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 가보세요.

2007.01.12 | 행사/교육/공지

빼곡하게 쌓인 책들. 좁은 통로. 어두운 공간과 그득한 먼지도 밉지가 않습니다. 그 속에서 쪼그렸다, 까치발을 하기도하고 어떤 날엔 책방 주인의 사다리를 빌려 올라타기도 합니다. 나는 한참을 뒤져도 못 찾아내는데, 역시 주인은 다른 가 봅니다. 책 제목만 말하면 금 새 찾아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내 손에 쥐어줍니다.

쓴 만큼 되돌려준다는 대형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의 마일리지는 없지만, 갈수록 정겨운 것들이 그곳에는 많습니다. 대형서점과는 사뭇 다른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을 거쳐 그곳에 자리를 잡은 낡은 책 속에서 다른 이의 메모와 소소한 습작들을 발견하게 되면, 때론 즐거움이 때론 낯설고 당황스러움이 다가옵니다. 내가 태어났을 그 때쯤의 어느 강연회 홍보물, 책을 선물했던 이의 정성스러운 편지 글, 지금은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되었을 87학번 국문학과 학생의 고민스런 글귀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꼿꼿하거나 흔들린 글씨 옆에 내 이름을 써놓고 나면 그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찬찬히 펼쳐집니다.

정말이지, 보물찾기 같을 때가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나 부록의 후광 없이도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절판이 되어 이제는 나오지 않는 소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집을 싼값에 구입 할 수도 있습니다. 각각의 책이 각각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듯이, 한권의 책이 누구에게나 보물이 되지 않는 법! 책을 찾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보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싼 책값에 마음이 넓어져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분야의 책들에 손이 가기도 합니다. 알록달록한 동화책을 보는 재미에 한동안 빠져있기도 했었고, 지겨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경제학자의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기도 했습니다.
너무 마음이 넓어져서 책을 잔뜩 짊어지고, 책장에 가지런히 세워둔 책을 보기 좋은 가구로 만들지는 마세요. 볼 수 있는 만큼, 그게 얼마 만큼인지 몇 번 헌책방을 드나들다 보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법. 그러다 보면, 나름의 ‘헌책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헌책방에 가보세요.
새해에 외국어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헌책방에서 교재를 구입해보세요. 새 책처럼 깨끗한 헌책이 당신의 외국어실력의 완성까지는 아니지만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작심삼일만 아니 라면요. 아, 그렇다고 모든 책을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필요한 책이 헌책방에 없다고 투덜거리지 마세요. 헌책방에 한자 가득한 고서적만 있는 것이 아니듯, 헌책방에 모든 책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베스트셀러에서 얻지 못한 감동이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요. 그래도 많이 팔렸다는 그 판매부수의 맹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 질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에서 얻지 못한 감동을 헌책에서 얻어 보세요. 헌책을 골라 읽다보면 현란한 광고에 현혹되지 않아서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책을 고를 수 있습니다. 읽고 나서 나에게 아주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다른 이에게 선물해보세요. 어쩌면, 감동은 당신을 건너뛰고 다른 이에게 전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평소 읽지 않는 책을 들고 헌책방으로 가세요. 그 책을 헌책방에 팔고,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 돈으로 그 곳에 있는 다른 책 몇 권을 사보는 것도 좋겠죠?



마음을 열고 헌책방으로 가세요.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헌책방에 가는 건 어떨까요? 서로가 추천해준 책 한권씩, 그 책을 읽고 다시 만나 책 얘기를 시작으로 수다를 떨다보면 그 사람과 통하는 것들이 많아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헌책방에 가는 재미를 찾아보세요! 어쩌면 그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진짜 헌책방을 찾는 즐거움일겁니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지은이 최종규, 그물코 출판사)를 읽으면 헌책방의 일상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헌책방과 헌책을 통해 저자가 풀어내는 삶의 단상을 접하는 재미도 큽니다.

http://hbooks.cyworld.com 「헌책방에서 보낸 1년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를 지은 최종규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입니다. 전국에 있는 헌책방 목록들을 찾아 볼 수도 있고, 서로 추천하는 좋은 책이나 헌책방에서 만나는 즐거움들을 공유하는 곳입니다.

글 / 보람 (녹색연합 자원활동가)
그림 / 엄정애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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