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과도 바꾸지 말아야 할 것 – 자 · 존 · 감

2011.05.19 | 행사/교육/공지

학창시설 책베개를 베고 단잠을 잔 기억. 책베개를 베던 그 시절의 꿈 중 상당수는 책을 통해 얻었습니다. 이 코너가 학창시절 우리가 가능하리라 믿었던 꿈들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최근 읽는 책 제목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입니다. 자유시장과 복지국가 사이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무엇이 신자유주의를 강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자존감에 관한 구절도 나옵니다.

“국가가 우리에게 고기 꾸러미와 감자와 과일이 든 자루, 온갖 것들이 담긴 깡통 등을 건네주려 하는데도, 어머니가 질색하며 이것들을 받으려 하지 않은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나아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1934년 그 어렵던 시절, 자존심은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했던 모든 것이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믿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알게 모르게 갉아 먹으며 이 자리에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녹색연합에 새로운 활동가들이 들어오면, ‘녹색세미나’라는 것을 합니다. 생태주의에 대한 공부를 주로 하지만, 저는 몇 편의 글을 읽고 그들과 생각을 나눕니다. 그때 함께 읽는 글로 문광훈의 램브란트의 웃음 중 ‘마른 나무와 남은 재’, 나카지마 아츠시의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중 ‘산월기’, 도종환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 ‘멈출 때가 되었다’, 오헨리 단편선 중 ‘마녀의 빵’ 등입니다. 이 글들을 읽으며, 사람이 올곧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존감을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주로 글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을 이야기하고, 그 나눔으로부터 각자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눕니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 그 속에서 느꼈던 성공과 실패의 경험, 긍지와 부끄러움의 경험. 그 경험들을 끄집어내고 그 경험의 의미를 현재의 의미로 되살려내는 일. 그래서 정말 그 경험의 가치를 고스란히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개인도, 집단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과정만 제대로 밟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땀 흘려 살아왔던 개개인의 삶의 의미를 진정 몸으로 깨닫는다면 자본이 유포하는 허황된 잣대에 자신을 맞추며,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경험을 체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누군가 나를 믿고 있다는 것이 주는 힘. 그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내 아이가 되었든,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었든, 혹은 그 누구라도 그이를 믿어주는 힘. 그리고 그 힘에 힘들 때 기대며, 자신의 살아온 삶의 경험, 그 가치를 온전히 체득하는 일. 이것이 바로 자존감을 세워나가는 첫 걸음임을 함께 공유하고 싶기에 이 책들을 먼저 소개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자존감을 올곧게 세울 때, 우리는 또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자·존·감 바로 이것이 변화의 출발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치켜세우면 우쭐해지고, 누르면 비굴해진다. 작은 선행은 이로울 것이 없다 하여 하질 않고, 작은 악행은 해로울 것이 없다하여 꺼리지 않는다. 비굴해지거나 우쭐한 것도, 치켜세우는 것과 누르는 것도 모두 마음이 혼탁한 까닭이다. 마음의 안이 흐릴 때, 세상은 맑아지기 어렵다. 마음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할 때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구조는 편중되기 쉽다. 모든 개인적 집단적 실천의 출발, 그 시발점에 가라앉은 마음이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그것은 내가 나인 데서, 그래서 내가 나 스스로를 믿는 데서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거르지 않는 데서 언어도 감각도, 예술도 철학도 그리하여 삶 자체가 제 모습을 견지할 수 있다.

– ‘문광훈’의 램브란트의 웃음 중 ‘마른 나무와 남은 재’ 중

나는 시(詩)로 명성을 얻으려 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아가려고도,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切磋琢磨)에 힘쓰려고도 하지 않았다네. 그렇다고 속인들과 어울려 잘 지냈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네. 이 또한 나의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해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구슬임을 어느 정도 믿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차례로 등을 돌려서 수치와 분노로 점점 내 안의 겁 많은 자존심을 먹고 살찌우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네. 인간은 누구나 다 맹수를 부리는 자이며, 그 맹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성정(性情)이라고 하지. 내 경우에는 이 존대한 수치심이 바로 맹수였던 걸일세. 호랑이였던 게야.

– ‘나카지마 아츠시’의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중 ‘산월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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