벌금을 물지 않아도 되지만 앞으로 있을 똑같은 상황의 수많은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 빼앗긴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정당한 시민운동의 활동을 탄압받지 않기 위해 제가 좀 피곤하더라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소를 할 것입니다. 고등법원에서 만약 똑 같은 판결이 내려진다면 대법원까지 갈 것입니다. 가서 내가 가진 표현의 자유와 시민운동의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최승국 / 시민운동가(녹색연합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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