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평평하고 네모난 숲

2011.07.27 | 행사/교육/공지

택배 한 상자를 받았다. 종이상자를 뜯어내니 상품의 본래 상자가 나온다. 하얀 A4종이에 5줄 가량 주문내역이 인쇄되어 있다. 여러 나라 말로 쓰여진 제품설명서가 첨부되어 있고, 택배상자와 제품상자 사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신문지가 구겨져 들어있다. 쓸모가 끝난 종이들을 내다놓으며 죄책감이 든다. 손닿는 곳마다 놓여진 화장지, 당연한 듯 내어주는 종이컵, 잡지, 택배포장지, 복사용지, 영수증, 메모지, 길에서 받은 전단지. 요 며칠 내 손을 거쳐 간 종이 양만도 만만치 않다. 넘쳐나는 메모지에 빈 종이쪼가리는 쓰임 받지 못하고 재활용 쓰레기에 섞여 나가기 일쑤이다. 내 손에 쥐어진 종이 한 장, 그저 종이일 뿐일까?   

우리 손에 쥐어진 원시림
2010년 우리나라의 한해 종이소비량은 무려 915만 여 톤, 이 종이의 재료는 짐작하듯 대부분이 열대우림을 비롯한 원시림의 나무이다. 상업목적으로 잘린 나무의 약 20~40%가 종이를 만드는데 사용된다고 한다. 천연펄프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자신들의 펄프가 원시림을 벌목한 것이 아닌  ‘조림지’에서 생산한 것이어서 친환경적이다 주장하지만 애초에 그 조림지가 어떤 곳이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열대우림 1헥타르에는 500여 종의 수종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각기 다른 나무들은 자신들과 공생하는 각기 다른 종류의 동물들과 함께 산다. 하지만 벌목된 원시림에 들어선 조림지에는 전나무나 소나무, 아카시아나무, 유칼리나무 같이 성장속도가 빠르고 펄프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단일수종의 나무를 심어, 자라면 베어내기를 반복한다. 이 나무들은 서식조건과 관계없이 심어지기 때문에 화학비료, 제초제, 살충제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과정에서 숲의 다른 생물은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요즘엔 유전자조작 나무도 심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원시림이 얼마나 많은 생물들을 품고 있고, 그들이 지구 생태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빙하기 이후 지구 역사를 품은 숲이 우리에게 종이의 모습으로 왔다. 귀하고 귀하다. 하지만 이 종이가 정말 귀하게 쓰이고 있을까?  

현재 버려지는 쓰레기의 약 40% 가량이 종이 쓰레기이다. 고급화장지로 만들어져 한번 쓰고 물을 따라 떠내려갔고, 잡지로 만들어져 한번 보고 버려졌다. 이중삼중의 포장지로 만들어져 손에 닿자마자 뜯어져 쓰레기통으로 갔다. 이들이 나무였고, 그것도 수천 년 된 숲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알면 종이를 쓰는 것이 좀 더 조심스러워지겠지만, 그것을 인식하기에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종이가 넘쳐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종이는 재활용해 다시 종이로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인쇄용지로 주로 쓰는 하얀 종이는 최고 열두 번까지도 재생이 가능하다. 종이를 재활용하게 되면 천연펄프로 종이를 만들 때 보다 훨씬 더 적은 에너지와 물을 사용한다. 무엇보다 종이가 될 뻔했던 나무가 남는다.   

종이, 숲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
보통 펄프 1톤을 생산하는데 30년생 나무 20그루가 필요하다. 70m 두루마리 휴지 한 롤을 만드는데 220그람의 펄프가 사용된다. 2007년의 조사에서 우리나라 4인 가족이 1년간 사용하는 화장지는 92롤이나 된다고 한다. 만약 100% 재생지로 만든 화장지를 사용한다면 1년에 423,900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다. 재생지로 만들어진 화장지가 그리 흔하진 않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달 간 사용되는 복사용지는 약 10만 톤, 나무로 환산하면 20만 그루이다. 재생종이라고 하면 보통 누런색의 갱지를 상상하지만 요즘은 천연펄프지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 재생복사용지 또한 인터넷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요즘 서점에 가면 “녹색출판”로고가 찍힌 책들을 간간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종이로 만들어진 책들이다. 책을 사기전 한 번 더 고민해보자. 이 책은 재생종이로 만들어졌을까?

나무를 심듯 종이를 아껴 쓰길 권한다. 그리고 꼭 필요할 땐 재생종이를 사용하길. 종이는 우리 일상에서 떨어질 수 없는 필수품이고, 그 역사도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처럼 숲을 해치는 주범이 되어온 적은 없었다. 나무가 지구에서 하는 역할은 종이가 되는 것 말고도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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